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느끼는 것은 상대적이다.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같은 시간이라도 사람들의 감성의 속도는 각기 다르다. 속도는 다르지만 방향은 같다. 과거-현재-미래로의 진행.
Khora-170408-b: 53.0X41.0cm mixed media 2017
이런 시간의 모습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곳은 절벽이다. 절벽은 지구의 나이를 보여준다. 켜켜이 쌓인 지층은 수천 혹은 수억 년의 시간을 축적하고 있다. 지질학적 시간이다. 절벽에는 지질학적 시간이 지층으로 굳어있다. 시계 초침 소리를 들으며 느끼는 시간과는 너무 다른 감정을 준다.
빛의 속도로 날아와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별들이 속한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다른 법칙 속에 있다. 천문학적 시간이다. 이를테면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우리는 무심히 바라본다. 그 중 300광년 떨어진 별을 보고 있다고 치자. 우리 눈에 들어온 그별이 지금 이 순간 그 자리에 있을까. 우리가 보고 있는 별은 300년 전의 모습이다. 이처럼 인간의 시간으로 별을 재단하면 허무할 뿐이다.
이런 시간을 미술에서는 어떻게 그려냈을까. 서양미술에서 시간은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중세부터 의인화된 시간이 그림에 등장했지만, 설득력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은 17세기경이다. 날개가 있고, 낫과 모래시계를 들고 있는 노인의 모습이다. 시간을 신격화했던 고대 문화 영향이다.
Khora-171109: 53.0X45.5cm mixed media 2017(왼쪽), Khora-171122: 110X110cm mixed media on canvas 2017
김영운도 시간을 그린다. 그는 시간의 흐름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을 주목한다.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설정하기 어려운 공간으로 표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시간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공간 역시 보이는 것 같지만 가늠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처럼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화면에 담았을까.
우리가 시간을 느끼는 것은 경험한 사실들의 순서 때문이다. 이를테면 잠을 깨고-세수를 하고-아침을 먹고-집을 나서는 일상의 사건들. 이것들이 일어나는 순서에서 시간이 흐른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렇게 하루의 일상이 지나고 쌓여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흐른다.
지나간 시간을 느끼는 것 역시 자신이 경험한 많은 일들의 축적된 기억 때문이다. 마치 절벽 지층의 두께로 수억 년의 시간을 가늠하듯이. 김영운은 자신이 경험한 일이 만들어낸 기억에서 공간을 찾아낸다. 일어난 사실과 사실 사이에서.
Khora-171101: 162.0X130.3cm, mixed media on canvas 2017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현재까지 흘러온 40여 년 시간을 공간으로 표현한다. 경험한 일들을 오래된 순으로 겹쳐 그리는 방법으로. 그림을 보면 바탕에 여러 가지 형상이 무질서하게 엉겨 있다. 경험한 일들을 겹쳐서 그린 것이다.
이처럼 철학적 명제를 담고 있지만 그의 그림은 매우 장식적이다. 화려한 색채와 추상적 문양이 보여주는 조화 때문이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