또… 또… 또… 열린 ‘지퍼’ 닫힐 줄 모르네
▲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이 끊이질 않자 힐러리와의 관계도 위기를 맞고 있다. 스캔들 상대 여성 지나 거손(오른쪽). | ||
이런 기대(?)에 부응하듯 미국 언론들 역시 잊을 만하면 클린턴과 연관된 크고 작은 성추문 기사나 추측성 보도를 내보내면서 클린턴 측을 자극하고 있다. 근래에도 비슷한 기사가 여러 차례 언론을 장식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얼마 전에는 연예전문지 <배니티페어>가 클린턴과 할리우드 여배우 지나 거손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암시하는 기사를 내보냈는가 하면, <내셔널인콰이어러>는 최신호에서 클린턴의 오래된 정부의 실명을 공개해서 파문을 일으켰다.
얼마 전 끝난 민주당 경선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힐러리(60)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는 클린턴을 보면서 “이제 둘의 갈등은 말끔히 사라진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꿈이 물거품이 돼버리자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다. 200억 원이 넘는 선거 빚을 떠안게 된 것도 모자라 기다렸다는 듯이 이혼설까지 솔솔 불거진 것이다. 그동안 대의를 위해서 클린턴의 바람기를 꾹 참아왔던 힐러리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떠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게다가 때마침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클린턴의 외도 사실이 언론을 통해서 연거푸 보도되면서 둘 사이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냉각됐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설명이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클린턴이 힐러리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던 와중에도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으며, 힐러리가 경선 출마를 선언하기 직전까지도 심각한 관계를 유지해오던 애인이 한 명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셔널인콰이어러>가 독점 보도한 이 내연녀의 이름은 줄리 타우버 맥마혼(48). 미시간의 백만장자인 조엘 타우버의 상속녀인 그녀는 지난 1998년 전 남편이자 금융계 재벌인 빌 맥마혼과 8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고 이혼했다. 슬하에는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으며 이혼할 즈음에 클린턴을 처음 만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클린턴이 대통령에 재직하고 있던 지난 1998년, 애스펜 리조트에서 아버지 타우버의 소개로 처음 만났던 둘은 당시만 해도 그다지 심각한 사이는 아니었다. 타우버는 클린턴이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민주당에 막대한 기부를 했을 정도로 클린턴 가족과는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는 ‘친클린턴파’다. 때문에 클린턴과 줄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어쩌면 시간문제였을지도 모른다.
당시 애스펜에서 둘을 목격한 타우버의 가족들은 “하루는 애스펜의 한 레스토랑에서 클린턴과 우리 가족이 모여서 저녁 식사를 했다. 당시 줄리는 클린턴의 리무진을 타고 레스토랑에 도착했는데 그때 이미 둘 사이에서는 묘한 전류가 흐르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둘 사이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이웃사촌이 되고 난 후부터였다. 지난 1999년 클린턴 부부는 뉴욕주 북부에 위치한 차파쿠아로 이주했는데 공교롭게도 당시 줄리의 집은 클린턴 부부의 집으로부터 불과 8㎞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당시 뉴욕주 상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된 힐러리가 바빠진 틈을 타서 둘 사이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줄리의 가족 중 한 명은 “클린턴은 심지어 줄리의 자녀들에게 아빠 노릇까지 해주었다”고 말했다. 둘은 보통 늦은 밤에 만나 밀회를 즐겼으며, 데이트는 힐러리가 워싱턴에 머물고 있거나 혹은 줄리의 자녀들이 잠든 후에 서로의 집에 몰래 찾아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때로는 클린턴이 줄리의 집에서 머무는 동안 클린턴의 경호원들이 집밖에서 대기하는 일도 빈번했다.
사랑에 빠져 있던 줄리는 당시 가족들에게 “나는 클린턴을 사랑한다. 그 역시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또한 클린턴이 자신에게 “만일 내가 힐러리를 떠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그렇게 할 텐데!”라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둘의 로맨스는 끝내 결실을 보지 못했다. 힐러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직전 줄리가 일방적으로 클린턴에게 이별을 통보한 것이다. 이유는 다름 아닌 ‘배신감’ 때문이었다. 클린턴이 힐러리의 선거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울 계획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혼은커녕 클린턴이 절대로 힐러리를 떠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줄리는 이와 같은 <내셔널인콰이어러>의 보도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편집국에 보낸 편지에서 줄리는 “나는 클린턴 부부의 친구일 뿐이다. 스캔들 기사는 모두 거짓이다”라고 항변했다.
한편 클린턴 경호원들과 측근들의 주장도 흥미롭긴 마찬가지다. 줄리로부터 실연을 당한 클린턴이 상처를 달래기 위해서 무절제한 파티를 벌이거나 끊임없는 여성편력을 자랑하는 통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는 것이다. 줄리와 헤어진 후 힐러리의 품으로 돌아가는 대신 방탕한 생활을 택한 클린턴은 힐러리가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다른 여성들과 질펀한 파티를 즐겼다. 그러면서 다음 날이면 태연하게 힐러리의 곁에서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이런 클린턴의 이중적인 모습에 많은 측근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으며, “힐러리가 첫 여성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클린턴은 ‘외도의 역사’를 반복하고 있었다”면서 비난했다.
한편 <배니티페어>는 클린턴의 또다른 여자관계에 대해 보도를 해 관심을 모았다. 잡지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2004년 심장혈관 수술을 받은 후 큰 변화를 겪었고, 그때부터 수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어왔다. 그리고 바로 이 무렵 지나 거손과의 관계도 시작됐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여기에 덧붙여서 “클린턴이 캘리포니아에 머물 당시 여러 차례 거손의 집을 방문하는 모습이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거손 측은 “단지 ‘방문’했다고 말하면서 괜히 부적절한 성관계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또한 “거손이 클린턴과 같은 방에 있었던 것은 단 세 번뿐이었다. 그때마다 항상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이 함께 방 안에 있었다”면서 억울함을 호소했다.
과연 클린턴은 언제쯤 이런 섹스 스캔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클린턴=지퍼게이트’라는 주홍글씨가 지워지지 않는 한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