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친구가 아니라 음식이래요…’
▲ ‘호골주’를 만들기 위해 중국 일부 동물원에서는 호랑이를 일부러 굶겨 죽이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 ||
중국 광시좡족자치구 계림시 인근에 위치한 ‘슝썬 웅호산장’.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호랑이를 사육하고 있는 이곳에는 현재 1500여 마리의 호랑이가 생활하고 있으며, 대부분은 백두산 호랑이라고도 불리는 시베리아 호랑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동물원 안에 있는 호랑이들의 모습이다. 한눈에 봐도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이는 호랑이들이 많은 것이다. 가령 우리 안에 지친 듯 누워있는 한 마리는 얼마나 말랐는지 가죽과 뼈만 남은 듯 보였으며, 온몸에 난 상처는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곪아 터져서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호랑이는 내일이라도 당장 죽을 것처럼 위태로워 보여 동물원을 찾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한 여성 동물원 안내인은 관광객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지금 저 호랑이는 죽어가고 있다”라고 말하면서 “그저 죽는 날까지 먹이를 주면서 키우는 수밖에 없다”라며 안타까운 듯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중국에서 호랑이를 죽이는 것은 불법”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사실은 전혀 달랐다. 안내인의 말처럼 중국에서 호랑이를 도살하는 것은 분명 불법이지만 이곳의 호랑이들은 은밀한 방법, 즉 먹이를 주지 않거나 아파도 그냥 방치하는 방법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가령 어떤 호랑이는 한쪽 눈이 실명된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으며, 또 다른 호랑이는 왼쪽 다리에 축구공만 한 종양이 나 있었지만 치료는커녕 어떤 보살핌도 받지 못하고 있는 듯 보였다.
호랑이에게 충분한 사료가 공급되지 못하는 것도 문제긴 마찬가지다. 보통 호랑이들은 하루에 최소 5㎏의 고기를 먹어야 하며, 여기에는 한 마리당 6파운드(약 1만 원)가 필요하다. 하지만 동물원 입장료는 1인당 7파운드 50센트(약 1만 3000원)로 이는 1500여 마리의 호랑이에게 사료를 먹이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한 동물원 관계자는 “사정이 이러니 호랑이들이 충분히 사료를 먹지 못해 끼니를 굶거나 심지어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아사하는 일도 간혹 일어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부 동물보호단체들은 “일부러 죽일 수는 없으니 서서히 굶겨서 죽이려는 속셈”이라며 문제는 사료값에 있는 게 아니라 동물원의 다른 꿍꿍이속에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즉 재정난이 문제라면서 매년 그렇게 호랑이 수를 늘리는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이런 의심을 하는 동물보호단체들은 동물원이 이렇게 호랑이들을 굶겨 죽이는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다고 주장한다. 말하자면 호랑이들이 살아 있을 때보다 죽어서 더 값어치가 나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술을 담그거나 각종 보신용으로 팔려 나갈 때 비로소 효자(?) 노릇을 한다는 이야기다.
가령 호랑이 한 마리당 나오는 뼈는 총 25㎏이며, 이는 보통 암시장에서 최고 22만 5000파운드(약 3억 8000만 원)까지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호랑이 눈알은 간질에 효험이 있고, 담즙은 경련을 완화시키며, 수염은 치통에 좋거나 고환은 정력에 좋다는 설 때문에 중국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렇다면 호랑이술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일반인들에게 개방되는 동물원은 사실 이곳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슝썬 웅호산장’의 진짜 모습은 동물원 바깥에 있는 ‘비밀 우리’ 속에 숨어있다. 줄지어 늘어서 있는 100여 개의 콘크리트 우리 안에는 각각 호랑이 3~5마리가 들어가 있으며, 호랑이들은 비좁은 공간에서 서로 몸을 맞닿은 채 살고 있다.
▲ 중국 웅호산장의 호랑이들. 상처가 방치된 채 누워 있거나 뼈만 앙상하게 남아있는 호랑이는 보기만 해도 충격적이다. 현재 웅호산장에는 1500여 마리의 호랑이가 사육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사실 이곳에서는 호랑이들을 굶겨 죽일 뿐만 아니라 간혹 머리에 총을 쏴서 도살하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또한 호랑이 사체를 유용하기 위해서 일부러 호랑이의 출생이나 사망을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는 일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렇게 도살된 호랑이들은 ‘슝썬 웅호산장’에서 약 320㎞ 떨어진 곳에 있는 지하공장 및 저장고로 보내진다. 털과 가죽이 벗겨진 호랑이 사체는 35도의 독주가 담긴 거대한 술통에 통째로 보관되며, 보통 3~9년가량 숙성 기간을 거친 후 판매된다.
현재 이 지하저장고에는 약 8000톤의 호랑이술이 저장되어 있으며, 공장에서는 연간 20만 병의 술을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은 숙성 기간에 따라 3년산은 60파운드(약 10만 원), 6년산은 92파운드(약 15만 원), 그리고 최고 등급인 9년산은 185파운드(약 31만 원) 정도에 팔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특정한 해에 담근 일부 최상급 술은 600파운드(약 100만 원)를 호가하기도 한다.
‘슝썬 웅호산장’을 방문한 관광객들 역시 동물원의 기념품 가게에서 언제든 호랑이술을 구입할 수 있다. 안내인은 유리병 안에 담겨 있는 호랑이술을 가리키면서 “우리는 진짜 호랑이술만 판매한다. 지금도 냉동고 안에는 수백 마리의 호랑이 시체들이 보관되어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하곤 한다.
이밖에도 이곳에서 생산되는 호랑이술은 베이징, 상하이, 심천 등 중국 각지를 비롯해 홍콩 등으로 납품되고 있으며, 그 수요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심천에서 호랑이술을 판매하는 한 남성은 “지난 3년간 매출이 큰 폭으로 늘었다. 특히 올해는 호랑이해라 그런지 주문량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호랑이술의 주된 고객은 중국 공산당의 고위간부들이나 사업가들 혹은 부유층 중년남성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하기 어려운 데다 비싼 가격이 특권의식이 있는 이들의 구미를 당겼기 때문이다. 마오쩌둥 역시 생전에 노화를 예방하고 정력에 좋다는 이유로 호랑이술을 즐겨 마셨던 것으로 알려졌다.
호랑이술이 잘 팔릴수록 그만큼 호랑이 수는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일. 멸종위기1급인 야생 시베리아 호랑이의 경우 현재 300마리만 생존하고 있으며, 중국 전역의 동물원에 약 5000~6000마리가 사육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문제는 호랑이술이 인기를 얻자 밀렵꾼들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 중국 농민들 가운데 밀렵꾼으로 직업을 바꾸는 경우가 매년 늘고 있는 게 현실. 호랑이 한 마리만 잡으면 농사를 10년 지어서 벌 돈을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암시장에서 죽은 호랑이는 한 마리당 2만 파운드(약 3400만 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정부의 모호한 태도 역시 문제다. 중국은 1981년 ‘국제멸종위기야생동식물무역협약(CITES)’에 가입했으며, 1993년 이래 호랑이뼈 매매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슝썬 웅호산장’을 비롯한 중국 곳곳의 동물원은 법망을 피해 혹은 정부의 묵인 하에 보란 듯이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
호랑이 멸종을 염려하는 세계 각국의 동물보호운동가들의 항의와 탄원에 대해서도 중국정부는 “일일이 단속하려면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기피하고 있는가 하면, 되레 국제사회에 호랑이뼈 매매를 중국의 전통문화 혹은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는 중국인들의 오래된 치료법 가운데 하나라며 이해시키려 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영국 동물보호단체인 EIA의 데비 뱅크스 대변인은 “호랑이술은 중국의 고귀한 전통 내지는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이 아니다. 엄연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판매되는 술이다”라고 비난하면서 당장 호랑이술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실시할 것을 촉구했다.
이대로 뒀다간 머지않아 호랑이가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애니멀스 아시아’ 재단의 질 로빈슨 회장 역시 “어쩌면 다음 호랑이해인 2022년에는 야생 호랑이가 멸종되어 있을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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