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훈 언론인 | ||
그런가하면 자신을 공천해 준 정당을 공격, 차별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내가 비록 특정정당의 공천을 받아 후보가 되긴 했지만 결코 그 정당의 꼭두각시나 당에 매달리는 단체장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고 기존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환멸이 크다보니 공천을 받은 뒤에는 당과 거리를 두는 것이 표를 얻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경기도 지사에 출마한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은 열린우리당이 16개 시·도지사 후보를 한꺼번에 등장시켜 만든 인터넷광고에 참여하지 않았다. 거기에 끼어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표를 잃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한다. 진 후보 측은 중앙당에 낼 광고 분담금으로 독자적인 광고를 만들어 유력 포털사이트를 통해 집중적인 홍보를 했다. 이 역시 정당을 보고 찍을 것이 아니라 인물을 보고 표를 찍어 달라는 전략이다.
여당의 경기지사 후보뿐만 아니라 서울시장 후보도 당을 공개적으로 비판함으로써 자신을 공천해 준 당과의 거리를 두고 있다. “전당대회가 끝나고 나서 우리당이 한 게 뭐가 있느냐”며 대들자 당 사무총장은 “당이 어려워지니까 후보들까지 지도부를 공격하는 등 자중지란(自中之亂)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반박했다. 후보가 당에 화살을 돌리는 현상은 당에 대한 지지도가 흔들리는 지역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나라당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영남지역에서는 어느 후보도 당을 욕하거나 거리를 두려하지 않는다. 몰표로 제로 섬 게임을 해 온 텃밭에서는 인물보다 당 간판이 바로 당선을 보장해 주는 영험한 부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뱀은 아무리 허물을 벗어도 타고 난 무늬까지 바꾸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인물론을 내 세우고 당과의 거리를 강조해도 자신을 공천하고 지원해 준 정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정당정치가 자리잡은 나라 정치인들의 숙명이다. 따라서 당과의 거리를 강조하는 것은 일시적인 득표전략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탈당하지 않는 한 당인(黨人)의 한계를 뛰어 넘지 못하게 마련이다.
정당공천을 받은 명망가들이 자신의 소속정당을 감추려고 하는 것은 정당보다 사람을 먼저 내 세우는 인치(人治)의 전통 때문이다. 3김정치에서 보았던 것처럼 선거가 있을 때마다 자신이 출마기반을 만들기 위해 새 정당을 만들고 선거가 끝나면 또 정계개편이니 뭐니해서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했으니 정당정치가 제대로 뿌리내릴 리가 없다. 당이 공천한 후보자들이 당에 ‘반기’를 드는가 하면 당에 대한 지지도가 오르지 않자 자신들이 뛰쳐나왔던 옛 둥지를 기웃거리며 합당운운하는 요즘의 우리 정치가 딱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