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범·설기현·이을용 등 스타 배출의 산실 제일고 vs 중앙고
강릉 정기전에서 벌어지는 양교 재학생의 응원전.
[일요신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FC 서울과 수원 삼성 블루윙즈, 고려대와 연세대. 이들은 스포츠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라이벌 관계다. 라이벌의 존재는 이들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강원도 강릉에는 지역 내에서 만큼은 이들과 비견될만큼 치열한 고교축구 라이벌전이 열린다. 이는 ‘강릉 정기전’이라고 불리는 강릉제일고등학교(강릉상고)와 강릉중앙고등학교(강릉농공고)의 경기다.
이들은 각각 1940년대와 1930년대 축구부를 창단해 지역 대회 등에서 라이벌 관계를 발전시켜왔다. 축구부의 긴 역사에 중앙고 출신 김학범, 김현석, 우성용, 김오규, 제일고 출신 이을용, 설기현, 정경호, 오반석까지 수많은 축구 스타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1976년부터는 둘만의 정기전 형태 경기가 열려 치열한 경기를 펼쳤다. 대도시에 비해 즐길거리가 다소 부족한 강릉 시민들에게 이들의 경기는 좋은 문화 콘텐츠이자 큰 축제였다.
이들간의 경기는 단순한 축구 경기가 아니었다. 축구 경기가 열리는 동시에 양교 재학생과 졸업생간의 투석전이 이어지기도 했다.
매년 경기 결과에 상관 없이 양교의 다툼은 격해졌고 경찰 병력이 동원되기에 이르렀다. 가장 큰 사건이 벌어졌던 1982년 또한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열린 낮부터 이어진 투석전 등에 강릉 이외의 지역 경찰도 병력을 지원했다. 또 다시 싸움이 벌어질 것을 대비해 경찰 병력이 시내 곳곳을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분을 삭힐 학생들이 아니었다. 중앙고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로 잠입해 농기구 창고를 열고 갖가지 농기구를 손에 쥐고 제일고로 향했다. 당시는 농업 과목이 활성화 돼있던 시기라 학교에 농기구가 많았다.
이들은 경찰의 눈을 피해야했다. 강릉 시내를 관통하는 남대천을 다리로 건너지 않고 바지를 걷어올린 채 직접 건넜다.
제일고에 도착한 중앙고 학생들은 유리창 등 갖가지 학교 기물을 파손했다. 그 절정은 제일고 교문을 뜯어낸 것이었다.
제일고 학생들도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들도 중앙고의 각종 재산과 기물을 파손시켰다.
결국 폭력 사태에 참가한 학생들은 상당 금액을 배상 비용으로 물어내야 했다. 당시 타 지역 출장 중이던 중앙고 교장은 3개월 정직 징계를 받기도 했다.
양교 동문들의 응원전
이 같은 대규모 폭력 사태에 정기전은 수년간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재개된 정기전에서도 크고작은 사건이 벌어졌다. 과거와 같은 대규모 폭력 사태는 아닌 ‘술 취한 아저씨들의 시비’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는 않았다.
강릉 시민들에게 정기전은 일종의 자부심이다. 자리가 없어 통로에 서서 관전을 하던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2만여 관중이 찾아 축제를 즐긴다. 양교간의 신경전도 시민들에게는 약간의 ‘흥행 요소’가 되기도 한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들은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린 행사 유치에 열중하고 있다. 강릉 정기전은 다른 지역에서 찾아보기 힘든 강릉만의 문화다. 이 같은 지역 교유의 축제가 중단되는 일 없이 온전히 이어지길 기대해 보겠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 이 기사는 지역 시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