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김 장관은 이달 초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대구시장 출마의사를 재차 묻는 질문에 “(대구에 민주당의) 50대 괜찮은 카드들이 이미 있다”며, 최근 대구시장 출마의사를 밝힌 국무총리실 이상식 민정실장을 염두에 둔 발언을 하면서도 “당에서 (나에 대한) 출마 압력이 세다 해도 장관 사표 수리는 대통령과 총리실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해명을 덧붙인 대목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불출마 사유’에 방점을 찍는 듯한 발언일 수도 있지만 뒤집어 보면,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하면 출마할 수 있다” 또는 “사표 수리가 곧 ‘문심(文心)’이다”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듭된 손사래에도 불구하고 올 들어 대구지역 언론사들이 앞 다퉈 내 놓은 차기 대구시장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 결과에서 김 장관은 현역인 권영진 시장과의 지지율 격차를 지난 해 보다 두 배 가까이 벌렸다. 이에 따라 당 내 출마 압력도 덩달아 더 세졌다. 그럼에도 김 장관이 출마를 재차 고사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날 발언에 숨겨져 있는게 아니냐 추측이다. ‘문재인 후광효과’, 또는 ‘문재인 바라기’다.
최근 여의도 안팎에선 대통령 지지율이 70% 전후로 견고한 점을 들어 ‘친문 프리미엄’이 ‘현역 프리미엄’을 능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 가운데 여당 후보들이 앞 다퉈 ‘문재인 마케팅’에 나서고 있는 것도 이같은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같은 분석이 사실이라면, 이미 현역 프리미엄을 훌쩍 뛰어넘은 김 장관이 굳이 ‘문재인 바라기’를 하는 이유는 뭘까? 여기엔 숨은 이유 2%가 있다.
먼저, 앞선 권시장과의 선거 맛대결에서 석패했던 트라우마다. 지난 6.4지방선거에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이었던 김장관(40.3%)은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권 시장(56.0%)에게 16만284표차로 패했다. 당시 우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보수 여당이 작대기만 꼽아도 당선된다는 대구란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승리나 다름없는 선전이었다. 하지만 패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대구의 민주당 지지율이 한국당을 앞지르고 여야가 뒤바뀐 정치상황이지만 ‘그래도 대구’란 점도 부담이다. 보수의 마지막 보루인 TK 사수를 위해 막판 보수표심이 몰리면 누구도 승패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북구을 당협위원장 결정을 두고 홍 대표가 대구시장 선거를 직접 진두지휘해 김부겸 변수에 맞설 것이란 분석을 내 놓고 있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를 김부겸 대 홍준표의 대결 구도로 흘러간다면 김 장관 입장에서도 확실한 카드(문심文心)가 필요하다.
김 장관에게 있어 이번 대구시장 출마는 칼날 위에 서는 것과 같다. 승패에 따라 정치적 승부처가 될 수도 있고 무덤이 될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수 텃밭에서도 정치일번지인 대구 수성갑에서 민주당 국회의원 자리를 꿰찬 김 장관이 이번 대구시장 자리마저 꿰찬다면 차기 대권 후보로 또다시 부상할 수 있다. 김 장관은 지난 대선 때 새희망 포럼 단체 등을 통해 대권도전에 나섰지만 조기에 뜻을 접은 바 있다.
김부겸 장관이 지난 대선 당시 자신의 지지 모임인 새희망 포럼 발대식에서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낙선한다면 정치적 무덤이 될 수도 있다. 김 장관이 그간 불출마 사유로 여러차례 밝힌 국회의원직과 장관직을 조기에 벗어던졌다는 책임도 피할 수 없다. 지난 총선 때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면서 당시 경쟁자였던 김 장관에 비해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되면서 당으로부터 ‘수도권 회군’ 요구에 휩싸였지만, 출마를 고수하면서 낙선한 바 있다. 한 때 대권 후보로도 분류된 김 전 지사의 정치적 존재감이 당시 패배로 한순간 사라진 것.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대구 북구을 당협위원장 입성을 두고 이 지역구 민주당 홍의락 의원은 홍 대표를 향해 ‘홍문수’가 될 수 있다며 이 상황을 빗대기도했다. 김장관이 김 전지사의 낙선에 따른 후폭풍에 대한 기시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서 현재 김 장관에게는 지난 여느 선거 때 보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환경이 조성돼 있다. 하지만 거듭 출마를 고사하고 있는 것은 등판시기 조율을 통한 명분쌓기로도 불 수 있다. 이미 전국적 인지도와 대구지역 여론조사 결과에서 높은 우위를 점한 김 장관이 굳이 조기 등판할 이유는 없다는 것. 그간 “대구시장 출마는 민주당 험지에서 자신을 믿고 국회의원을 만들어 준 지역구 주민들을 실망시키는 일이다”, “지방선거를 관리감독 해야 할 수장으로 오이밭에서 신발끈을 고쳐매지 않겠다”며 불출마 의사를 밝혀 온 터라 당 내 출마 압력 보다 더 강한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 대통령의 심중(心中) 이 김 장관의 대구시장 출마 변수이자, 출마를 고사했던 숨은 2% 이유를 채워 줄 확실한 카드일 것이다.
이같은 김 장관의 출마·불출마설들도 이번 지방선거의 막판 민심을 가늠할 수 있는 설 전후 시점에서 공직선거법상 지방선거 출마 국가공무원의 사퇴 시점인 오는 3월15일 이전에는 어떤 방법으로든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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