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서로 다른 얼굴들`
[서울=일요신문]주성남 기자= 영화 `요시노 이발관(2004년)`은 담백한 영상과 잔잔한 스토리로 구성된 일본 영화감독 오기가미 나오코의 데뷔작이다. ‘요시노가리’라는 헤어스타일을 전통으로 고집하는 작고 평화로운 어느 마을에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도시 전학생의 등장으로 작은 소동이 일어나고 ‘요시노가리 탈출’을 위해 다섯 소년들은 쿠데타를 기획한다.
견고한 관습에 반기를 든 소년들의 작은 모험담을 소박하고 코믹하게 그린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수작이다. 영화는 일본인의 집단주의 문화 속의 폭력성과 억압성을 고발하고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적 혁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저자인 김세걸 교수에 따르면 일본인의 집단주의 문화는 전체주의 대 자유주의, 획일성 대 다양성 따위의 이분법 프레임으로 간단히 비판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게 아니다. 저자는 일본인의 집단의식이 형성돼 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 영화들을 통해 일본의 문화, 역사, 정치를 짚어본다. 일본 영화계의 명작인 `라쇼몬`과 `나라야마 부시코`를 비롯해 기무라 타쿠야 주연의 드라마 `체인지`까지 작품성과 재미를 두루 갖춘 작품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또한 ‘영화로 사유하는 일본학 입문서’이기도 하다. 입체적인 정보 전달 능력과 대중적 흡인력을 갖고 있는 영화를 학습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해 오늘날의 일본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지식정보를 전달하고 이를 매개로 독자 스스로가 자유 토론을 통해 ‘일본 문제’에 대해 사유할 수 있도록 했다.
중년 실직자의 방황과 재취업 과정을 그린 영화 `도쿄 소나타`를 통해 장기 불황에 허덕이는 일본 사회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회사 인간’과 종신 고용으로 특징되던 일본의 기업 문화가 ‘잃어버린 20년’을 통해 어떠한 변용을 겪고 있는지를 살펴본 다음, 자본주의 사회에서 실업의 의미,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일과 여가의 의미에 대해 자유 토론하도록 이끌어 간다.
일본 근현대사(1부)의 주요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거나 사회문화(2부) 및 정치경제(3부)의 주요 특징들을 보여주는 영화 및 드라마 열여섯 편을 선정해 소개하고 제기된 쟁점의 전후 맥락을 해설했다. 타이완 영화 `시디그 발레`를 제외하면 모두 일본인 감독의 영화들인데 ‘일본 문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문제작을 우선 골랐다. 독자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의 해설부터 골라 읽어도 상관없다. 다만 혼자 영화를 관람하기보다는 주위의 사람들과 함께 보고 그 소감을 서로 토론해 볼 것을 권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자들의 일본 이해는 한층 깊어지고 균형감을 잡아 갈 것이다.
김세걸 교수는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사상사와 정치과정론을 전공했다. 한국방송통신대학 일본학과 겸임교수와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대우교수를 역임하면서 `현대 일본정치의 이해`, `일본의 민주주의`, `한국과 일본의 정치와 거버넌스`, `일본 근현대정치사` 등을 공동 저술했다.
또 `마르크스의 이중문법과 탈근대적 독해`, `일본의 세제개혁과 자민당의 딜레마`, `미일 구조마찰과 자민당 지배구조의 균열` 등을 발표했다. 최근 사마천의 `사기열전`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일본의 근대를 열어 간 다양한 인물들의 인생유전을 콩트 형식으로 소개하는 `근대일본 인물열전`을 구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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