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9일 자정부터 계약 해지…하이브-어도어가 먼저 ‘계약 유효’ 가처분 걸 수도
11월 28일 오후 8시 30분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스페이스쉐어 삼성역센터 갤럭시홀에서 뉴진스 멤버들의 전속계약 해지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 4월부터 7개월 간 진행돼 온 하이브-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 간의 법적 분쟁 사태가 기반이 된 것으로, 뉴진스 멤버들이 직접 현장 기자회견을 연 것은 이번이 최초다. 이에 앞서서는 지난 9월 유튜브 채널 'nwjns'를 개설하고 긴급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한 차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하니는 "(11월 13일 발송한 내용증명은) 저희 다섯 명이 모두 결정해서 진행했던 내용이다. 저희가 보낸 시정 요구에 대한 기한이 오늘 자정인데, 이날 업무 시간(오후 6시)이 다 끝나는데도 하이브와 어도어는 개선 여지나 저희의 요구를 들어줄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며 "저희는 내일(11월 29일) 해외 스케줄이 있어서 오전에 출국한 뒤 다음주에 들어오는데 그 사이에 하이브가 어떤 언론 플레이나, 언론 조작에 나설지 몰라 저희 입장을 정확히 전달하고 싶어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민지는 "어도어 측은 '하이브가 잘못한 것이지 어도어가 잘못한 게 아니므로 전속계약 위반 사항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하이브와 어도어는 이미 한몸"이라며 "저희가 함께 일해온 어도어와는 이미 많이 달라져 있고 모든 게 하이브의 입맛대로 바뀌어져 있는데 이제와서 하이브와 어도어를 구분할 수 없다. 이처럼 신뢰관계가 깨져버린 어도어와 전속계약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지난 11월 13일 뉴진스 멤버들은 어도어 측에 내용증명을 보내 △하이브가 '뉴(뉴진스를 지칭) 버리고 새로 판 짜면 될 일'이라는 결정을 한 것 △하니를 '무시해'라고 한 타 레이블 매니저에 대한 문제를 방치한 것 △하이브 홍보실장이 뉴진스의 성과를 폄하한 것 △뉴진스가 연습생 시절이던 당시의 사진, 동영상 등이 매체를 통해 무단 공개되고 아직도 삭제되지 않은 것 △'(음반) 밀어내기'에 의해 뉴진스의 성과가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된 것 △돌고래유괴단 신우석 감독과의 불필요한 분쟁과 뉴진스의 기존 작업물이 사라진 것 등에 대한 해명과 즉시 해결을 촉구했다.
이 가운데서 어도어의 시정은 하니를 '무시해'라고 한 타 레이블 매니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만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시정 기한을 하루 남긴 11월 27일 어도어는 소셜미디어(SNS) 공식계정을 통해 해당 매니저가 소속된 하이브 산하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 측에 "하니의 피해를 가벼이 여기지 않고 상호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바라며, 어도어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이 지속되지 않도록 성의있는 태도를 보여주시길 바란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이마저도 "아티스트(뉴진스)의 내용증명에 따른 조치사항의 이행"이라고 서두에 밝혔고, 적극적으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내용이 아니라 시정 요구에 대한 '구색 갖추기' 용으로 성의 없이 작성된 것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이번 기자회견이 시작하기 앞서 어도어 측은 뉴진스 멤버들에게 내용증명에 대한 회신 메일을 보내왔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민지는 "메일을 읽어 보니 다시 한 번 정말 심각하다고 느꼈다. 주 내용은 '14일 안에 시정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멤버들 면담 없이 (내용증명 발송 등이) 진행돼서 슬프다' '(시정 요구 사항이) 어도어가 한 것이 아니라 조치할 수 없다'는 등이었다"며 "이미 저희는 지난 9월 라이브 방송에서도 그랬고 요구사항과 기한을 모두 다 말씀 드렸는데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변명과 거짓말 뿐이다. 요구가 시정되지 않았으므로 11월 29일 자정 전속계약은 해지된다"고 밝혔다.
계약해지가 일방적으로 통보됐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위임의 성격을 띠는 연예인 전속계약의 특성상 계약 당사자 상호 간 신뢰관계가 깨질 경우에는 어느 한 쪽이든 계약 해지를 요구할 수 있다. 더욱이 뉴진스의 경우 이미 내용증명을 보내 14일의 시정 기한을 준 뒤 요구사항의 이행이 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계약 해지를 요구했으므로 이를 '일방적인 통보'로 보기엔 어렵다는 반박이 따른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기준으로 삼고 있는 표준전속계약서에도 계약 위반에 대해 14일 동안 시정을 요구하고 그 기간 내에 위반 사항이 시정되지 않거나 시정될 수 없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뉴진스가 직접 전속계약 해지를 밝힌 만큼, 대중들의 초미의 관심사는 위약금과 '뉴진스'가 가진 권리 문제다. 통상적으로 위약금은 계약상 귀책사유가 있는 쪽에게 지급 의무가 있으므로 만일 전속계약 해지 관련 소송전이 벌어진다면 하이브와 어도어 측은 전적으로 이 책임을 뉴진스에게 물어야 한다. 다만 현재까지 뉴진스가 이른바 '하이브-민희진 사태' 이후에도 어도어와의 계약 유지 상태에서 이뤄진 공식 스케줄을 빠짐없이 이행해 온 점 등을 본다면 의무 불이행을 이유로 위약금을 주장할 수는 없어 보인다. 2022~2024년 뉴진스가 발생시킨 수익과 향후 기대 수익 등까지 포함한다면 최대 6000억 원의 위약금을 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는 추산일 뿐 정확한 액수는 정식 소송이 진행되면 가려질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주목되는 것이 뉴진스와 민희진 전 대표 간 관계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뉴진스 멤버들은 "계약 해지 후에 가능하다면 민희진 대표와 일하고 싶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일반적인 탬퍼링(전속계약 만료 전인 연예인이 다른 소속사와 사전 접촉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지만 어도어 대표에서 해임되고 이사직도 사임한 민 전 대표가 새로운 소속사를 차리고 이곳에 뉴진스 멤버들이 새로 둥지를 틀게 된다면 하이브와 어도어는 이를 문제 삼아 위약금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하이브와 어도어 측은 뉴진스가 기자회견을 열기 전, 어도어 계약 해지 이후의 활동과 관련해 민 전 대표와 미리 이야기를 나눴거나 밀접하게 접촉한 사실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파헤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뉴진스 멤버들은 모두 "민 전 대표와 의논한 바가 없다"고 잘랐고, 민 전 대표 측도 "뉴진스 멤버들과 이와 관련해 연락을 나누거나 한 사실이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계약 해지 통보 전에 민 전 대표와 접촉한 사실이 있다면 뉴진스의 계약 위반일 수 있지만, 통보 시점부터 해지의 효력이 발생해 계약상 의무에서 벗어나는 만큼 이때 민 전 대표와 함께 움직인다면 법적으로 문제되지 않는다.
다만 계약 해지가 정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결론나더라도 뉴진스라는 그룹명과 그간 발매한 곡의 권리는 하이브와 어도어에 그대로 귀속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소속사와 전속계약 해지에 성공한 아이돌 그룹들도 상표권 등 권리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소속사와의 합의 없이는 불가능했다. 현재 뉴진스와의 전속계약 유효를 주장하고 있는 어도어나 하이브가 권리를 포기할 리가 만무한 만큼 이 역시 별개의 소송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 후 어도어는 공식입장을 내고 "전속계약 당사자인 어도어는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신뢰가 깨졌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해지 사유가 될 수 없다"며 "어도어와 뉴진스 멤버들 간에 체결된 전속계약은 여전히 유효하므로 향후 일정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어도어와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