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서른 즈음에’를 부르며 우리는 우리가 꽤 늙어버린 줄 알았던 서투른 청춘이었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 꼭 10년! 김광석을 좋아했던 김광석 또래의 청춘들이 이제는 40대가 되어 진짜 실감하고 있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의 의미를.
‘서른 즈음에’ 속에는 고독을 품고 환하게 웃을 줄 아는 젊음의 끝자락이 들어 있다. 조금씩 멀어져 가는 꿈 같은 젊음은 어디로 가나…. 낭비할 시간이 없다. 인생이 한바탕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치열해지기보다는 넉넉해지고, 비판의 칼날을 세우기보다는 이해의 품이 된다.
김광석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1월이라고 김광석을 추억하는 음악들이 라디오에서 나오던 그날, 황우석 박사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나처럼 인공적인 것을 싫어하고 복제나 줄기세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 핵이식을 공부하고 배반포를 공부하고 줄기세포를 공부하게 한 현장은 뜨겁고도 시끄러웠다.
논문조작이라는 치명적인 잘못으로 죄인이 되어 그가 가진 가능성조차 부끄러움이 돼야 하는 그는 이제 매장돼야 하는 것일까. 검찰이 논문조작의 과정을 분명히 밝혀주리라 믿지만 과학엔 국적이 없어도 과학자에겐 국적이 있다고 했던 황 박사가 돌이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은 어디일까. 서울대 조사위원회도 스너피와 배반포 기술이 진짜라고 했다. 황 박사의 잘못도 분명하지만 원천기술이라고 하든 기반기술이라고 하든 그의 성과가 세계적인 것은 인정해야 한다.
사실 평소 나는 황 박사의 연구가 뉴스가 될 때면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가 송아지에게 주사를 놓으며 이제 소들이 광우병에서 벗어나게 됐다고 환하게 웃으면 오히려 무서웠었다. 세상에, 초식동물인 소에 잡식을 시켜 생긴 병이 광우병이라면서 평생을 우리에 가둬놓고 오로지 사료만 먹고 고기로만 자라는 소가 이제는 미칠 수도 없다니! 소의 일생을 생략한 소들을 보니 우유 먹을 생각, 고기 먹을 생각이 뚝 끊겼다. 더구나 신의 영역이라 믿고 싶은 생명복제기술은 신기하다기보다 끔찍했다.
그러나 내 좋고나쁨과는 관계없이 생명공학이라는 과학기술은 자본주의가 좋아하는 시대의 방향이었고, 그는 그 한복판에 있다. 우리 대한민국은 그의 잘못을 열거해서 그의 손발을 다 묶고 그를 감옥으로 보낼 수도 있고, 그의 가능성을 보고 또 한 번 기회를 줄 수도 있다. 과학기술이 자본주의와 결탁해서 국부의 원천이 되고 있는 시대 아닌가. 그는 여전히 그의 기술을 대한민국을 위해 쓰고 싶어 한다. 우리는 국적 대한민국인 과학자 황우석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는 6개월 시간만 주면 기슬력을 입증해 보이겠다고 한다. 나락으로 떨어진 과학자의 요청은 비굴할 정도로 간곡했다. 세계적인 배반포 기술을 가진 것까지는 입증된 이가 자신감이 없이 겨우 시간을 벌겠다고 저렇게 애걸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지 않을까.
와전되고 각색되면서 증폭되고 있는 냉소와 미움도 밀어내고, 속수무책의 연민도 거둬내고 장점이 분명해서 오히려 단점이 부각된 과학자가 그 장점대로 연구할 수 있도록 그저 기다려주면 어떨까.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