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vs 비주류? 알고보면 ‘정들의 전쟁’
▲ 오는 7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세균(위)계와 정동영계의 세대결이 벌써부터 팽팽하다. | ||
지난 1월 14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 민주당 비주류 의원모임인 ‘국민모임’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모임 대표인 강창일 의원은 정세균 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강 의원은 “지난 연말 모든 의원이 4대강 예산투쟁을 위해 국회 예결위회의장을 점거하기로 결의한 그날, 대표란 사람은 을지문덕함에 올라가 한가롭게 만세나 부르고 있었다”며 “이젠 당에 새로운 얼굴이 필요하다”고 정 대표 퇴진을 요구했다.
이날 토론회의 ‘백미’는 문학진 의원이었다. 평소에도 정 대표를 강하게 비판해왔던 문 의원은 이날 작심한 듯 독설을 쏟아냈다. “정 대표가 오는 7월 차기 당 대표와 2012년 당 대선후보가 되겠다는 일념 아래, 당의 공조직을 이용해 사조직을 만들었습니다. 대표직을 이용해 줄세우기를 하고 사리사욕을 챙기겠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증거를 공개할 용의도 있습니다.”
민주당의 차기 당권을 둘러싼 내전이 시작됐다. 그간 ‘거대 여당’에 맞서기 위해 ‘전략적’ 단일대오를 유지했던 민주당이지만, 목전에 닥친 지방선거가 현 정세균 체제를 고수하려는 주류 측과 당권을 회수하려는 비주류 측 간의 충돌에 불을 댕겼다. 특히 정동영 의원과 ‘강성’인 천정배 의원 등 ‘비주류 거물’들의 복귀가 맞물리면서 화력이 더욱 거세지는 형국이다.
토론회의 참석자 면면만 봐도 비주류 진영의 ‘작심 정도’를 알 수 있었다. 2008년 당 대표 경선에서 정 대표와 맞붙었던 추미애 의원과 정대철 상임고문, 또 원내 복귀 일성으로 지도부를 맹성토했던 천정배·장세환·최문순 의원, 대표적 비주류 인사인 이종걸 의원 등이 얼굴을 비췄다. 특히 차기 당권을 노리는 박주선 최고위원, 박지원 정책위의장 등 지도부 일원들도 현장에 나타나 묘한 상황을 연출했다.
이들 국민모임 의원들은 토론회에 앞서 두 차례 비공개 간담회를 갖고 발언 수위와 전략을 사전 조율했다는 후문이다. 이 같은 비주류 결집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지도부가 이날 비슷한 시간대에 ‘전국지역위원장 간담회’ 일정을 잡은 것을 놓고도 “벌써 견제를 시작한 게 아니냐”(한 소속의원)고 할 정도로 긴장감은 높았다.
정 대표를 위시한 주류 측은 공식적으론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정 대표는 최근 사석에서 이들의 토론 준비 상황을 보고 받고 “그 자리에서 무슨 얘기가 나오든 내가 눈 하나 깜빡하나 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막상 이날 ‘사조직’ ‘사리사욕’ ‘비상 집단지도체제’ 등 격한 주장들이 쏟아지자 정 대표 측도 대응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사조직’ 주장과 관련해선 그냥 넘어가기엔 부담이 컸다. 문학진 의원 측은 지난 연말 소속 의원 전원이 예산투쟁을 위해 국회에서 점거농성을 하고 있을 때, 정 대표가 당내 지방선거 출마예상자들과 함께 대규모 회합을 갖고 ‘충성서약’을 받는 등 줄세우기를 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정 대표의 한 핵심측근은 “변변한 계보도 없는 사람한테 무슨 망발이냐”며 “그러잖아도 우리 역시 그런 걸 만들어야 한다는 내부고민이 있던 찰나였는데 차라리 잘됐다”고 맞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정 대표 측이 불쾌해하는 것은 이 모든 상황의 배후에 정동영 의원이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 때문이다. 실제 국민모임 의원 대다수는 정 의원과 가까운 전북 출신들이거나 과거 정동영계 소속 의원들이다. 우상호 대변인은 ‘공식’ 현안브리핑을 통해 “토론회에 참석한 다수 의원들이 ‘특정 정치지도자’와 관련된 분으로 알고 있는데, 이 분의 복당을 위해 내부 반발의견을 설득하고 있는 당 대표에게 근거 없는 비난과 비판을 전개한 것은 우려스럽다”며 “복당을 받아들여 통합의 움직임으로 가고자 하는 이때에 뒤에서 공격해서야 되겠느냐.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 손학규 | ||
이 같은 양측의 충돌은 단기적으로 지방선거 공천권, 길게는 차기 당권 및 대선후보직 쟁탈을 위한 경쟁이 본격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 의원이 기를 쓰고 조기복당에 목을 매는 것도 2∼3월쯤 가닥이 잡힐 호남권 공천에서 자파 후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세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당의 ‘통합·혁신위원회’가 개혁공천을 위해 내놓은 ‘시민공천배심원제’를 놓고도 계파 간의 갈등이 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1월 14일 각 지역위원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시민공천배심원제 설명회에서 국민모임 장세환 의원은 “지도부가 공천권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하는 반개혁, 반민주 공천방안”이라고 항의했고, 주류 측 강기정 의원은 “밀실공천을 막고 시민과 당원에게 공천권을 돌려주는 것”이라며 신경전을 펴기도 했다.
특히 차기 당권의 경우 총선과 대선이 열리는 2012년 7월까지 임기가 보장돼 있어 당 대표가 되면 자파의 세력 확장은 물론 대선후보 경쟁에서도 가장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 주자군의 치열한 쟁탈전이 불가피하다.
현재로선 차기 당권도 결국 정 대표와 정 의원, 손학규 전 대표의 3파전 양상으로 진행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정 대표는 지난 1월 7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임기 만료 후 국민과 당원의 평가를 받겠다”며 당권 재도전 의사를 밝혔고, 정 의원과 손 전 대표도 그간 정치공백에 따른 지지세 재구축을 위해서는 당권 확보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 의원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당권도전 의사를 묻는 질문에 “아직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며 말을 아끼면서도 “야권 통합을 위해 백의종군의 자세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해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손 전 대표 역시 “서서히 당권을 잡는 쪽으로 마음을 돌리는 것 같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이래저래 지방선거가 끝나고 바로 이어질 민주당의 7월 전당대회는 거물들의 귀환에 따른 ‘대전투’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양원보 세계일보 기자 wonbos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