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청춘을 사막에 묻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들 미군병사들의 죽음 못지않게 억울하고 한맺힌 죽음은 바로 민간인 희생자들의 비명횡사다. 군인으로 참전,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 병사에겐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죽었다는 전사의 명예가 따르지만 어느날 갑자기 내가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죽은 민간인의 희생은 그야말로 ‘억울한 개죽음’일 뿐이다.
그런데도 수렁속을 헤매는 것 같은 이 전쟁이 도대체 언제쯤에나 끝날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전쟁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개전할 때만 해도 후세인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대량살상무기를 찾아내어 폐기하면 전쟁이 끝나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어디엔가 숨겨 놓았다던 대량살상무기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고 후세인도 체포되었다. 그럼에도 미국은 전쟁을 쉽사리 끝낼 낌새를 보이지 않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리크게이트니 뭐니해서 이라크전을 정당화하기 위해 ‘더러운 정보전’을 펼친 사실까지 터져 나와 이라크 침공에 대한 최소한의 명분마저 무너지고 말았다. 그 바람에 ‘제2의 베트남전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도 미 국방부는 철군의 적절한 시점을 ‘이라크정부가 자체 치안능력을 갖는 시점’으로 잡고 있는가 하면 이라크 주둔 미군의 한 지휘관은 이라크 군이 자체 작전능력을 가지려면 앞으로 1년반에서 2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내다 보았다.
따라서 미군철수는 이라크당국이 국내 치안능력과 자체 작전능력을 가질 때나 가능하며 상황이 아주 좋아야 부시 대통령 임기 말에 철군할 수 있다는 얘기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에 발목이 잡힌 것은 한마디로 적절한 철군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뛰어난 장수는 공격보다 후퇴할 때를 잘아는 장수라고 했다. 참으로 슬기로운 장군은 우선 칼부터 뽑아 들고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무모한 용장(勇將)이 아니라 병사들의 목숨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작전상 후퇴가 필요할 때는 적절한 시점에 물러날 줄 아는 지장(智將)이라는 얘기다.
부시 대통령이 체면이다 명분이다 해서 철군을 머뭇거리다간 임기내내 전쟁만 하다가 끝난 대통령이라는 낙인을 찍히기 십상이다. 돌이켜보면 부시 대통령은 임기 첫해에 9·11테러를 당해 아프카니스탄에서 전쟁을 일으켰고 2003년에는 이라크를 침공, 2년 넘는 세월동안 전쟁에 발목이 잡혀있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이라크에서 철군하는 결단을 내리는 것이 전쟁만 하다가 임기를 끝낸 대통령이라는 ‘주홍글씨’를 지우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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