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 ||
더욱 자랑스런 일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민주화까지도 이뤄낸 점이다. 민주화의 진행에는 80년대 세대의 공이 크다. 80년대적 운동방식도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80년대적 사고의 틀이 민주시대의 정신으로 자리잡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김영삼 정부시대부터 시작된 이러한 추세는 노무현 정부 들어 정부 각 부처는 물론 다양한 사회세력과 문화집단도 포섭해 버렸다. 이탈리아 사회주의 이론가인 그람시가 주장한 헤게모니 투쟁전략을 아마도 가장 성공적으로 실천한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민주화 성공의 자신감은 지난 2년여 동안 우리사회를 개혁의 실험실로 만들었다. 지방분권화가 강력하게 추진됐고, 한미관계의 틀도 재조정되고 있으며, 남북관계와 경제시스템의 기본골격도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개혁의 질풍노도는 그러나 없었으면 좋을 오류의 싹도 포함하고 있어 걱정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인식과 현실의 격차다. 단순하게 정리하면 80년대의 생각 틀이 21세기의 현실을 재단하는데서 오는 문제다. 이러한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경우가 신문 관련법안의 개정이고, 평준화의 틀을 고집하는 교육개혁작업이다. 2004년 말 국회를 통과한 신문법안의 주요내용은 80년대 권위주의 정부가 만들어놓은 언론시스템을 해체해 재구성하려는 언론운동단체들이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적으로 제기해온 문제들을 담았다. 신문사의 시장점유율 제한 조항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언론정책은 매체융합과 세계화로 모든 경쟁제한 제도를 철폐해나가는 세계적 입법조류를 역행하는 방향으로, 추진세력의 심리적 만족 이외에 얻을 수 있는 현실적 효과는 적다. 신문법 통과 직후 주요 일간지들이 구조조정에 돌입하는 모습이나 몇몇 스포츠신문이 문을 닫아야 하는 신문업계의 현실은 그러한 입법활동이 얼마나 시장상황과 동떨어져 있는가를 역설적으로 입증한다.
교육현실 또한 한가한 처지가 아니다.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지난해 우리나라가 해외유학비용으로 지출한 돈이 무려 17조원에 이른다. 일제피해보상비규모가 2조∼3조원으로 추산되는 점을 생각하면 막대한 규모의 외화가 경쟁력 없는 교육시스템 때문에 해외로 유출되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교육개혁 정책의 기조는 평등지상주의를 고집한다. 이렇게 해서는 우수두뇌의 해외 유출을 막을 길이 없다.
잘못된 처방은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자칫하면 환자의 생명에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우리식대로 세상흐름을 이해하고 예측하다가 온 나라가 수렁에 빠졌던 뼈아픈 실패의 사례다. 현실진단과 미래예측이 얼마나 냉정해야 하는가를 깨닫기 위해 엄청난 수업료를 아직도 지불하는 중이다. 민주화는 80년대적 사고의 지배를 의미할 수 없다. 다시 외환위기 같은 시행착오를 치르기 전에, 인식과 현실의 격차를 좁혀야 겠다.
이재경 교수 소개
이번 호부터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가 일요칼럼의 새 필자로 합류합니다.
이 교수는 서울대 영문학과를 나와 문화방송 보도국 기자를 거쳐, 아이오와대학 저널리즘스쿨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지난 95년부터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로 부임해 언론과 사회, 비교언론학, 등을 강의하는 한편 언론에 칼럼을 기고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