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비극’이 그곳엔 기회?
▲ ‘옐레 아이티’를 설립한 가수 진과 그가 지진으로 망가진 아이티를 방문한 모습. | ||
특히 이번 참사에서 빛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트위터나 마이스페이스 등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와 휴대전화가 결합된 새로운 형태의 모금활동이다. 적십자 등 구호단체들이 적극 활용하고 있는 이 방법은 휴대전화에 특정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자동으로 기부금이 전달되는 방식으로, 간편하고 신속하다는 장점이 있다. 자선단체들은 이런 기부 방법을 홍보하는 데 트위터를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누리꾼 사이에서 급속도로 전파되면서 ‘기부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 가운데 요즘 사람들의 시선을 가장 많이 끌고 있는 자선단체는 아이티 출신의 유명 힙합가수이자 음반 프로듀서인 와이클리프 진(38)이 설립한 ‘옐레 아이티(Yele Haiti)’다. 문제는 이 단체에서 어째 구린 냄새가 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위험에 처한 고향사람들을 상대로 위험천만한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는 의혹이 바로 그것이다.
“휴대전화로 501501번을 누른 후 ‘Yele’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자동으로 5달러(약 5700원)가 기부됩니다.”
와이클리프 진이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홍보하고 있는 내용이다. 이 메시지는 지난 12일 아이티 강진이 발생한 직후 순식간에 인터넷을 통해 전파됐고, 지난 18일까지 무려 150만 달러(약 17억 원)가 모금되는 등 기부금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소규모 자선단체인 ‘옐레 아이티’가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진 본인이 아이티 출신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고향에서 일어난 대참사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그는 참사현장을 직접 방문, 돌무더기 아래 깔린 시체들을 끄집어내는 등 적극적으로 구조활동을 펼쳤다. 이런 모습들은 곧 전파를 타고 전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조국에 대한 그의 자부심과 애정은 이미 팝계에서는 유명했다. 1997년 3인조 힙합그룹 ‘푸지스(Fugees)’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그래미상을 수상하는 등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그는 각종 시상식마다 아이티 국기를 들고 나와서 자신이 아이티 출신이라는 것을 알렸다. 평소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아이티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싶어한 것이다.
그룹 이름 ‘푸지스’ 역시 난민이라는 뜻의 ‘Refugee’라는 단어에서 따온 것으로 미국으로 망명하길 희망하는 아이티 난민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가 고향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 자선단체를 설립한 것은 1998년이었다. 아이티 사람들에게 자부심과 희망을 심어주는 한편 장학금 전달, 예술활동 지원, 청소년 축구팀 운영,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 창출, 식량 분배 등이 단체를 설립한 목적이었다.
첫 해에만 3600명의 어린이에게 장학금을 전달했으며, 2007년 미 하원에서는 미 정부가 아이티 교육에 더 많은 기금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 내 기업들을 향해서는 아이티에 투자해서 일자리를 늘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다른 대규모 자선단체들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오지나 빈민촌도 지리에 밝고 현지 분위기에 익숙한 그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특히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그는 매년 힙합대회를 개최해서 빈민가의 청소년들이 직접 사회문제를 다룬 노래들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으며, 빈민촌에 무료로 영화를 상영해주는 ‘옐레 시네마’라는 프로젝트도 운영했다.
그는 유명인사와의 친분을 자선단체 활동에 이용하는 데에도 적극적이었다. 2008년 태풍이 발생했을 때에는 6000가구에 식료품을 지원하는 데 평소 친분이 있던 배우 맷 데이먼과 동행했다. 2006년에는 첫째를 임신한 앤절리나 졸리가 ‘옐레 아이티’를 통해 아이티를 방문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또한 2009년 3월에는 지역 투어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초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에도 불구하고 현재 ‘옐레 아이티’는 뜻밖의 위험에 처해 있다. 그간 투명하지 못했던 재정운영이 뒤늦게 도마 위에 오르면서 자선단체로서의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1차적인 긴급구호가 필요한 지금 ‘옐레 아이티’와 같이 미숙한 단체는 현장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서 “차라리 다른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옐레 아이티’와 같은 경험이 부족한 소규모 단체는 2차 구호, 즉 모든 위급상황이 종료된 후 건물을 보수하거나 재건축할 때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NGO 관계자는 “옐레 아이티는 두 달 후부터 구호활동을 펼치는 게 적합하다. 모든 전염병의 위험이 사라지고 재건설이 시작될 때쯤이 좋다. 하지만 지금처럼 전문화된 특수기술이 필요한 때에는 규모가 큰 자선단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 ‘옐레 아이티’는 규모가 매우 작은 데다 그동안 긴급현장에서 1차적인 구호활동을 벌인 적도 없었다. 현재 사무실도 진이 소유한 맨해튼의 레코딩 스튜디오의 한 공간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으며, 지난 2007년까지 직원 수도 단 한 명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러니 막대한 기부금이 쏟아진다 해도 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질까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그가 그동안 ‘옐레 아이티’의 기부금을 횡령해왔다는 의혹이 불거졌다는 것이다. 처음 이런 주장을 제기한 웹사이트 ‘스모킹건(www.thesmokinggun.com)’은 ‘옐레 아이티’가 2009년 8월에야 처음으로 세무신고를 했는데 그 가운데 총 41만 달러(약 4억 6000만 원)가량의 행방이 수상하다고 지적했다.
기부금의 사용처에 대한 몇 가지 의혹 가운데 하나가 ‘임대료’ 부분이다. ‘옐레 아이티’는 그동안 진과 그의 사업 파트너 겸 ‘옐레 아이티’의 임원인 듀플레시스가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프로덕션 회사인 ‘플래티넘 사운드’의 맨해튼 스튜디오에 연간 3만 1000달러(약 3500만 원)의 임대료를 지불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옐레 아이티’의 회장인 휴 로케는 “스튜디오의 일부분을 ‘옐레 아이티’가 사용하는 것에 대한 임대료이며, 시세보다 싸게 책정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말하자면 월세 명목으로 매달 2600달러(약 300만 원)를 진에게 도로 지불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옐레 아이티’가 2006년 ‘플래티넘 사운드’에 지불한 10만 달러(약 1억 1300만 원)도 수상하긴 마찬가지다. 이는 진이 모나코의 몬테카를로에서 주최했던 자선공연에 대한 비용, 즉 백업 뮤지션들에게 지불한 비용과 공연 제작 비용 등이었다. 이 가운데 2만 5000달러(약 2800만 원)는 진 본인의 출연료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2006년 ‘옐레 아이티’가 자국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서 아이티의 ‘텔레맥스’ 방송국의 방송시간을 구입하는 데 지출한 25만 달러(약 2억 8000만 원)다. 문제는 이 방송사가 진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며, 사실은 ‘옐레 아이티’가 방송시간을 구입한 것이 아니라 진이 ‘옐레 아이티’의 기부금으로 텔레맥스의 지분을 매입했다가 내부적으로 문제가 되자 뒤늦게 일정 부분의 방송시간을 ‘옐레 아이티’에 기부하는 식으로 무마하려 했다는 것이다.
최근 자신을 둘러싼 이런 의혹들이 끊이지 않자 진은 기자회견과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다. 그는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미숙한 자선단체 운영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결코 기부금으로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6분 30초짜리 유튜브 동영상에서도 그는 “나는 지금까지 아이티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호소했다. 또한 “쇼를 하는 데에는 프로덕션이 꼭 필요하다. ‘옐레 아이티’가 나의 프로덕션에 비용을 지불한 것처럼 쇼를 하려면 매니저가 필요하고, 투어 매니저도 필요하다. 이 모든 것들에는 비용이 든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는 현재 유엔, 아메리케어, 적십자 등과 연대해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니 여러분이 원하는 어느 곳에든 기부하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아이티에는 ‘옐레 아이티’직원 15명이 파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