뎅그랑 울리는 풍경 소리에 산사임을 눈치챘을 뿐, 정신은 온통 꽃밭에 홀려 있었다. 오후 무렵이나 돼서야 절이 눈에 들어왔고, 그제서야 부처를 에워싼 꽃밭의 형체가 보였다. 꽃밭은 마치 부처가 품에 안은 하얀 꽃다발 같았다.
또 다시 구절초 피는 10월이다. 이른 아침부터 영평사로 길을 잡는다. 병아리 솜털처럼 가녀린 햇살을 품어 별처럼 반짝이는 구절초를 만나기 위함이다. 구절초는 사실, 언제 봐도 빛깔이 고운 꽃이다. 하지만 햇살 고운 10월엔 오전 10시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 흰 꽃잎마다 노란 햇살을 달고 앉아 꽃이 눈처럼, 별처럼 빛이 난다.
공주 영평사에서 구절초를 볼 수 있는 기간은 10월20일경까지. 다행히 햇살 좋은 10시경, 영평사에 도착했다. 천안-논산고속도로를 타고 정안IC에서 내려 30여 분을 달리면 영평사. 서울에서 불과 2시간 거리에 되지 않아 한나절 가족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하지만 영평사는 1980년대 지어진 절집이라서 예스런 맛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허나 절 주변을 가득 메운 구절초가 충분히 위로를 한다. 오히려 단풍보다 찬란해 눈이 행복하다.
영평사를 채운 구절초밭은 총 2천여 평. 대웅보전 뜰 앞에서부터 삼성각 뒤 산자락까지, 절 주변이 온통 소금을 뿌려놓은 듯 훤하다.
산책코스는 일주문에서 요사채~삼성각~대웅보전~동선당~남선당. 그 중에서도 요사채 옆을 통과해 삼성각까지 간 다음, 대웅보전 뒤로 돌아 나오는 길이 가장 아름답다. 특히 삼성각에 올라보는 절 풍광이 멋지다.
발 아래로 서 있는 흰빛의 아미타대불과 우람한 자태의 대웅보전, 주변을 가득 채운 구절초. 바람이라도 불면 키 낮은 구절초가 아미타대불 주위를 어른거리며 별처럼 반짝인다. 눈보라가 따로 없다. 선모초(仙母草)라는 이름처럼 흰 꽃잎이 신선보다 더 돋보인다.
시리도록 하얀 꽃잎으로 가득한 산사로 떠난 길 끝에서는 계룡산 갑사 또한 기다린다. 아직 단풍은 시작이지만, 갑사로 가는 오리숲에도 가을이 깃들었다.
구절초라면 내친 김에 정읍까지 내달려보는 것도 좋다. 전라북도 정읍시 감곡면 방교리 들녘, ‘들꽃잠농원’에도 구절초 향기가 그득하다. 이 마을 조병관씨가 10여 년 전 산에서 구절초 뿌리를 캐다가 6천여 평의 꽃밭을 가꿔놓았다. 이곳에서는 조씨가 분양하는 구절초 뿌리도 얻어올 수 있고, 구절초꽃을 넣어 만든 들꽃잠 베개 등도 구입할 수 있다. 가을엔 공주 영평사와 함께 정읍 들꽃잠 농원으로 구절초여행을 떠나봐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