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향 수원대 교수 | ||
신비의 나라 나니아도 마찬가지다. 나니아로 통하는 문은 옷장 속이고, 그 옷장이 문이 되어 나니아로 들어갈 수 있었던 이는 많이 배운 지식인도 아니고, 편견 많은 어른도 아니고, 화려한 배우들도 아니다. 그들은 작고 어린 어린이였다.
이현세의 <만화 한국사 바로보기>는 역사 기행이다. 저 멀리 고조선부터 가까이 조선시대까지 우리 역사가 매혹적이다. 살아 숨쉬는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지금 우리의 삶이 우연한 것이 아니고, 우리의 뿌리가 무력하지 않고 단단하고 든든한 것임을 알게 된다. 여기 살아숨쉬는 그 역사의 현장에서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함께 했던 인물은 모두 어린이다. 사고뭉치 까치와 똑 소리나는 소녀 엄지고, 넉넉한 몸집과는 달리 겁이 많은 두산과 나름대로 과학적인 동탁이다. <나니아 연대기>에서 나니아로 통하는 문이 옷장 속에 있었듯이 이 생기발랄한 어린이들이 역사로 통하는 문은 고서점(古書店) 속의 고서들이었다. 역사와 함께 생겨나서 그 때 그 시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묵묵하게 그 단초를 제공하는 오래된 책들! 그 책들은 <서기>이고, <신집>이며, <삼국유사>고, <동국여지승람>이다.
아이들은 고서가 낸 길을 따라 역사로 들어간다. 무녕왕의 장례식으로, 고구려에 패한 수나라군이 쫓겨가던 현장으로, 고구려 유민들이 발해를 세우는 현장으로. 그들은 이차돈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병사가 되기도 하고 이황을 친견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차돈이 순교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던 동탁은 이렇게 쓰고 있다. “잘린 목에서 흰 피가 솟구치거나 꽃잎이 휘날리지도 않았지만 이차돈의 평화로운 죽음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 죽음을 계기로 법흥왕은 불교를 공인한다.
그런데 왜 신라는 그토록 늦게, 삼국 중에서 가장 늦게 불교를 겨우 받아들이게 됐을까. 동탁을 따라 그 시절로 돌아가 보면 독자들은 묻게 된다. 이차돈을 ‘순교’로 몰고 가기까지 신라인들은 무엇을 믿고 있었을까? 아차돈은 신라인들이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숲, 천경림의 나무를 베어 절을 지으려 했던 인물이고 보면, 하늘을 믿고 산을 믿고 숲을 믿고 강을 믿고 바람을 믿었던 천신사상은 그 당시 무슨 까닭으로 구태가 되어 불교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을까. 지금에 와선 오히려 현대적인 천신사상을 불교는 어떻게 끌어안고 있는 것일까?
지난주에 나는 <만화 한국사 바로 보기>와 <나니아 연대기> 그리고 <반지의 제왕>에 빠져 있었다. 욕망에 시달리지 않은 순수한 어린이들의 생기를 따라 우리 역사로 들어가고, 나니아로 들어가고, 또 요정과 인간과 호빗이 공존하는 중간계로 들어가서 별처럼 예쁜 아이들에게 새뱃돈 대신 마침내 그 책들을 풀었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