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그러나 공룡기업 GM의 문제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차례 제기되어 왔다. 1980년대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어 돌풍을 일으켰던 기업인 로스 페로는 GM의 위원회 만능사고를 강도 높게 비판한 적이 있다. “우리 회사는 사내에서 뱀을 발견하면 즉시 잡아 죽이거나 바깥으로 집어 던지지만 GM에서는 우선 위원회를 만들고 전문가에게 뱀에 관한 자문을 받는다. 그리고는 위원회에서 1년이 넘도록 뱀에 관한 협의를 거듭한다.” 비단 GM뿐만 아니라 위원회 만들기를 좋아하고 회의를 많이 하는 기업들의 비능률적인 관행을 날카롭게 지적한 것이다.
요즘 S프로젝트인가 행담도 개발계획인가 하는 국책사업의 비리 의혹에 대통령직속 동북아시대 위원회 위원장이 연루되면서 정부의 너무 많은 위원회와 그들의 월권행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감사원에 따르면 헌법상 독립 위원회를 제외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만 23개나 된다고 한다. 국민의 정부 시절 18개였던 것이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 5개가 폐지되고 10개가 새로 생겼다는 것이다. 대통령 자문 국정과제 위원회 산하에는 정책기획위원회, 동북아시대위원회, 지속가능발전위원회 등 모두 12개 위원회가 포진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늘어났다는 것은 기존 관료조직에 대한 불신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각종 위원회를 만든 배경에는 기존의 관료조직으로는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적 국정과제의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없다는 간접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은 위원회가 너무 많다는 비판에 대한 반론에서 “참여정부를 아마추어 운운하는 사람들도 조선시대에 몇 차례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던 사림파(士林派)가 번번이 좌절하고 훈구파(勳舊派)가 득세하는 것을 보면서 역사의 후퇴를 개탄했을 것”이라고 했다. 위원회에 참여한 인사들을 사림파로, 정부의 구성원을 훈구파에 비유한 시각에서도 기존 관료조직에 대한 불신을 엿볼 수 있다.
너무 많은 위원회가 비판받는 것은 인력이나 예산의 낭비라는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그 위원회들이 단순한 자문역할을 넘어 사실상의 정책결정권을 행사하고 이 같은 월권 행위에 대해 아무런 견제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정부조직 위에 군림하는 권부(權府)처럼 운영되어도 이에 대한 감시나 견제장치가 작동되지 않았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 위원장이 행담도 의혹사건에 연루된 것도 그 같은 견제장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위원회 과잉을 비판하는 데는 위원회가 정부조직 위에 군림하는 새로운 권부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 깃들어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