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최고 부자 뇌속은? ‘도전’으로 가득
▲ 로이터/뉴시스 | ||
야나이 다다시 회장(60)이 “2010년 매출목표액은 1조 엔(약 13조 원)”이라 발표한 것이 2003년의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세간에서는 그의 말을 가소롭다는 듯 냉정한 반응뿐이었지만 7년이 지난 지금 1조 엔은 유니클로에 더 이상 허황된 꿈이 아니다.
얼마 전 야나이 회장은 “2020년 매출 목표액은 5조 엔(약 65조 원)”이라고 발표했다. 7년 전과 달리, 사람들은 그의 말을 굳게 믿고 있다. 불황이 이어지고 있는 일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유일한 기업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데는 야나이 회장의 힘이 절대적이었다고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11월 21일 오전 6시. 도쿄의 가장 화려한 거리 긴자에 새벽부터 2000명이 넘는 긴 행렬이 개점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은 유니클로의 ‘창업 60주년 대감사제’가 열린 날로 오전 6시부터 대바겐세일을 개최했다.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부친이 1949년 남성복 전문인 오고리상사를 설립한 지 60주년. 1984년 6월 히로시마에 유니클로 1호점이 탄생한 지도 25년. 2009년말 유니클로는 일본 내 700여 개, 해외 70개의 매장을 둘 정도로 급성장을 이뤘다.
2009년 3월, 유니클로의 자매점인 ‘지유’에서는 990엔(약 1만 3000원) 청바지를 판매개시해 저가 경쟁에 불을 붙였다. 이에 맞서 경쟁업체들이 880엔(약 1만 1000원) 청바지를 출시해 주목을 받았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야나이 회장은 “우리는 고객의 지갑 속을 놓고 경쟁을 하고 있다. 우리의 경쟁상대는 동종업계의 유통업자들이 아닌 휴대전화나 해외여행”이라는 의미 깊은 말을 남겼다. 저가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라 휴대전화를 사려는 고객을 유니클로 매장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얘기다.
스위스증권 애널리스트인 무라타 다이로 씨는 “유니클로는 유통마진을 없애기 위해 기획·제조·생산·판매까지 직접하는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패션업계의 핫이슈로 떠오른 ‘대형 의류 제조 소매업(SPA)’이다. 위험도가 높은 대신에 성공했을 때의 리턴률도 큰 비즈니스 모델이다. 생산품의 단위수량을 크게 잡는 것으로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가격 대비 상품의 질이 매우 뛰어나 소비자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보온내복 ‘히트텍’은 2008년 일본에서만 2800만 장이 팔려 나갔다. 세계적으로도 점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이 히트 상품은 5년 동안 100번이 넘는 시험작을 반복해 얻어낸 결과물이다. 무라타 씨는 “그것을 타사에서 갑자기 흉내 내려 해도 잘 될 리가 없다. 유니클로는 리스크를 안고 도전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큰 수확을 얻었다”고 덧붙였다.
일본 정상에 우뚝 선 야나이 회장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한국을 비롯해 런던과 뉴욕, 파리에 출점해, 적극적인 해외공략을 노리고 있다. 이미 미국의 띠어리, 프랑스의 꼼트와데꼬트니에 같은 해외 브랜드를 인수했다. 야나이 회장이 기업매수와 합병을 반복하고, 공략처를 국내에서 해외시장으로 넓히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일본기업의 샐러리맨들 사이에서는 한숨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유는 야나이 회장 같은 롤모델이 회사에 필요하다는 것이다.
야나이 회장의 경영철학 중에 “실패를 피하기 위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더욱 빨리 실패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실패를 줄이는 데만 노력을 기울일 것이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쳐야 한다는 주문이다. 보란 듯이 실패를 딛고 일어서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오히려 실패할 확률이 낮아진다는 게 야나이 회장의 생각이다. 일본의 한 대기업 사원은 자사의 경영방침과 상사의 무능함을 탓하며 야나이 회장과 같은 결단력과 도전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나이 회장은 목표를 확실히 하고 오래된 경영법 등은 결단력 있게 버릴 줄도 안다. 그에 비해 우리 회사는 말로만 경영재건이라고 하면서 고작 나오는 것이 경비삭감이다. 사장들이 일시적으로 전철로 통근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야나이 회장은 부하에게 큰 권한을 주는 경영방식으로 유명하다. 실패하더라도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그가 자주 거론하는 ‘9패 1승’의 힘이다. 아홉 번 실패하더라도 실패의 원인을 파고들어 한 번 성공하면 인생역전을 이룰 수 있다는 철학이다. 자기가 직접 손대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상사보다 야나이 회장처럼 철학을 가지고 부하를 믿어주는 상사가 사원 한 명 한 명의 능력이 발휘시킬 수 있다고 샐러리맨들은 생각한다. 사장은 방향만 명확히 정해주고, 실행해나가는 것은 사원. 그것이 야나이식의 경영이다.
큰 성공을 거둔 후에도 야나이 회장은 자신과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들을 두루 접촉하기 위해 노력했다. 외부에서 유니클로를 보는 시각은 어떤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서였다. 대기업에서 간부를 맡고 있는 한 남성은 “회사의 오래된 경영방식에 불만이 많다. 새롭게 부임하는 사장들도 이미 수십년간 자신만의 경영 스타일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에 과거의 성공체험을 바탕으로 일을 진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신입사원들한테도 고객들한테도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서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점에 대해 야나이 회장은 “성공은 하루 만에 버리고 달려라”라는 명언을 남겼다. 수많은 경영자들과 샐러리맨들 사이에서 이미 베스트셀러가 된 그의 책에서도 “일본의 평범한 회사에서는 사람들이 직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일을 하지 않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거의 성공에만 매달리고 있는 상사와, 상사의 얼굴색을 살피며 일하는 사원들. 그것이 일본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김지혜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