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 대기업과 벤처기업 경영인들의 모임인 ‘V 소사 이어티’ 회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최태원 회장이 정 보통신 관련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 ||
이 사실이 전해지자 세간에선 이들의 결혼을 ‘정략 결혼이 아니냐’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씨의 결혼은 세간의 추측과는 달리 두 사람의 순수한 사랑으로 맺어진 결실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결혼을 하기 3년 전(결혼은 1988년 9월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있었다)이던 1985년 무렵이었다. 최태원 회장의 회고.
“미국 시카고대 경제과에 유학 중이던 1985년 무렵 처음 만났다. 당시 소영씨는 런던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시카고대로 진학했는데, 이 즈음 한국 유학생들의 테니스모임에서 만나게 됐다.”두 사람이 첫 대면한 것은 소영씨가 시카고대 대학원 진학을 위해 런던에서 시카고로 오던 날 시카고공항에서였다. 당시 재미 시카고대 유학생 대표를 맡고 있던 최태원 회장이 소영씨를 마중나간 자리였던 것이다.그 후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유학생들의 테니스모임에서 어울리면서 가까워지게 됐다. 이것이 이들이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 과정이었다.두 사람이 양가 부모에게 정식으로 서로를 소개한 것은 만난 지 2년 뒤인 1987년 6월10일이었다. 당시 최태원 회장의 부친 최종현 회장과 박계희 여사는 직접 미국까지 건너가 소영씨를 만났다.
소영씨를 만나 본 최종현 회장과 박계희 여사는 매우 흡족해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이 결혼에 대해 계열사 사장들 중에는 걱정을 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최종현 회장은 미국에서 소영씨를 만나본 뒤 귀국해 계열사 사장단회의에서 아들의 결혼 문제를 처음 공개했다. 당시 이 회의에 참석했던 그룹 경영인의 회고.“당시 사장단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갑자기 최종현 회장이 아들 결혼 얘기를 꺼냈다. 참석자들은 상대자가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 딸이란 말에 깜짝 놀랐다. 일부 사장들이 ‘혹시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말을 했다. 그때 최 회장은 ‘뭐 지들이 좋다고 하니’라고 말했다.”
일부에서 이 결혼을 걱정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1980년 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대한석유공사 인수 이후 SK그룹을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여전히 따가웠던 게 가장 큰 이유였다.SK그룹은 석유공사를 인수하면서 한진, 쌍용, 효성 등 당시로선 쟁쟁한 재벌들을 제치고 재계 서열 5위로 치솟았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여러가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같은 시각에 대한 SK그룹 관계자의 반박. “석유공사를 인수한 것은 정부의 엄격한 심사에 의해 이뤄진 것이며, 경쟁사들도 이를 납득했다.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씨가 결혼한 것은 석유공사 인수건과는 전혀 무관한 가족의 일이었다.”
그러나 재벌가와 정치인 집안의 결혼에 따른 후유증은 의외로 컸다. 나중의 일이지만 1992년 말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벌어진 일도 그 중 하나였다.당시 SK그룹은 포철, 코오롱, 쌍용, 동부, 동양 등 내로라하는 재벌들과 함께 인수전에 뛰어들어 사업권을 따냈다. 그러나 SK그룹은 인수자로 선정된 지 한달 만에 사업권을 반납했다. 당시 김영삼 민정당 대통령 후보까지 나서 SK그룹의 사업권 반납을 요구하고 나선 때문이었다.그 후 제2이동통신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뒤인 1994년에 재입찰에 부쳐져 SK그룹이 지분 31%를 매입하면서 인수에 성공하긴 했다. 그러나 SK그룹이 이같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최태원 회장의 결혼과 무관하진 않았다.
최태원 회장이 경영의 중심에 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곳은 ‘경영기획실’이라는 조직이었다. 경영기획실은 최종현 회장이 그룹경영권을 이어받은 1974년에 설립한 신설 조직이었다. 당시 다른 재벌들도 대부분 이같은 조직을 구성하고 있었다. 삼성그룹의 회장비서실, 현대그룹의 종합기획실, LG그룹의 회장비서실 등이 SK그룹의 경영기획실과 비슷한 조직이었다.
▲ 94년 제2이동통신 지배주주에 오른 직후의 최종 현 회장(작은 사진 가운데) | ||
이 회사는 원래 최태원 회장이 제안해 만든 것이었다. 그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향후 경제의 축이 통신업을 중심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최종현 회장을 설득해 이 회사를 세웠던 것이다.
출범 당시 보잘것 없던 이 회사는 제2이동통신 인수의 주체로 나서면서 나중에 가공할 위력을 가진 회사로 컸다. 이 회사는 1995년에 선경정보시스템을 통합했고, 이어 (주)SK의 통신망 부문이었던 SK-네트를 인수하면서 알짜회사로 거듭 태어났다. 그런 뒤 이 회사는 이름을 다시 현재의 (주)SKC&C로 변경했다.SKC&C는 급성장했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소유권과 관련해 몇가지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제2이동통신을 인수한 직후 대한텔레콤의 지분은 최태원 회장에게 70%(70만주), 매제였던 김준일 대한텔레콤 이사(최태원 회장의 여동생 최기원씨의 전 남편)에게 21%(21만주)가 넘어갔다.
문제는 이들에게 넘어간 지분의 주식가격이었다. 당시 SK그룹은 두 사람에게 주당 4백원에 주식을 매각했다. 이 부분은 나중에 SK그룹이 SKC&C와 SK텔레콤(제2이동통신)을 합병하려고 했을 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편법증여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사안이 커지자 최태원 회장은 1998년 자신이 갖고 있던 SKC&C 지분 79% 가운데 30%를 SK텔레콤에 무상증여했다. 2002년 10월 현재 이 회사의 주식소유 현황은 최태원 회장 49%, SK텔레콤 30%, 최기원 10.5%, SK에너지판매 10.5%로 돼 있다.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2000년 5월까지 2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김준일씨(당시 SKC&C 전무)가 빠진 대신 최기원씨와 (주)SK에너지판매가 새로 대주주 명단에 등장한 점이다. SK텔레콤은 최태원 회장이 무상증여하면서 30%의 지분을 갖게 됐다.
SKC&C(대한텔레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이 회사가 그룹의 지주회사로 부상하기 때문이다. 2002년 10월 현재 SKC&C는 SK텔레콤의 4대주주 회사일 뿐 아니라, (주)SK의 주요 주주가 됐다. SK의 소유구조를 보면 (주)SK를 축으로 SK글로벌-SK텔레콤-SK증권-SK건설 등의 피라미드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주)SK의 지배권을 SKC&C가 장악하고 있어 이 회사가 실질적인 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형국이다. SKC&C의 최대주주가 최 회장과 최기원씨(두사람의 지분합계는 59.5%)이고, 최 회장이 거의 모든 지분을 가진 (주)SK에너지판매가 10.5%를 가지고 있으니 그룹의 지배권은 최 회장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최종현 회장 작고 이후 (주)SKC 주식 3백92만주(24.8%), (주)SK 4만주(0.06%), SK글로벌 1백28만주(5.27%) 등을 상속받았다. 최 회장은 또 SK상사(SK글로벌), (주)SK, SKC&C, SK건설, 쉐라톤워커힐, SK텔레콤 등의 계열사에 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2000년 당시 그룹 지주회사로 부상한 SK글로벌의 지분에 변화가 생겼다.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은 높아진 반면, 최윤원 회장 형제의 지분율은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이다. 또 최태원 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주)SK가 99%의 지분을 가진 SK에너지판매와 SK유통이 합병되면서 SK글로벌의 지배구조는 최태원 회장 중심으로 만들어졌다.SK글로벌 출범과 함께 (주)SK의 자회사로 입지를 끌어내려 결국 전 계열사에 대한 최태원 회장의 소유지배력을 강화시킨 것이었다. 당시 SK상사와 SK에너지판매를 1대0.52주의 비율로 합병해 (주)SK가 SK상사의 지분 38%를 소유하게 했다.
이후 SK상사는 상호주식보유금지 규정에 따라 (주)SK의 주식을 매각해야만 했다. SK상사가 매각한 (주)SK의 주식은 최태원 회장이 모두 매입해 2002년 6월 현재 최 회장은 SK글로벌의 지분 3.31%(3백18만8천6백94주)를 갖고 있다.이 결과 (주)SK는 SK상사와 SK에너지판매, SK유통 등 3개사를 합친 SK글로벌의 지분 38.68%를 가진 최대주주가 되는 한편 SK건설, SKC, SK케미컬 등 주요 계열사들도 지분을 골고루 갖게 됐다.최태원 회장의 그룹 지배권은 SKC&C를 정점으로, (주)SK를 통해 각 계열사를 지배하는 사슬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같은 소유구조 형성을 통해 그는 사실상의 그룹오너가 돼 있는 것이다.
정선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