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보다 푸른 바다…낭만에 ‘풍덩’
▲ 삼척의 푸른 바다를 끼고 달리는 새천년해안도로(위). 이곳에서 배용준 손예진 주연의 영화 <외출> 촬영이 한창 진행중이다. | ||
동해시의 남쪽 끝 추암해수욕장에서 삼척의 남쪽 끝 원덕읍 고포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삼척의 바다들. ‘새천년도로’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해안선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초록의 싱그러움이 만나 영화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 삼척이다. 관동팔경의 제1경인 죽서루의 선경과 용화·장호해수욕장의 깨끗하고 넓은 백사장, 남근 사당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 해신당, 이국적인 해안마을 갈남항 등 맘먹고 얘기하자면 며칠 밤낮이 필요한 곳이 또한 삼척이다.
그런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삼척에 뭐 딱히 볼 거 있나?”라고 대뜸 그렇게 물어온다. 북쪽으로는 추암해수욕장과 정동진, 남쪽으로는 죽변항, 덕구온천, 영덕 대게까지 유명해도 너무 유명한 관광지와 명물들이 주변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 풍요로움 덕분에 삼척에서 그저 7번 국도를 따라 드라이브하는 것으로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 것이 아니었을까.’ 다만 그렇게 추측할 뿐이다.
아무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 이상, 상상하는 그 이상의 것이 삼척에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싶은데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면 계절에 관계없이 ‘삼척행’을 추천한다. 물론 조금 까다로운 전제조건이 있다. 새로 생긴 잘빠진 국도를 피하고 구 도로를 이용할 것, 또 마지막까지 해안도로를 고집할 것, 죽서루에 가면 반드시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것, 이름 없는 낯선 항구를 거닐어 볼 것, 아침과 저녁에 다시 볼 것, 반드시 현지민의 조언을 구할 것 등이다.
올 9월 개봉 예정인 영화 <외출>의 촬영이 한창인 삼척. 이곳은 몇 년 전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의 촬영지로도 알려진 곳이다. 그리고 같은 감독의 신작 영화 <외출>의 촬영지로 또 한번 주목을 받고 있다.
▲ 배용준 숙소, 영화 <외출>의 촬영지인 삼척의료원과, 배용준이 다녀갔던 식당 벽에 글을 남기고 있는 팬들(사진 위부터). | ||
삼척이 이렇게 연일 촬영지로 인기를 모으는 이유는 뭘까? ‘선택’의 여지가 풍부하다는 것. 즉 산과 바다로 어우러진 넉넉한 자연환경에서부터 죽서루와 같은 아름다운 누각과 신흥사, 영은사 같은 전통 사찰, 신리 너와집, 동활계곡 같은 오지의 청정함까지 하나의 지역에서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천혜의 고장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다.
그런데 삼척의 아름다움이나 허진호 감독의 유명세조차 무색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바로 한류 열풍의 주인공 배용준으로 그의 인기는 삼척 시내 곳곳에 내걸린 포스터만으로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욘사마’로 불리는 그로 인해 삽시간에 삼척은 아시아 유명 관광지로 승격된 듯한 분위기.
영화의 주 무대는 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삼척의료원, 죽서루, 그리고 새천년해안도로에 위치한 펠리스호텔이다. 영화 내용상 배용준과 손예진이 각각 아내와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곳이 삼척의료원으로 설정돼 있다. 영화의 중요 장면들이 삼척의료원을 중심으로 한 인근 거리에서 촬영돼 삼척이 제2의 춘천으로 불릴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벌써부터 배용준이 거쳐 간 모든 곳이 ‘브랜드’가 될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삼척의료원의 로비와 매점, 죽서루, 인근 음식점(영빈회관, 새은혜식당, 돈방석), 모텔(삼흥모텔), 카페(이삭, 자전거도둑), 약국(소망약국), 화원 등 지금까지 촬영했던 모든 곳들이 유명세를 단단히 치르고 있었다. 심지어는 배용준이 다녀간 식당에 찾아와 그가 사용했던 수저를 달라고 부탁하는 일본 팬, 배용준이 앉았던 방석을 놓고 인사를 하는 팬 등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민망하고 안타까울 정도라고 한다.
“오늘 배용준이 촬영 왔는데, 한 달씩 장기 투숙한 일본 아주머니가 안 보이네. 이를 어떡해?”라며 발을 동동 굴리는 편의점 주인아줌마.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서로를 챙겨주는 사이가 됐을 정도라고. 누구는 “오히려 삼척 사람들은 특별한 반응이 없다”라고 말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무심한 듯 보이지만 설레고 들뜨는 마음을 숨길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 삼척 용화해수욕장. 열대의 바다 못지않은 투명한 물빛을 자랑한다.(위) 관동팔경 중 제1경으로 꼽는 죽서루. 이곳에서도 영화 <외출>이 촬영됐다.(아래) | ||
죽서루는 자연 암반을 그대로 주춧돌로 이용한 덕분에 누각 아래 13개 기둥의 길이가 조금씩 다르다. 그리고 누각 위로는 20개의 기둥이 있는 데 비해 누각 아래로 오히려 더 적은 13개의 기둥이 세워진 것도 여러 개의 주춧돌을 대신할 수 있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울퉁불퉁한 바위의 모양을 따라 나무 기둥을 세밀하게 다듬어 아귀를 맞춘 것이다.
나무보다 돌의 자연성을 강하게 지켰던 전통건축의 면모가 여기서도 드러난다. 누각으로 올라서는 데는 그 흔한 돌계단도 없다. 자연 그대로의 바위가 계단이 되고 길이 되도록 배치하였다. 죽서루가 ‘관동제일경’으로 빛나는 것은 이러한 자연의 조화에 대한 경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 죽서루에 올라서보자. 옆에서 보면 학이 날개를 펴든 것처럼 웅장한 팔작지붕에 처마의 끝은 한복 소매처럼 우아하다. 건물 자체의 그러한 아름다움과 더불어 뛰어난 주변경관 때문에 일찍부터 이곳엔 사시사철 시인묵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죽서루에 올라서보면 멀리 백두대간의 웅장함과 가까이 오십천의 잔잔한 물길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선경이 따로 있을까 싶은데 한 쌍의 원앙이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경치를 완성하고 있다.
한 여름에도 더위를 잊을 만큼 시원하다는 죽서루에는 역사의 숨결이 밴 여러 편액들이 남아 있다. 고려 말 학자 이승휴, 조선 중기의 율곡 이이, 송강 정철 등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죽서루의 아름다움을 글로 남겨 놓았다.
이외에도 죽서루 오른쪽에는 용문바위라 불리는 신령스런 바위가 남아 있는데 용이 지나간 흔적과 같은 모양의 구멍이 있어 이곳을 통과할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또 바위 위에는 풍요와 생산을 의미하는 성혈이 10여 개 남아 있다. 자연 경관을 만끽하고, 덤으로 기원도 해보면 어떨까.
▶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나 동해방면 7번국도-삼척해수욕장-새천년도로(펠리스호텔)-정라회센타를 지나 시내 방면 또는 죽서루 이정표 따라 우회전-죽서루(삼척의료원 일대 <외출> 촬영지)
▶먹거리와 숙박 삼척의료원 뒤편인 죽서루 일대의 식당들이 대부분 맛있다. 삼척의 별미로는 곰치국이 있으며 깔끔하고 반찬이 맛있는 곳으로는 새은혜식당(033-573-7969)과 돈방석회관(033-574-7890) 등이 있다. 배용준이 다녀갔다고 해서 ‘욘사마 정식’을 선보이는 곳도 있다.
숙박지로는 배용준의 숙소이자 촬영지로 알려진 펠리스호텔(033-575-7000)을 추천한다. 해안도로의 절경을 감상하기에 그만이지만, 비용이 부담스러우면 호텔에서 운영하는 펠리스민박을 이용해도 된다. 방에서 일출을 감상할 수 있고 주변의 횟집과 편의시설이 완벽한 편. 그외 죽서루 앞의 삼흥모텔을 이용해도 된다.
▶문의 관광안내소 033-575-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