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예부터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대상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쳐다보고 상상 공간을 넓혔던 달에 인간이 발자국을 남길 만큼 과학적으로 상당 부분 확인이 되었지만 신비의 베일은 여전하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천체 중 우리와 가장 가까운 달은 친근하면서도 낯설다. 어둠 속에서 존재 이유를 뚜렷이 하기 때문일 게다. 지구의 수많은 해변에 자신의 숨결인 파도를 새기며 사람들의 감성을 다독이는 달. 그래서 더욱 신비롭고 예술가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부추기는 것이다.
스러지고 차오르며 순환을 보여주는 달을 통해 예술가들은 많은 작품을 만들어왔다. 특히 동양에서 달에 대한 생각은 각별하다. 세계를 해석하는 방식을 달의 생리에 기대어 왔던 것만 봐도 그렇다.
달을 담다 Ⅱ_145x145cm 한지에 천연염색, 백토 2014년
달을 모티브 삼은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이 달항아리다. 전통 미술의 대표작 중 하나며, 조선시대 미술 중 가장 특이한 도자기다. 18세기에 100년간 집중적으로 만들어지고 사라진 묘한 이력도 신비롭다. 푸근하고 소박하며 담백한 아름다움을 지녀 한국적 미감의 한 축을 보여준다. 모습이 보름달과 같은 느낌을 주는 탓인지 달의 이름까지 얻었다. 밝지만 깊이 있으며, 은은하고 무미한 하얀 색에서 사람들은 부담 없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
달항아리는 회화로 그리거나 사진으로 찍는 것이 유행이 될 정도로 작가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그런 탓에 꽤 많은 작가들이 소재로 삼아왔다. 그래서 어떻게 자신의 소재로 바꾸어내느냐가 작품으로서의 성패를 가늠한다.
김보영도 달항아리를 모티브 삼는 작가다. 그의 작품을 보면 달항아리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인 담백함과 깊이감이 고루 나타난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달항아리의 느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한 인기 소재를 택했으면서도 돋보이는 작가로 살아남은 셈이다.
달의 기억2_45x53cm 순지에 천연염색, 백토 2015년
김보영의 작업은 달항아리를 평면 회화로 그리는 것이 아니다. 만드는 쪽에 가깝다. 그는 식물, 광물에서 추출한 염료를 순지에 염색하는 방법으로 달항아리의 느낌을 현대화한다. 전통 천연염색 기술을 자신의 회화에 끌어들여 남들과 다른 달항아리를 표현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순지를 가늘게 자르고, 염색해 전통 미감의 색감을 얻고, 이를 손으로 찢어 붙이는 방법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푸근한 달항아리 형태가 보이고 깊이 있는 밝은 색감의 격자 문양이 속살을 채운다.
작가는 “달항아리의 느낌을 나만의 방법으로 현대 감각으로 풀어내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달을 보며 많은 이들이 속마음을 털어내거나 염원을 하는 것처럼 작업 속에 같은 마음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