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문화예술인을 기리는 기념비나 동상을 세우는 사업이 활발해진 것은 국민소득이 늘어나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방분권화 시대가 되면서 각급 지방자치단체들이 외지인을 끌어들이는 수익사업의 하나로 자기 고장 출신 문화예술인들을 관광자원으로 동원하면서부터였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쉽게 기억하고 있는 대중예술가들은 수요층이 비교적 한정되어 있는 시인이나 소설가들보다는 훨씬 더 흡인력 있는 관광자원이었다. 전국 곳곳에 대중가요 노랫말을 새긴 노래비가 서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얼마전 경기도 화성시가 가수 조용필의 생가를 복원,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조용필이 태어난 생가 터 일대의 땅 1천2백 평을 사들여 전시실과 휴게시설, 주차장 등을 세우는 ‘조용필생가 관광자원화사업’을 2007년까지 추진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용필이 태어난 생가는 오래전에 허물어졌고 집터도 몇 년 전 외지인에게 팔려 지금은 10여 평 규모의 조립식 건물과 포도밭 등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엄격히 말하면 생가복원이 아니라 생가 터를 사들여 관광시설을 만드는 사업이다.
당사자인 조용필쪽도 ‘생가복원’이라는 단어가 영 마뜩잖은 것 같다. 조용필은 얼마전 한 신문 인터뷰에서 화성시의 생가 관광자원화계획에 대한 일부의 반발을 의식한 듯 “저도 제 고향이 화성연쇄 살인사건 등으로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이 영 마뜩잖았다”며 “그래서 그런 걸 하자고 했을 때 고향이 잘되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크게 반대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역사적 위인을 현창하듯 생가복원이니 뭐니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지난 한 세대 동안 가수 조용필이 이룩한 예술적 성취는 ‘국민가수’라는 표현이 결코 부끄럽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그가 남긴 발자취가 아무리 크다 해도 한창 활동중인 가수의 생가를 복원, ‘성역화’하겠다는 것은 지나치다. 예부터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 하지 않았는가. 옛날 벼슬아치들이 지방 관서장으로 부임하면 우선 송덕비나 영세불망비부터 세웠던 것처럼 자칫 후세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내 고장 출신 연예인이나 예술인들을 기리는 사업은 좋지만 그 뒤에 숨은 의도가 뻔히 들여다 보이는 것이 문제다. 지방 자치단체들이 나서서 주민들의 세금으로 생가를 복원합네, 기념관을 세웁네 하며 내 고장 출신 예술인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서로를 위해서도 썩 좋은 일은 아니다.
이광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