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 ||
“독도, 너로 하여 이 배타적 황홀은 쓰디쓰구나.”
그렇게 아름다운 독도는 또 얼마나 고고한가. 삼백육십오일 중 대부분은 비바람이 호위하고, 안개가 가려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접근조차 힘들다. 그러니 묵언하는 성자처럼 외로운 섬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자의 묵언을 존중해야 하듯이 독도가 길을 열지 않을 때는 기다려야 한다. 나를 향해 문을 열 때까지. 조급증을 내거나 운이 나쁘면 들어갈 수 없다.
그렇게 묵직하고 그렇게 고독하고 그렇게 무섭고 그렇게 신비한 독도가 일단 길을 내주면 그 아름다움에 반해 여기까지 왔다고, 정말 다행이라고 기도하게 된다.
무심하고 고혹적인 해돋이땅 독도는 돌섬이다. 원래 돌섬이란 의미에서 “독섬” “독섬”하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다 보니까 독도가 되었다고 한다. ‘독도’는 돌섬이 와전된 이름이지만 동해바다 한가운데 외로이 떠있는 섬이니까 ‘독도’라는 이름도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독도가 ‘죽도’는 될 수가 없다. 일본 사람들은 독도를 ‘죽도’ 혹은 ‘송도’라 부른다. 그런데 독도에는 대나무도 없고 소나무도 없다. 욕심만이 앞서지 독도를 잘 모른다는 얘기다.
우리는 ‘독섬’이라는 이름 외에 독도를 ‘자산도’ 혹은 ‘삼봉도’라 불렀다. 자산도란 울릉도의 아들섬이라는 뜻이고, 삼봉도는 봉우리가 셋이라는 뜻이다. 봉우리가 셋이라니? 일반적으로 알려지기를 독도에는 동도와 서도 둘 뿐인데!
보이는 봉우리는 둘이지만 바다 밑에서 보면 봉우리 하나가 더 있단다. 독도와 함께 산 역사가 없었다면, 독도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알 수 없는 얘기다. 독도는 우리 땅이다.
독도는 우리 땅? 말할 필요가 없는 얘기를 나는 왜 칠득이처럼 하고 있는 것일까?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 때문이다. 물론 일본이 모를 리 없다. 독도는 신라시대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 속한 땅이었다는 것을.
숙종 때 안용복은 왜구들이 울릉도와 독도에 침입하여 벌린 약탈행위에 일침을 가한 인물이었다. 안용복 이후 조선은 3년에 한번씩 울릉도와 독도를 순시하고 한편으로는 왜인침범을 엄격하게 단속했다.
심심하면 한번씩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속셈은 분명하다. 일단 국제법적 분쟁지역으로 만들어놓자는 것이다. 독도 문제는 독도 문제가 아니라 영유권 확보의 문제다. 그러니 이렇게 잘라도 독도는 우리 땅, 저렇게 잘라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대응해서는 안 된다. 독도를 지키는 일은 단지 독도가 아니라 독도가 품고 있는 바다의 영유권까지 지켜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강력한 국력을 무기 삼아 남의 나라 해돋이 땅을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이 과연 36년간의 한반도 불법지배를 반성하고는 있는 것일까. 독도는 동해바다 작은 섬이 아니라 우리의 주권이다. 해돋이땅 독도를 지키는 일은 한반도의 숨결의 뿌리를 지키는 것이고 한반도의 주권을 지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