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장난보다 더 재밌다 신기한 ‘밀가루 나라’
▲ <가루야 가루야> 공연 한 장면. 한톨의 밀알이 밀가루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 ||
‘가루야 가루야’는 쉽게 말하자면, ‘밀가루에 의한’ ‘밀가루를 위한’ 공연이다. 밀가루를 주제로 한 하나의 공연이면서 동시에 밀가루 체험놀이가 결합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공연은 지난해에 인기를 끌었던 흙놀이 ‘바투바투’의 이영란 작가가 새롭게 기획한 것으로, 이번에는 밀가루에서 재밌고 신비한 이야기들을 끄집어냈다. 작가는 2000년부터 놀이와 예술이 어우러진 <어린이를 위한 다섯 가지 ‘흙놀이’>를 발표, 현재까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전체 공연시간 중 25분은 공연으로, 40분은 밀가루 놀이 체험으로 이뤄진다. 요즘처럼 플라스틱 장난감과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어린이들에게는 이 ‘밀가루 놀이’가 생소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공연을 관람하고 나면 밀가루를 이용한 갖가지 놀이(형체 만들기, 반죽하기, 쿠키 만들기)에 자연스럽게 빠져들 수가 있다.
공연이 진행되는 곳은 올림픽홀의 역도경기장. 3백 평의 넓은 공연장에 학부모를 포함해 최대 1백50명까지만 입장 가능하므로 공간적으로는 매우 여유롭다. 체험의 순서에 맞추어 재탄생한 공연장은 대나무숲길로 입장해서 ‘공연장’ - ‘빵의 나라’(가루나라, 물의 나라, 반죽나라) - ‘밀가루 나라’의 순으로 진행되고 이어 ‘바람방’으로 퇴장하게 된다. 특이한 것은 모든 공간을 맨발로 걸어 다닌다는 점이다. 관람객뿐 아니라 공연을 하는 배우들, 진행을 도와주는 스태프들까지 모두 맨발이다.
대나무 숲길을 지나면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무한대로 자극시켜줄 공연장으로 들어서게 된다. 25분간의 공연은 이야기 천사의 무대로 ‘가루 아이’의 꿈속에서부터 출발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이와 고요가 흐르고 이내 한 갈래 길이 나타난다. (배우가 밀가루를 밀어 바닥에 길을 만들어준다.) 이어 “쿵” 하고 커다란 ‘하얀 산’이 가루 아이 앞에 떨어진다. 가루로 되어 있는 그것은 눈이 부시다. 아이가 다가가서 냄새도 맡고, 만져도 본다. 아이는 우연히 ‘물’을 발견하게 되고 손을 씻다가 물과 가루가 엉겨 덩어리가 생기는 것을 발견한다. 아이는 밀가루 놀이에 깊이 빠져든다.
이처럼 ‘가루야 가루야’의 공연은 한 톨의 밀알이 씨앗이 되고 자라서 밀이 되었다가 가루가 되어서 어린이들의 손에 들어오는 일련의 과정을 연극으로 보여주고 있다. 처음 듣고 보는 ‘밀가루’의 이야기에 어린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 <가루야 가루야> 공연 모습(위)과 아이들의 밀가루 놀이 모습. 하얗게 가루를 뒤집어써도 마냥 즐겁다. | ||
“자~ 이게 뭘까요?”
“밀가루요”, “반죽이요!”
이번엔 빵 공장의 주방장이 밀가루를 들고 인사를 한다.
“자~ 이제 고무판 위에 물로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세요.”
좀 전의 공연에서처럼 고무판 위에 물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밀가루를 뿌린다. 그리고 툭툭 털어내면 어느새 물과 밀가루가 만나 재밌는 그림이 만들어진다.
이번엔 조금씩 나누어진 밀가루와 물을 이용해 반죽을 해보는 시간. 주무르고 두드리고 시끌벅적 난리도 아니다.
“저요, 저요!”
“토끼 만들었어요!” 자신의 동물 쿠키를 보여주고 싶어 여기저기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 이럴 때 엄마나 선생님의 애정 어린 칭찬은 그야말로 ‘약’이 된다. 어린이들이 만든 갖가지 모양의 쿠키는 즉석에서 구워서 봉투 속에 담아준다. 이 방에서는 밀가루와 물이 만나 반죽이 되고, 반죽으로 모양을 낸 뒤에 직접 빵이 되는 전 과정을 실제로 체험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이들이 제일 즐거워하는 시간은 세 번째 순서인 밀가루 나라다. 한 곳은 통밀이 가득 쏟아져 있고 또 한 곳은 하얀 밀가루가 수북이 쌓여있다. 역시 아이들인지라 이곳에서 신나게 뛰어 다니는 것을 제일 좋아했다.
통밀에서 누워 ‘허우적 허우적’ 수영을 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밀가루를 채에 걸러서 눈을 만들기도 하고, 밀가루로 모래성을 쌓는 아이도 있다. 만지고, 뿌리고, 흔들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껏 신이 나 있다. 두 발에 닿는 통밀의 까끌까끌함, 밀가루의 부드러움이 낯설면서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머리가 하얗게 새버린 아이들은 하얀 점으로 얼룩덜룩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또 한 번 “깔깔깔”. 엄마들도 성한 옷차림이 없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조금 밝은 색의 옷을 입는 것이 좋겠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람방’에서 모두 날려버리면 그만이다. 머리 얼굴 팔 다리까지 바람으로 털어주기 때문이다.
‘가루야 가루야’는 밀의 기원부터 성장, 다양한 쓰임새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체험이었다. 밀을 하나의 생명체로 느끼게 만드는 그 상상력이 재밌고 유익한 시간을 선사하고 있는 것. 자주 볼 수 없는 색다른 공연이지만 체험에 필요한 가격이 조금 비싼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유치원이나 학교처럼 단체신청하는 것이 할인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듯 싶다.
체험 안내
▶More info: 이영란의 밀가루 놀이 ‘가루야 가루야’
▶기간: 7월9일~8월28일 (월요일 휴관)
▶시간: 11:00/12:00/점심/2:00 /3:00/4:00/5:00(6회)
▶소요시간: 1시간10분
▶입장료: 2만 5천원
▶장소: 올림픽공원 내 제 3체육관 (역도경기장), 5호선 올림픽공원역
▶문의: 02-569-06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