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밭을 제 마당처럼 뛰어 다니는 녀석들의 빠알간 두 뺨과도 같은 섬 웅도. 서산 앞바다 깊은 골짜기에 꼭꼭 숨어 있는 그 모양이 웅크린 곰을 닮았다고 하여 곰섬(서산시 대산읍 웅도리)이라 불리게 된 이 섬은 하루에 두 번, 물이 빠질 때마다 육지와 연결되는 섬 아닌 섬이다.
물때는 매일 달라진다. 해변과 웅도를 이어주는 것은 길이 3백m가 채 안되는 시멘트 다리. 밀물 때 바다가 되고 썰물 때 다리가 되는 아슬아슬한 시멘트 길은 건너 마을 사람들과 웅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앞마당이다. 마침 마실갔다 돌아오던 섬 할머니가 개펄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말로(무엇 때문에) 나왔어? 뭣 쫌 했어?”
웅도는 섬 전체에서 개펄이 차지하는 면적이 섬의 윗부분보다 훨씬 더 넓다. 5km 남짓한 섬둘레를 한 바퀴 휭 둘러도 보이는 것은 뻘이 아니면 바다뿐이다. 한데 어촌의 비릿한 맛은 간데 없고 오히려 농촌의 구수한 들녘 풍경만 가득하니 묘한 일이다. 56가구나 되는 섬마을의 집집마다 한두 마리씩 묶여있는 황소와 달구지, 언덕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길의 풍경 때문이리라.
워낙 호젓한 섬이라 뭍사람의 출입은 금세 들통이 나고 만다.
“설서(서울에서) 여까정 말라고(뭐할려고) 왔댜? 뻘밭에 뭐 볼끼 있다고….”
“사진 찍으실라고? 우리가 동네 원숭이도 아이고 참말로….”
빠른 호미질에 등 한번 펼 새 없는 노인장과 아주머니는 반가운 얼굴을 하면서도 툭툭 내키지 않는 마음을 던진다. 그렇지만 그 투박한 마음은 이내 누그러져 길 안내를 자청한다.
“저짝 길로 쭈욱 가믄 교회 지나고 선착장 나와유.”
마을로 들어오니 이방인을 반겨주는 것은 매일이 심심하기만 한 동네 꼬맹이들이다. “사진 찍어줘요” 하며 일말의 경계심도 없이 조르르 뭍 사람을 따르는 아이들이다.
▲ 서산 웅도의 정겨운 풍경들.개펄을 가로지르는 소달구지, 소박한 아낙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은 가장 ‘웅도’다운 모습이다. | ||
이곳 사람들의 일터도 바로 그곳, 무인도 앞의 개펄이었다. 바다가 밀려난 개펄 위에 우마차가 집결한 풍경은 다른 섬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풍경이다. 이곳 개펄은 유난히 바닥이 질겨서 다른 지역처럼 경운기로는 진입할 엄두를 못내고 힘이 센 황소가 그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누런 황소들은 제 주인이 열심히 땀흘리는 한나절을 그곳에서 보내고 바지락이든 굴이든 한가득 차서야 조합장으로 올라올 수 있다.
오후 1시 정도 되면서 소달구지를 타고 마을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하나 둘 줄을 잇는다. 햇볕을 가리느라 온갖 수건으로 얼굴을 꼭꼭 가렸는가 하면 가슴께까지 끌어올린 작업용 비닐 바지를 웅덩이에서 씻기도 한다. 물때에 따라, 계절에 따라 굴이나 바지락, 낙지 등을 채취하는데 주민들의 양식장에는 허락 없이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소문 듣고 찾아온 사진작가들이 어느새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서 셔터를 마구 눌러대자 놀란 황소는 자꾸만 뒷걸음질치면서 주인을 힘들게 한다. “이랴~이랴” 재촉해 보지만 황소는 보란 듯이 제자리걸음이다. ‘조용히 구경하고 갔으면’하는 섬 주민들의 바람을 알 것도 같다.
조합장에서는 바지락의 무게를 재느라 시끌벅적. 웅도 어촌계가 내린 가구당 채취 할당량은 80kg으로 두 사람이 한나절 꼬박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양이다. 요즘 수매가가 1kg당 2천원 정도 하니 16만원선. 하루 수입으로는 짭짤한 편이다. 그렇게 번 돈으로 자식들을 뭍으로 학교 보내고 생활비로도 쓴다. 그러니 대신 농사 지어주는 개펄이 여간 고맙지 아니하고 무던한 황소는 자식처럼 귀히 여긴다.
웅도는 아직 그 흔한 구멍가게조차 필요치 않은 섬마을이다. 분교와 교회를 지나고 좁다란 신작로를 따라 가면 마을의 유일한 민박집인 김봉곤씨 집이 보인다.
“안개가 짙은 날은 풍경이 진짜 멋있어요. 섬 주위부터 하늘까지 빼곡히 안개로 둘러 싸여서 마치 터널 속을 걷는 것 같아요. 그런 기분은 뭐라 설명하기 어렵죠.”
3년 전 민박을 시작했다는 김봉곤씨의 설명이다. 구멍가게 하나 없는 섬이라 길 묻는 손님의 식사부터 챙긴다.
▲ 누런 황소는 경운기도 푹푹 빠지는 질긴 개펄을 주인을 싣고도 잘도 걸어간다. | ||
체면 불구하고 집에 들어서니 벽 이쪽 저쪽으로 웅도 사진이 즐비하다. 해마다 이 민박집을 이용하고 돌아간 손님들이 보내 준 사진이란다. 오지라고 소문난 이곳에 그렇게 해마다 들르는 사람들은 대개 배를 빌려 낚시를 가는 사람이거나 학술적으로 개펄을 연구하는 사람들.
“우리 집사람 음식도 방송에 나갔는데, 혹시 게국지라고 들어 보셨어요?”
게국지는 개펄에서 잡은 신선한 게를 통채로 갈아서 즙을 내고 그 국물에 배추를 넣어 담궈 뒀다가 끓여낸 이 마을 특유의 음식이다. “국물 맛이 끝내줘요”라는 어느 광고 카피가 생각날 만큼 진한 맛이다.
아직 관광지로 개발돼 있지는 않지만, 봄철 주말이면 관광버스 서너 대가 들어왔다가 가기도 하고 여름철에는 하나뿐인 민박집은 예약 완료란다. 김봉곤씨의 넉넉한 웃음을 뒤로 하고 길을 나서니 벌써 밀물이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민박집을 비켜난 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마을의 끝 지점인 선착장이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면 이 일대 섬들을 한 바퀴 돌아볼 수도 있고 건너편 이원반도로 갈 수도 있다.
웅도 정보
웅도에는 가게나 식당이 없다. 민박과 가능한 김봉곤씨 집에서 민박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다(041-663-8916). 섬에 들어가기 전 대산읍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사들고 들어가는 것이 좋다. 또 읍내에 위치한 웅도낙지(663-8898)에서 먹는 박속 낙지탕은 박속과 낙지, 청양고추를 넣고 국물을 우려낸 매콤시원한 별미다.
- 가는 길:서해안 고속도로 서산IC-32번 국도-서산시-대산읍 방면 29번 국도-대산읍 첫번째 신호등에서 좌회전(오지리)-웅도분교장 표지판에서 좌회전 뒤 3km 정도 더 달리면 웅도와 연결되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서울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서산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20분 간격). 서산시에서 웅도까지 하루 세 번 시외버스 운행중. 물때는 매일 30분씩 늦어진다. 미리 확인전화를 해보자. 서산시청 문화공보담당관실(041-660-2224), 김봉곤씨 민박집(663-8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