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뇌도 씻기는 ‘꽃비’ 맞으러 가자
▲ 불국사 비로전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목련. | ||
불국사를 가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학창시절 수학여행이든, 아니면 가족여행이든 한 번쯤은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을 눈으로 확인했던 기억이 있을 터. 그러나 이번 여행은 불국사의 유물과 유적을 목적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다. 절 곳곳에 화사하게 ‘불’을 놓은 꽃을 보러 간다.
경주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벚꽃이 길마다 만발했다. 거의 모든 가로수가 벚나무인 경주는 진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벚꽃 명소다. 대릉원과 천마총 가는 길, 보문단지 가는 길 등 어느 길 할 것 없이 벚나무가 길 양쪽으로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서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불국사로 이어지는 7번 국도변도 마찬가지. 끊임없는 벚꽃의 행렬에 마음이 달뜬다.
벚꽃의 호위를 받으며 도착한 불국사는 그보다 더한 꽃밭이다. 주차장 위에 자리한 공원은 왕벚꽃 그늘에 잠겨 있다. 마치 구멍이라도 뚫리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벚나무는 온힘을 다해 가지를 벌리고 그 틈마다 꽃으로 메웠다.
흔히들 벚꽃을 일본의 국화로 알고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일본은 따로 국화를 지정해 놓은 것이 없다. 게다가 불국사 일대의 왕벚꽃은 우리나라 특산종이다. 일반 벚꽃보다 잎이 크고 꽃자루에도 잔털이 많다. 마치 수국이 몽실몽실 피어난 것처럼 왕벚꽃은 한데 모여 피면서 다른 벚꽃과 차별화된 존재감을 뽐낸다.
공원 벚나무 아래는 잔디밭이다. 나들이를 나온 가족과 연인들이 잔디밭에서 뛰놀거나 돗자리를 깔고 누워 봄의 나른함을 즐기고 있다. 이 공원에는 특별한 또 한 종류의 벚꽃이 있다. 슬슬 개화하기 시작한 왕접벚꽃이다. 옅은 분홍의 왕벚꽃과 달리 이 벚꽃은 열흘 정도 개화가 늦다. 색깔은 진한 다홍색. 장미와 벚꽃을 접붙여서 탄생시킨 벚꽃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개발해 심은 것이다. 사과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꽃은 특이하게 생겼다. 하지만 제아무리 곱다한들 결정적 단점이 하나 있다. 향기가 없는 것이다. 그저 눈으로 보는 것으로 벚꽃구경을 끝내야 한다.
공원 뒤편 산책로를 따라 불국사로 올라가는 길에는 개나리가 활짝 피었다. 200m쯤 되는 짧은 길이지만 개나리가 치렁치렁한 가지를 드리우며 노란 꽃을 자랑스럽게 선보이고 있다. 그 머리 위에서는 벚나무가 개나리를 굽어보고 있다.
▲ 불국사 입구의 벚꽃과 개나리. 눈을 감아도 떠도 봄이 코끝에서 맴돈다(위). 아래는 불국사 앞마당의 다보탑. 원 안은 대웅전 처마 밑 잉어를 물고 있는 용.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원리를 설명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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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만이 아니다. 무설전 뒤편, 관음전과 비로전 일대가 목련에 의해 점령당했다. 특히 비로전 담장 위는 벚꽃과 목련이 어울려 도무지 시선조차 떼지 못할 장면을 연출한다.
불국사에서는 특이한 모양의 목련도 볼 수 있다. 대웅전 오른편 언덕과 후문으로 가는 길가에서 간혹 보이는 큰별목련이다. 하늘나리처럼 꽃잎을 바깥으로 말아 넘기며 활짝 핀 이 목련은 우리가 흔히 도화지에 그려 넣는 다섯 꼭짓점의 별을 닮았다. 어쩌면 큰 귀를 축 늘어뜨린 서양종 바셋하운드라는 개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매화도 보이지만 무설전 옆 법화전지 쪽에는 산수유가 곱게 피었다. 벚꽃, 목련, 산수유, 개나리, 매화. 따분할 수도 있는 경내를 거니는 것이 마치 봄꽃박람회장에 소풍 나온 것처럼 즐겁기만 하다.
꽃에 정신이 팔렸다지만 석가탑과 다보탑의 모습은 깊이 간직하고 나오자. 지금이 아니라면 1년 후에나 다시 볼 수 있다.
이 두 탑은 상반기 내로 해체작업과 함께 보수에 들어간다. 누수와 오염이 심각해 탑이 계속 무너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경주 감은사지 서(西) 3층 석탑의 복원을 끝낸 팀이 투입돼 두 석탑을 보수할 계획이다. 수리 기간에도 투명 가림막을 설치해 보수 과정을 공개한다지만 완벽한 균형미를 보여주는 두 탑의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아쉬움이 크다.
현재 석가탑은 뒤틀림이 더 심해져서 계속 석축이 내려앉고 있다. 석가탑은 이미 고려 때 두 차례나 중수 과정을 거쳤고 1966년에는 완전히 해체 수리한 적이 있었다. 이번으로 벌써 네 번째다.
사실 이즈음의 불국사는 다소 번잡스럽다. 단체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불국사로 간다면 아침이나 저녁 무렵이 좋다. 절의 고즈넉함을 제대로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또 택하라면 저녁이다. 멋진 해거름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의 해거름은 한마디로 장관이다. 멀리 경주 남산 뒤로 해가 지는데 하늘은 불타고 지붕들 위로 비죽 머리를 내민 석가탑과 다보탑만이 그 경관을 목도하고 있는 듯하다.
여행 안내
★길잡이: 경부고속국도 경주IC→경주박물관 방면 직진→배반동 사거리에서 우회전→7번 국도→불국사
★먹거리: 대릉원 인근 원풍식당(054-771-4433)의 한정식이 유명하다. 스무 가지가 넘는 반찬이 나온다. 손님 수에 맞게 상을 차려 개별 방으로 들여온다. 1인분 1만 2000원. 그 앞, 황남맷돌순두부(054-771-7171)도 ‘추천 맛집’이다. 해물순두부 전골이 알아주고 간단히 먹기로는 해초비빔밥과 순두부가 함께 나오는 메뉴가 있다. 1인분 8000원.
★잠자리: 경주는 국민관광단지답게 숙박시설이 충분히 갖춰져 있다. 보문단지권 경주관광호텔(054-745-7127), 경주교육문화회관(054-745-8100), 힐튼호텔(054-748-4848). 한화리조트(054-777-8900), 일성콘도(054-744-1199) 등이 있고, 불국사 근처에는 코오롱호텔(054-746-9001)이 있다. 시내권에는 모텔들이 많다.
★문의: ●경주시청 문화관광포털(http://culture.gyeongju.go.kr) 054-779-6396 ●신라문화원 (www.silla.or.kr) 054-774-1950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