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국문과 등 인문계 출신들이 들으면 조금은 불쾌할지도 모르지만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에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려면 이공계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명쾌한 반대 논리를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국문과 등 인문계 출신들은 기업에서도 별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기업들은 대학에서 전문기술을 습득한 이공계나 입사 후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경영학과 출신들을 선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랜돌 콜린스라는 미국의 교육학자는 이미 오래 전에 <학력주의 사회>라는 저서에서 인문계열의 학생들이 취직이 잘 안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문계열의 학생은 기업의 이윤추구에 냉담하며 또한 적의(敵意)조차 보이고 있기 때문에 기업업무에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학생들이 경영학과에 진학하지 않고 굳이 인문계열을 선택한 것을 놓고 경영주들은 기업적 가치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이 이쯤되면 인문계열 학생들은 ‘족보와 작문’실력이 출세를 보장해 주던 왕조시대가 더 나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가문의 뒷받침에다 중국의 고전을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만 급제하면 출세의 탄탄대로가 보장되던 그 시절에는 이공계니 인문계니 하는 차별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졸업장이나 자격증, 그리고 전문적인 기술이나 학식이 없으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다. 기업들이 대학교육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도 `쓸모없는 교육’에 너무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몇몇 대기업이 대학과 제휴, 주문교육을 실시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이미 전국 20여 개 전문대학이 기업에서 원하는 실무교육에 충실하기 위해 주문형 교육과정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기업이 신입사원을 뽑아서 다시 재교육을 해야하는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주문교육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학이 기업에서 요구하는 커리큘럼만 교육하게 되면 대학은 직업훈련소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하기야 대학이 기업에서 주문하는 과목만을 집중적으로 교육하게 되면 철학이나 사학(史學), 그리고 문학 같은 인문학은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철학이나 문학, 역사학을 전공한 인문계열 졸업생들을 채용할 기업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이공계나 경영학을 전공할 학생을 선호하는 것까지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학이 기업에서 요구하는 실용적인 학문에만 매달리게 되면 학문의 편식현상을 또 어찌할 것인가. 대학이 한 나라 지성의 산실이자 상아탑이라는 역할을 외면한 채 오로지 도구적인 학습이나 실용적 학문에만 매달리는 것은 국가의 먼 장래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