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벗고 바람을 입었다 ‘맛의 2단 변신’
▲ 과메기의 고향 구룡포 앞바다. 갑자기 멸치떼가 나타나자 갈매기들이 모여들어 축제를 벌인다. | ||
포항시 동남쪽에 자리한 구룡포는 제법 규모가 큰 포구마을이다. 이 마을의 겨울은 과메기로 상징된다. 과메기 하면 곧 구룡포다.
과메기는 꽁치를 겨울바람에 말린 것을 말한다. 11월 말부터 덕장에 걸어 말리기 시작한 과메기는 따스한 봄바람이 불기 전인 3월 초까지 구룡포의 경제를 떠받친다.
과메기는 추운 겨울날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구들구들하게 육질이 숙성된다. 과메기는 원래 청어로 만들었다. 청어의 눈을 꼬챙이 따위로 꿰어 말려먹었는데 ‘찌를 관(貫)·눈 목(目)· 고기 어(魚)’를 써서 ‘관목어’로 부르다가 과메기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청어잡이가 어려워지면서 지금은 꽁치로 대체됐다. 청어과메기는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다시피 했다.
과메기는 만드는 방법에 따라 두 종류가 있다. 배지기와 통마리(엮거리)다. 배지기는 꽁치의 배를 반으로 갈라 내장을 파낸 후 말리는 것이고, 통마리는 전혀 손질을 하지 않고 짚에 묶어 그대로 말리는 것이다.
배지기는 3~4일이면 충분히 마르지만 통마리는 30~40일 동안 천천히 말려야 한다. 배지기에 비해 통마리는 특히 날씨를 많이 탄다. 어지간하게 추워지면 배지기를 시작할 수 있지만 통마리는 수은주가 영상과 영하 사이를 오르락내리락거릴 정도가 되어야 한다. 부패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빼내지 않은 내장은 꽁치의 살 속에 그대로 흡수되면서 맛이 고소해진다. 과메기는 또한 영양적인 면에서도 생물 꽁치에 비해 훨씬 낫다. 꽁치에서 과메기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두뇌 발달에 좋은 오메가3와 DHA, 비만 예방에 탁월한 핵산 등이 더욱 풍부해진다.
▲ 구룡포 과메기. 짚으로 엮어 통으로 말리는 통마리(엮거리)다. 가운데 사진은 과메기 손질에 여념이 없는 구룡포 주민. 오른쪽 사진은 대게가 풍성한 구룡포항. 영덕 강구항에서 이곳으로 와서 대게를 구입해 갈 정도로 구룡포항은 우리나라에서 대게가 가장 많이 거래된다. | ||
과메기덕장은 구룡포에서 북쪽으로 뻗은 해안에 모여 있다. 큰 덕장을 가지고 과메기 도소매업을 전문으로 하는 곳들도 많지만 일반 가정에서도 대부분 과메기를 널어 말린다.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하다보면 빨랫줄이나 대나무 따위에 걸어 과메기를 말리는 어촌 풍경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구룡포항 뒤편에 일본인가옥거리가 있는데 이곳에도 어김없이 과메기들이 걸려 있다.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는 1930년대 조성되었다. 구룡포는 일제강점기 때 동해안 어업전진기지로 발전하면서 일본인 이주가 크게 는 곳이다. 1933년에는 일본인가옥이 무려 220호에 이를 정도였다. 이 가옥들은 현재까지도 대부분 남아 있다.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에 들어서면 마치 일본에 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집들은 간혹 비어 있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작고 반듯하게 지어진 집의 옥상을 이용해 과메기를 말리거나, 아예 집 자체를 창고로 개조한 곳들도 보인다. 과메기 작업을 하는 주민들에게 “잠깐 구경 좀 해도 되겠냐”면 스스럼없이 문을 열어주고 작업 모습을 공개하는데 겸사겸사 일본인가옥 내부도 볼 수 있다.
물론, 구룡포는 과메기가 대표 먹거리다. 그런데 구룡포항에 가면 이상하게도 대게음식점들이 많다. 길가에 대게집들이 즐비하다. 알고보니 대게 하면 또 구룡포다.
일반적으로 대게는 영덕이다. 하지만 상식의 오류를 바로잡자면 영덕은 대게의 소매상권이 형성된 곳이라는 게 맞다. 반면 구룡포항은 대게의 유통 본거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대게의 70% 이상이 구룡포항에서 위판된다. 대게잡이가 한창인 요즘, 구룡포항 위판장에서는 매일 아침 대게경매가 열리는데 영덕 강구항에서도 대게를 대량 구입해간다.
▲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 구룡포 항에는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일본인들의 가옥들이 남아 있는 거리가 있다. | ||
이곳에서는 싱싱한 대게를 믿고서 구입할 수 있다. 대게는 단지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대게 중에서 으뜸으로 치는 박달은 게뚜껑의 크기가 15㎝ 이상 되는 것으로 살이 꽉 차 있다. 박달나무처럼 묵직하고 단단하다 해서 박달이다. 그러나 박달처럼 크고 무겁지만 먹을 것이 하나 없는 물게도 있다. 이곳에서는 ‘수기’라고 하는데 게 살 속에 물이 반쯤 차 있다. 게가 살아있을 때는 무겁지만, 쪄 놓으면 물이 다 빠져나가 아주 가볍다. 상인들이 친절히 설명해주고 직접 골라주기 때문에 행여 물게를 비싸게 주고 구입할까봐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편 과메기와 대게의 고장인 포항 구룡포 여행길에는 호미곶도 들러보도록 하자. 호미곶은 대표적인 새벽여행지다. 육지로만 따진다면 울산의 간절곶 다음으로 해가 빨리 뜨는 곳이다. 호미곶 뒤쪽에는 우리나라에서 역시 두 번째로 오래된 등대가 서 있고, 바다에는 청동으로 만든 커다란 손이 박혀 있다. ‘상생의 손’이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2000년 밀레니엄 행사를 앞두고 바다와 육지광장에 각각 하나씩 만들어 세운 것이다. 바다 쪽 작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해오름이 인상적이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