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피한 영장” 해명에도 “너희가 죽였다“ 대놓고 비난까지
“(변창훈 검사의 상황이) 공무원이 어떻게 시키는 것을 안 할 수 있습니까? 국정원 파견 가라고 해서 갔고 국정원 위에서 시키는 거 그대로 했는데, 그걸 ‘적폐’라며 구속영장을 청구하다니요. 정치적인 상황이 바뀌는 걸 감수해야 한다지만, 위에서 하라는 걸 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 있는 공무원이 얼마나 있습니까?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차장검사 급 검찰 관계자)
국가정보원의 ‘댓글 수사’ 은폐 혐의를 받는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가 지난 6일 투신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서초동 한 법무법인 건물에 폴리스 라인이 쳐 있다. 연합뉴스
검사들은 특히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신 검시를 맡았던 변 검사가 역으로 ‘적폐’로 지목된 인연을 거론하며 더 안타까워 한다.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가 고 노 전 대통령 시신을 검시하게 된 것은, 울산지검 공안부장 근무 시절. 검찰 내 공안·기획통인 그는 2009년 울산지검 공안부장으로 근무했는데, 당시 인근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나라를 뒤흔든 큰 사건에 대검찰청은 울산지검 공안 부장검사가 직접 수사할 것을 지시했고, 그는 사건 현장을 직접 챙겼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 시신 부검에도 참여했다. 그 자리에서 변 검사는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변 검사는 가까운 동료 검사들에게 당시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까지 몰린 사실이 너무 속상했다는 것.
변 검사를 잘 아는 한 동료 검사는 “변 검사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정치적인 수사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너무 안타깝고 울컥해서 노 전 대통령 시신 앞에서 경례를 함으로서 노 전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췄다는 얘기를 했었다”며 “그런데 정작 본인이 이번에는 그런 수사의 타깃이 되어버린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얼마나 슬픈 현실이냐“고 속상함을 털어놨다.
역설적으로 노 전 대통령 시신 부검 이후 변 검사는 두각을 드러내며 잘나갔다. 동기(사법연수원 23기) 사이에서는 물론, 검찰 내에서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승승장구한 것. 공안통들이 가는 요직들은 두루 거쳤다. 공안 수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정원에 법률보좌관으로 파견돼 1년 10개월간 근무했고(이 당시 국정원 지시 업무가 변 검사의 발목을 잡았다), 검찰에서는 수원지검 공안부장·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대검찰청 공안기획관으로 근무하며 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후 잔여 사건들을 이끌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에서 ‘공안통’으로 승승장구했던 게, 문재인 정부에서는 독이 됐다.
검사장 승진이 당연한 커리어였지만, 결국 이번 검찰 인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에게 주어진 것은 좌천성 인사(서울고검 검사)뿐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주변에 “공안라인 핵심이었기 때문에 적폐로 지목됐다”고 여러 차례 서운함을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결국 검찰은 한때 ‘에이스 공안검사’에게 칼날을 들이밀었다. 국정원 근무 당시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허위 진술 강요 및 지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
구체적으로 검찰 수뇌부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같은 사건에서 2명이 목숨을 끊을 정도로 문제가 있는 수사 방향을 선택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문무일 검찰총장 중 한 명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주요 요직에 근무했던 한 검찰 고위관계자는 “국정원 수사 흐름은 자세히 모르지만 통상 가장 위에 있는 사람 한 명만 구속영장을 치면서 일련의 책임을 묻지 않냐, 이번 사건 역시 가장 선임인 장호중 전 지검장만 구속영장을 쳤다면 모르겠는데 국정원 TF에 근무했던 셋 다 구속영장을 치는 건 한때 가족이었던 사람들이나 남아 있는 검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변 검사, (이미 구속된) 이제영 검사까지 구속하는 결정을 한 문무일 검찰총장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문무일 총장이 검찰 내부를 위해 ‘방어막’이 되어 주지 못하고, 청와대의 눈치만 보기 급급하다는 것.
실제 변창훈 검사 빈소에서도 이 같은 반발이 이어졌다. 부장검사급 A 지청장은 조문을 온 문무일 검찰총장을 보고 술에 취해 “너희가 죽였다”고 큰 소리로 비판하기도 했다.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검찰에서는 용서될 수 없는 일이지만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문무일 총장은 사건 직후 빈소를 찾았지만 그후 유족들의 반발로 조화가 치워졌고 변 검사의 동기인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수사팀장(박찬호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 등은 끝내 빈소를 찾지 못했다. A 지청장의 취중 발언에 대해 다수의 검사들이 “A 지청장이 총장한테 했다는 얘기를 듣고 속이 다 시원했다, 원래 입바른 소리를 하는 친구인데 이로 인해 인사 보복을 당할까봐 걱정”이라고 얘기할 정도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6일 밤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 변창훈 검사의 빈소를 조문하고 있다. ‘댓글 수사‘를 은폐하려 한 혐의를 받는 변 검사는 이날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받기 직전 투신해 숨졌다. 연합뉴스
수사팀 역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사 흐름을 잘 아는 법조인은 “이번 사건의 경우, 셋 다 구속영장을 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서로 업무가 달랐다. 불가피한 영장이었는데 사건이 이렇게 돼서 너무 당혹스럽다”고 털어놨다.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 이제영 검사 등은 2013년 국정원 현안 TF 소속으로 검찰 수사에 대응하기 위해 가짜 사무실을 마련하거나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에게 증거 삭제, 허위 증언을 시킨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아왔다. 장 전 지검장은 가짜 사무실 마련 부분을, 이제영 전 부장검사는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허위 진술 조작 및 강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 핵심 증인 러시아 출장 추진 등을 담당했다는 게 수사팀의 설명이다. ‘서로 책임 영역이 다르다’는 것. 현재 국정원에 파견돼 사건 관련 자료들을 검찰로 넘기는 역할을 맡고 있는 검사 역시 주변에 “나 역시 시키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검찰 분위기가 오히려 수사팀을 비난하고 있어 당혹스럽다”고 해명하고 있다.
변 검사 사건으로 검찰 내부에 불고 있는 국정원 적폐 수사 흐름도 자연스레 힘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흐름에 정통한 한 검찰 관계자는 “지금 청와대에서는 ‘국정원 관련 의혹은 다 검찰로 넘겼으니 알아서 잘할 것’이라는 상황”이라며 “청와대 핵심들은 지금 내년 총선에 누가 서울시장에 나가야 하느냐는 얘기뿐이다, 검찰 수사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큰 변수 없이 이 정도 수순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