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이 십자가 소송에서 보듯 이슬람권의 발언권이 커지면서 옛날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기독교적 관습과 문화가 도처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연하장 문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옛날의 연하장에는 으레 성탄축하의 뜻을 담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구절이 들어 있었지만 몇 해 전부터는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즈’를 많이 쓰고 있다. 비기독교인들의 거부감 때문이다. 더군다나 다민족으로 구성된 ‘무지개 국가’인 미국으로선 기독교에만 해당되는 성탄을 거론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기독교 색채에 대한 거부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요즘은 지난 수세기 동안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사용해 왔던 BC(서기전)와 AD(기원후) 연호를 바꾸자는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예수 탄생 이전(Before Christ)을 뜻하는 BC나 주님의 해(Anno Domini)를 의미하는 AD를 쓰지말고 기독교 색채를 없앤 공동연대(Common Era) 이전과 이후를 뜻하는 BCE와 CE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미 미국의 몇몇 교과서 회사들은 전국적인 세계사 표준용어로 새 연호 표기를 채택했다고 한다.
물론 연호를 BC와 AD를 BCE와 CE로 바꾸었다고 해서 역사속의 연대까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할 경우 역사적 사건의 연대까지 모조리 바꾸어야 하는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세계 각국이 서기연호를 사실상 아무런 거부감 없이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1962년부터 서기를 공식연호로 채택했고 북한도 ‘주체’라는 연호를 쓰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신문이나 출판물은 오래전부터 서기연호를 쓰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서기를 공식연호로 채택한 지 40여 년 만에 우리가 써오던 단기연호는 흔적도 찾기 힘들 정도로 잊혀졌다는 점이다. 요즘과 같은 세계화시대에 새삼 단군연호를 고집하긴 어렵지만 학생들조차 올해가 단기 몇년이냐고 물으면 2005에다 2333년을 더해 한참 계산한 뒤에야 겨우 4338년이라고 대답할 정도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단군기원에 대해서는 남북간에도 학설이 엇갈리고 있다. 북한의 사회과학원은 지난 1993년 10월 단군릉 발굴보고를 발표하면서 단군을 5011년 전의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 기원보다 1천년 이상 앞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남북 학계의 공동연구를 통해 해결할 문제이고 우선은 신문이나 출판물에서 만이라도 서기와 함께 단기를 병기했으면 한다. 말끝마다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면서 정작 올해가 단기 몇년인지조차 모른대서야 단군시조 앞에 너무 면목없는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