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배고교야구, 폭염에 선수 쓰러지기도…대회 장소인 목동구장 일대 37℃ 웃돌아
111년만의 기록적인 폭염은 ‘재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요신문] ‘111년’ 기록적인 폭염에 대한민국 전체가 들끊고 있다. 1904년부터 시작된 기상관측 이래 최대 폭염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31일 국무회의에서 폭염에 대해 “특별재난에 준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재난적인 폭염에 프로축구와 프로야구 등 스포츠계도 비상이다. 대낮에 진행되는 2군 경기가 모두 취소되는가 하면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는 31일 긴급이사회를 열고 저녁 경기일정마저 조정해달라고 KBO에 정식요청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같은 폭염 속에서 성인도 아닌 고교야구대회가 강행되고 있어 어린 선수들의 건강이 우려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은 제52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한창이다. 7월 28일부터 8월 10일까지 혹서기에 열리는 대회다. 어느 정도의 더위는 감수해야겠지만 111년만의 기록적인 폭염이기에 유연한 대처가 필요한 상황이다.
지난 7월 31일에도 경기는 차질없이 치러졌다. 오전 9시, 오후 3시, 오후 5시 30분 3차례에 걸쳐 경기가 열렸다. 우려가 되는 부분은 날씨였다. 이날 아침부터 경기가 열린 양천구 목1동 일대 기온은 30℃를 훌쩍 넘어섰다.
오전 9시에 시작된 인상고와 부산고의 경기에선 3회가 끝나자 그라운드 열을 식히려 물이 뿌려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무더위로부터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기상청은 경기가 한창이던 이날 오전 11시 폭염 경보를 발령했다.
지난 7월 31일 뜨거운 태양아래 온도 측정을 거부한 온도계. 정밀한 측정은 아니지만 폭염의 위력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일정은 가장 뜨거울 시간대를 피해 잡혀 있었다. 오후 3시 청담고와 부산공고의 경기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폭염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더그아웃에는 선수들의 더위를 식힐 일명 ‘코끼리 에어컨’이 눈에 띄었다.
기상청 홈페이지에서는 목1동의 온도를 37.2℃라고 알렸다. 그늘이 있는 관중석에서 측정한 온도조차 여전히 35℃를 웃돌았다. 비어있는 관중석을 따라 간간히 바람이 불었지만 더위를 가시기에는 부족했다. 포수 뒤쪽 테이블 석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한 파라솔이 펼쳐져 있기도 했다.
7월 31일 오후 3시부터 열린 경기. 관중석 온도와 실시간 기상청 예보.
이날 경기장을 찾은 선수 학부모들과 동문 응원단은 땀으로 옷을 적시며 경기를 지켜봤다. 아직 분위기가 팽팽한 경기 초반임에도 더위에 지친 이들은 “콜드게임 가자!”를 연신 외쳐댔다. 일부 관중들은 목동구장 지붕의 그림자를 따라 더위를 피해 자리를 옮겨다니기도 했다.
이들의 간절한 바람 때문인지 실제로 경기는 콜드게임으로 마무리됐다. 5회에 경기가 마무리됐지만 점수가 크게 나며 2시간 가깝게 경기가 진행됐다.
경기를 지켜보던 학부모들은 조금이나마 빠르게 경기가 끝나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 학부모는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만 상대팀도 더운 날씨에 정말 고생이다”라면서 “그나마 콜드게임으로 끝나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다른 학부모들도 “날씨가 계속 이렇게 되면 대회 일정을 좀 바꿔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프로야구도 저녁에 하지 않나”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경기 다음날인 8월 1일부터는 낮 11시 경기가 예고됐다. 8월 1일 서울의 온도는 39℃를 넘어서며 체감온도는 43℃까지 올라갔다. 당연히 폭염경보가 발효됐다.
8월 1일로 예정된 4경기는 낮 시간대를 비우고 양일로 나뉘게 됐다.
경기가 연기된 한 학교 코치는 “워낙 날씨가 덥다보니 일정이 바뀌었다”면서 “어제(7월 31일) 한 학교 학생이 경기가 끝나고 쓰러졌다고 하더라. 그래서 경기 일정에 변화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무더운 날씨로 인한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 매년 이때 대회가 열렸다. 평소 훈련 때는 아이들이 더위를 먹지 않도록 더운 시간대를 잘 피해서 훈련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폭염으로 경기일정을 변경했지만 임기응변식 조치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출처=대회 홈페이지 캡쳐.
대회 홈페이지의 공지사항 오류에 대해서는 “그 홈페이지는 다른 주최측에서 운영한다. 야구협회 홈페이지에는 정확하게 공지가 됐다”고 말했다. 또한 폭염으로 인한 일정 변동에 의해서는 “금요일부터 계획대로 하루 4경기가 열릴 예정이지만 이것도 확정된 것은 아니다. 날씨 상황에 따라 일정을 변경할지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학생들의 안전에 각별히 신경써야할 협회 관계자는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살인적인 폭염에 한국야구 꿈나무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는 지적에 힘이 실리고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