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아래 아름다운 비탈길
▲ 후암동 406번지 일대 새싹길. 이곳은 하늘텃밭이다. 서울의 하늘과 가장 가까운 옥상과 골목계단에 화분을 놓아 상추, 파, 고추 등 먹거리와 꽃들을 키운다. | ||
여의도와 함께 서울의 벚꽃 명소로 꼽히는 곳이 바로 남산이다. 4월 신록의 빛깔과 함께 바야흐로 완연한 봄임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남산을 끼고 도는 소월길의 벚꽃이다. 마치 나사선처럼 남산을 빙빙 돌며 올라가는 그 도로가에는 벚꽃이 그야말로 흐드러지게 피었다. 서울시립남산도서관 뒤편으로 오르는 산책길도 마찬가지. 바람이 불 때마다 벚꽃잎 흩날리며 봄을 찬양케 만든다.
하지만 남산의 봄이 우리의 목적은 아니다. 남산이 끼고 있는 가장 높은 동네, 골목이 아름다운 후암동을 걷는 데 시간을 할애하려 한다. 후암동은 남산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평지에서부터 중턱의 가파른 비탈에 이르기까지 길고 넓게 퍼져 있다. 동쪽으로 용산2동, 서쪽으로 동자동과 갈월동, 남쪽으로 남영동에 접한다. ‘후암’(厚巖)이라는 동명은 크고 두꺼운 바위가 실제 있었다고 해서 생겼다.
후암동은 광복 전에는 삼판통(三坂通)이라 불리는 일본인 집단거주지역이었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용산에 대규모 군사기지를 건설하면서 후암동 주변으로 일본인들이 몰려들어 살기 시작했다. 해방 후에는 월남정착민들과 이촌향도의 물결에 몸을 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토막집을 지으며 자리를 잡았다. 평지와 가벼운 비탈의 경우 저층 아파트와 상가 등이 들어서면서 당시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지만, 꼭대기 방면은 바뀐 게 거의 없다.
두 지역은 두텁바위길을 기준으로 나뉜다. 두텁바위길 위쪽이 이번 골목여행에서 주목하는 곳, 바로 406번지 일대다. 좀 더 자세히 제시한다면 이 일대는 서쪽으로 두텁바위길, 동쪽으로 소월길, 남쪽으로 해방촌, 북쪽으로 후암초교에 의해 구획된다.
이 지역의 건물은 낮고, 좁고, 낡았다. 게다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 후암동에서도 가장 극적인 옛 골목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곳에는 총 134동의 주택이 들어서 있다. 숙대입구역 2·3번 출구로 나온 후 용산중과 영주교회를 지나면 406번지 쪽이다. 활터1길, 후암새싹길, 미리내길 등이 마치 미로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하지만 406번지로 가기 전, 먼저 들러야 곳이 있다. 108계단이다. 2004년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중 주인공 소지섭의 엄마가 국수가게를 했던 그 계단이다. 108계단은 용산중과 우리은행 사이에 높이 놓여 있다.
골목여행의 출발점인 영주교회 건물은 크고 높고 화려함을 추구하는 요즘의 교회건축물과 달리 주변과의 어울림을 중시한다. 남루한 동네의 고압적인 건물이 아니라, 주위 환경과 교묘히 어우러지는 교회다.
후암동성당도 비슷하다. 성당은 두텁바위길 아래쪽에 자리한다. 후암삼거리에서 후암동길을 따라 가다가 우체국을 끼고 용산도서관을 향해 오르다보면 나온다. 1954년 현재의 지점에 터를 잡았다. 아담한 마당과 절제가 돋보이는 키 낮은 본당건물이 편안함을 안긴다. 이곳에서 드라마 <겨울연가>를 촬영하기도 했다.
▲길잡이:
지하철 4호선 서울역과 회현역, 숙대입구역에서 후암동으로 갈 수 있다. 서울역 11번 출구와 회현역 4번 출구에서는 남산도서관, 숙대입구역 2번과 3번 출구에서는 후암동 406번지 골목 접근이 쉽다.
▲문의: 후암동주민센터 02-754-2885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 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