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영원을 꿈꾸는 사랑의 꿈은 자연스런 꿈이지만 그 꿈에 고착된 인생은 영원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혼돈 속에 빠져 고통 속을 헤매게 된다. 당신 없이 살 수 없다는 절박한 고백이 정서적인 고백이라면 그럴 듯하지만 진짜 그 사람 없이 살 수 없다면?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스캇 팩이 말한다. 그것은 사랑의 생활이 아니라 기생충의 생활이라고.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없이도 잘 살 수 있지만 더 잘 살기 위해 함께 살 것을 노력하는 것이라고.
사랑을 받고자 한다면 사랑한다고, 너뿐이라고 스토커처럼 따라 다닐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가치는 무엇보다도 자신을 존중할 줄 아는 능력에서 온다. ‘나’를 믿기 때문에 불운을 겁내지 않고 ‘나’를 존중하기 때문에 파도가 치는 불안정한 생을 헤쳐갈 수 있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불안정한 생 속에서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살아있는 존재와 사랑에 빠져 보라, 헤어지게 되어 있다. 사랑이 죽든, 존재가 죽든 언젠가 죽을 테니까. 누구든 믿어 보라, 배신의 고통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른다. 발등을 찍는 것은 언제나 믿는 도끼니까. 그 상실이 두려워 적극적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거나, 나와 인연이 있는 존재들을 믿지 못해 늘 안절부절이면 사랑도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무의식이 보내는 거대한 심층적 느낌을 차단해서 기가 막히는 것이다. 왜 무의식의 신호들을 무시하고 그 신호들이 올라오는 것을 차단하는가? 해결되지 못한 감정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감정들을 부정하지 말고 충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예컨대, 질투라든가, 우울이라든가, 자기비하라든가, 분노라든가 하는 감정이 찾아오면 자각과 함께 그 감정들을 수용해야 한다. 외면하려 할수록 기승을 부린다. 자각이야말로 자기존중의 기본이다.
자기존중감은 충분하게, 그리고 적절하게 사랑 받아야 할 때에 제대로 사랑 받지 못하면 생기기 어렵다. 무엇을 원하고 무엇이 싫은 지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어디로 놀러 갈까, 하고 물으면 아무 데나! 뭘 먹을래, 물으면 아무 거나! 뭘 볼래, 물으면 아무 거나! 이렇게 대답했기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감자탕 집에서 보고싶지 않은 총잡이 영화를 보고, 피곤했으면서도 뭐가 문제냐고 물으면 아무 문제 없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늘 타인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주변인들은 모두 착하다고 칭찬하지만 착하다는 것이 죽을 지경인 사람들이다. 언제나 남이 원하는 대로만 행동할 때 스트레스는 쌓이고, 또 그 스트레스 때문에 상대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상대의 말에도 귀기울이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듣고 내가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응어리가 듣고 응어리가 해석하기 때문에 언제나 곡해가 일어나니까. 살다 보면 발목을 잡고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진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다. 그 ‘나’를 돌아보는 일이 제일 중요한 일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