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산은 높고 그만큼 추웠다. 희박한 공기 속에서 바람을 맞으며 내딛는 한 발 한 발은 그 자체로 절대고독이었다. 여기저기 얼음이 된 시신들은 체념 혹은 공포와 함께 한 죽음의 순간들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었다. 거기에서 누가 산을 잘 탄다고 자만할 수 있으랴. 악마 같은 바람, 악마 같은 추위, 한없이 체력이 소진되는 극한 상황에서 만나는 절대순수는 그 자체로 우리를 몰입시키고 정화시키는 힘이 있었다.
인간은 그렇게 순수해질 수도 있고 또 반면에 얼마나 악을 쓸 수도 있는 존재인지! 죽은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겠다며 그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사랑을 실천할 수도 있는 존재가 우리 인간이라면, 또 영국을 강타한 테러처럼 죽음을 무릅쓰고 악을 쓰면서 증오를 표현할 수도 있는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다.
테러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 9·11 사태 이후 4년 만에 유럽의 심장부를 강타한 테러는 섬뜩했다. 그 다음?을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도대체 왜 여기까지 오고 있는 건지. 테러는 용납해서는 안 되는 거지만 테러를 용납하지 않기 위해서는 누가 그렇게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악을 쓰는 테러를 부른 건지를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테러 관련 뉴스를 들으면서 뉴스를 전하는 시각이 많이 달라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테러는 폭력이니까 무조건 응징해야 한다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각에서 벗어나 있었다. 엄청난 테러로 충격에 빠진 세계의 표정은 표정대로 전하면서, 왜 하필 영국이 지금의 시점에서 알 카에다의 목표가 됐는지, 그 시각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춘 까닭에 과격 이슬람조직의 표적이 됐다는 분석을 하고, 그 분석을 토대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두 지역 모두에 파병한 우리로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임을 직시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왜 이렇게 위험해진 건지, 이 상황에서 중동의 10억 무슬렘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검토해야 한다. 우리로서는 한 번도 걱정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 바로 테러였다. 그런 우리에게 파병은 테러의 위험을 안겨준 것이다. 파병을 한 스페인은 벌써 철군했고, 89명을 파병한 책임을 물어 덴마크의 국방장관은 물러났다.
공포에 질려 살라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고 애원하던 김선일씨의 처절한 모습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미국에서는 이라크가 베트남처럼 미국의 수렁이 된다는 여론이 점증하고 있다. 그런 여론의 힘 때문에 전쟁당사자인 미국마저 내년부터 차츰 철군을 검토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 자리를 메우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정기국회에서 상정될 파병연장 철회안이 통과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슬람권은 넓고 우리는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