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필상 고려대 교수 | ||
빈부 격차가 심하고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상태에서 복지예산의 증액은 불가피하다. 또 안보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국방예산을 늘리는 것도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국가예산은 경제여건과 분리하여 편성할 수 없다. 경제가 세금징수를 뒷받침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투자와 소비가 동시에 위축되는 경기불안을 겪고 있다. 더구나 뚜렷한 성장동력이 없어 국제경쟁력은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다. 최근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국가경쟁력 순위가 지난해보다 5단계나 밀려 24위로 떨어졌다. 이런 상태에서 복지와 국방예산을 대폭 늘려 국민 1인당 조세부담액이 383만 원이나 된다. 현 정부 들어서 56%나 늘어난 금액이다. 투명한 소득원을 가진 봉급생활자들의 세금부담은 더 는다. 내년도 봉급생활자 1인당 세금부담은 206만 원으로 현 정부 들어서 81%나 증가한다.
여기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 복지예산의 내용이다. 내년 예산에서 복지예산이 4분의 1을 넘는다. 그러나 이 예산은 생산적 복지예산과는 거리가 있다. 대표적인 생산적 복지지출인 보육, 가족예산과 산재급여 등 노동예산이 전체 복지예산의 19%에 불과하다. 복지예산을 늘리는 것이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안된다는 뜻이다. 이런 형태로 복지예산이 계속 증가할 경우 경제의 성장잠재력은 떨어지고 국가재정은 빚투성이가 될 수밖에 없다. 내년에 정부는 8조 7000억 원의 국채를 발행할 예정이다. 그러면 국가채무가 300조 원을 넘어선다. 국민들이 떠맡아야할 빚이 허리가 휠 정도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세금과 부채부담을 늘려 예산을 늘릴 경우 경제불안은 확대된다. 세금과 빚 부담 때문에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어 경기는 더욱 심각한 불황상태로 빠질 수 있다. 특히 공공부문 건설투자를 7% 증가시키는 등 내년 대선을 앞두고 경기부양성 선심지출로 인식될 수 있는 예산도 있어 경제의 건강을 해칠 소지도 있다. 정부가 예산을 어떻게 편성하는가에 따라 경제를 살릴 수도 있고 쓰러뜨릴 수도 있다. 경기가 침체하고 고용불안이 심할 경우 정부예산은 경제를 살리는 활력소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년도 예산은 당연히 성장동력 확충에 주력해야 한다. 내년 예산의 내역을 보면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18조 2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2000억 원 줄었다. 또 중소기업 지원예산은 12조 5000억 원으로 1000억 원 느는 데 그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연구개발예산을 10.5% 증가시킨 것이다. 그러나 절대금액 수준을 보면 여전히 10조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결국 성장동력과는 관련 없는 예산이다.
앞으로 국회심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내년도 예산은 크게 바뀌어야 한다. 연구개발과 교육 등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한 예산을 극대화하여 경제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그 다음 이를 기반으로 생산적 복지를 위한 세원을 늘려야 한다. 그리하여 경제를 악화시키는 예산편성이 아니라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경제도 살고 복지도 늘릴 수 있는 상생의 예산편성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