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고국이나 모국이 탄생지나 혈통에 충성하는 사회를 가리키는 단어임에 비해 조국은 국가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역사의식과 정치이념에 대한 충성까지 깃들어 있는 단어다. 언젠가 미국의 어느 칼럼니스트는 “미국은 이미 모국이 아니라 조국이다”라며 미 합중국이 국민국가임을 강조한 적이 있다. 미국은 “광대한 지역에 흩어진 서로 다른 혈통의 사람들이 고귀한 정치사상에 대한 헌신으로 뭉친 거대한 국민국가”라는 것이었다.
많은 나라들이 국민들에게 민족의식과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에 비중을 두는 것도 자라나는 2세들에게 조국에 대한 긍지와 투철한 국가관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2세들에게 제 나라 제 겨레에 대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통감(通鑑)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어제의 역사는 바로 오늘과 내일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제 얼굴을 모르듯 역사를 모르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나라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모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학교에서도 국가고시에서도 국사의 비중이 날로 떨어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1992년 국사과목이 세계사로 편입되면서 학교에서도 국사는 꼭 배워야 할 필수과목이 아니라 배워도 그만 안 배워도 그만인 선택과목으로 전락했다. 그러다보니 대입 수능시험에서도 국사는 사회탐구 영역의 11개 선택과목 중의 하나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05학년도 수능 응시자 중 국사를 선택한 학생이 26·1%에 그쳤다는 것에서도 우리는 교육현장에서 국사가 얼마나 푸대접 받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학교에서 국사과목이 푸대접 받자 각종 국가고시에서도 국사는 찬밥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997년 사법시험에서 국사과목이 폐지된 이후 각종 국가고시에서 국사과목을 없애는 것이 마치 시대의 대세처럼 되었다. 올해의 입법고시와 법원행정고시는 국사과목이 마지막으로 출제된 시험이었다. 행정고시와 외무고시에서도 내년부터 국사과목이 사라진다. 다른 어느 직종보다도 투철한 국가관으로 무장해야 할 공직사회에도 앞으로는 국사에 대한 청맹과니들이 대거 진출할 모양이다.
우리가 단군 고조선 이래 수없이 되풀이되었던 외침에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국가적 정통성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투철한 역사의식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국사(國事)를 책임지고 이끌어 갈 공무원들마저 국사를 몰라도 된다니 그야말로 `네가 국사를 모른다니 이게 될 말이냐’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국사의 청맹과니들이 동북아 공정이나 독도분쟁 등 이웃 강대국과의 협상에 나선다는 것은 그야말로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해질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