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수렵장,동물원 폐쇄·세계잼버리대회 성공개최 다짐행사 취소
[전북·순천=일요신문] 박칠석 기자 = 지난 겨울 가금류 농장을 초토화시켰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의 악몽이 재현되는 모양새다. 방역 당국은 올겨울 첫 고병원성 AI 발생지인 전북 고창과 순천을 넘어 전국 확산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전국 지자체가 최고 경계 및 방역태세에 돌입했다. 그러나 당장 AI로 인한 2차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AI 발생지역인 고창과 순천에선 당장 지역경제 위축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수많은 관광객과 탐조객이 찾았던 순천만이 폐쇄되면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기는 바람에 지역 숙박, 음식점 등 상가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발생한 전남 순천만습지가 21일부터 폐쇄돼 순천시 직원들이 출입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박칠석 기자
◇ 철새도래지 찾던 발길 ‘뚝’...식당·숙박업 등 2차 피해 확산
고병원성 AI가 순천을 덮친 11월 23일 국내 최대 철새도래지인 순천만에는 적막감이 맴돌았다. AI 확산 방지 차원에서 전남도가 이틀 전부터 순천만습지 전면 폐쇄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달 초 열린 갈대축제가 성황을 이루면서 관광객 10만여 명이 몰렸던 곳이지만, 이날 순천만 주차장은 텅 비어 을씨년스러웠다.
대형 철새 조형물로 장식된 정문에는 철제 바리케이드가 쳐졌고 출입통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붙었다. 순천시 순천만보전과 직원 38명은 비상 근무체제에 돌입, 순천만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순천만습지에서 채취한 철새 분변에서 검출된 AI 바이러스가 지난 20일 고병원성으로 확인되면서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내려진 조치다. 순천만습지가 폐쇄된 건 지난 2014년과 작년에 이어 세 번째인데,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나와 폐쇄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이날부터 순천만 갈대숲 탐방로에서 용산전망대에 이르는 탐방로와 용산전망대로 진입하는 남도삼백리길 등이 전면 폐쇄됐다. 순천만 에코피아 등 탐조선 운항도 전면 중단하고 순천만습지 일원의 순천문학관과 순천만자연생태관, 소리체험관 등 주요 전시시설 관람 제한과 함께 순천만 인근 농경지에 대한 진입도 통제한다.순천만습지는 현재 천연기념물 제228호 흑두루미와 오리, 기러기류 등 모두 1만2천여마리가 월동하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생태관광지다.
전남도는 순천만뿐만 아니라 해남 고천암 등 전남지역 10개 철새도래지를 단계별로 폐쇄하는 극단적인 조치에 들어가 철새도래지 주변 상권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철새도래지로 이름을 알린 전북 서해안 벨트(군산∼부안∼고창)에서도 탐조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군산 나포면 십자들녁에서 채취한 야생조류 분변에서도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탓이다. 다행히 전염성이 약한 저병원성(H5N3)으로 확인됐지만, 철새도래지를 중심으로 한 지역경제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 AI 여파 수렵장·행사 줄줄이 중단
전북도가 AI 최초 발생지인 고창군의 수렵장 운영을 21일부터 전면 중단하면서 수억원의 수입이 날아가게 됐다. 전북도는 각종 농작물 피해 예방 및 야생동물 개체 수 조절을 위해 동절기 수렵장을 고창군에서 이달 1일부터 운영해왔으나 AI를 차단하기 위해 이런 조치를 내렸다. 고창군은 수렵장 폐쇄로 당장 2억원 안팎의 수입이 사라지게 됐다. 완주군도 하루 뒤인 22일부터 30일까지 잠정 중단했다.
전주동물원도 22일부터 조류인플루엔자(AI) 예방을 위해 조류 관람을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동물원 측은 독수리, 수리부엉이 등 맹금류와 큰고니, 앵무새 등 가금류 관람장으로 이동하는 길목 4곳에 펜스를 설치했다. 이 조치는 AI가 종식되는 시점까지 계속된다.
전북도는 또 24일 부안 현지에서 열 예정이었던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성공개최 범도민 성공 다짐행사도 무기한 연기했다. 다중이 모이는 행사를 자제하려는 취지로 일선 시·군에도 이 같은 지침을 전달했다.
연례행사로 도내 서해안 곳곳에서 해마다 열렸던 해넘이 행사도 불투명해져 숙박업계와 음식점 등 지역경제가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군산 비응도의 한 상인은 “철새를 구경한 관광객들이 비응도에 들러 수산물도 듬뿍 사고 회도 먹고 갔지만, 어제 오후부터 발길이 눈에 띄게 줄었다”면서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 등으로 지역 경제가 바닥을 기고 있는데 AI까지 겹친다면…”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월동을 위해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 <순천시 제공>
전남 순천만 폐쇄는 주변에 터를 잡은 숙박업소와 식당 업주에게까지 미쳤다. 지난주까지 주중 3,000명, 주말이면 7,000명이 찾던 전남 순천만 자연생태공원은 AI 검출이 확인된 지난 20일을 기점으로 관광객들이 80%까지 줄었다. 자연생태공원 관리를 담당하는 한 직원은 “순천만은 지난해 543만여명이 다녀간 유명 관광지인데 AI 검출 사실이 알려지면서 탐조객들이 급격히 줄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펜션 111곳과 꼬막 정식 등을 파는 식당 25곳이 성업 중이다. 순천만 입구에서 한옥펜션을 운영하는 이인숙(56)씨는 “방 다섯 개가 딸린 펜션인데 이번 주 내내 텅 비어 있다”며 “올겨울은 이미 예약은 끝났다고 보면 된다”고 아쉬워했다. 식당 주인 김대권(45)씨는 “올해는 너무 빨리 조류인플루엔자가 찾아와 날이 풀리는 봄까지 기다리려면 폐쇄 기간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평일에도 200여 명 이상, 주말이면 700여 명 이상 찾았는데 가을 특수는 끝난 것 같다”고 한탄했다.
철새도래지로 유명한 전북 군산과 충남 서천을 잇는 금강하구도 이런 풍속도는 마찬가지다. 주말이면 2,000여명의 탐조객이 찾던 전북 군산서천 의 금강하구도 이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인근 식당과 군산시와 장항읍 일대 음식점 역시 타격이 심각하다. 군산 금강하굿둑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주말에 AI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탐조객 등 관광객의 발길이 확연히 줄었다”며 울상을 지었다.
전남북지역 지자체는 연말 관광 성수기를 앞둔 상황에서 AI가 계속 확산된다면 축산농가는 물론 지역경제에 미치는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고 적극 대처할 방침이나 구체적인 대안마련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순천시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주변에서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예방 차원에서 순천만을 폐쇄했는데 올해는 여기서 발생해 걱정이다”며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계절과 겹쳐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겨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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