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선발은 7~8이닝 투구 많아…‘퀄리티 스타트 플러스’ ‘도미넌트 스타트’ 등 파생 용어 등장
잘 알려진 대로 퀄리티 스타트는 6이닝 이상을 소화하면서 3점 이하 자책점을 기록해야 달성할 수 있다. 리드 상황에서 5회까지만 던져도 승리 투수가 될 수는 있지만, 퀄리티 스타트로 인정받으려면 한 이닝은 더 버텨야 한다는 얘기다. 아무리 5이닝을 퍼펙트로 막아도 6회를 던지지 않으면 퀄리티 스타트가 성립되지 않는다. 4~5일에 한 번 마운드에 오르는 선발 투수라면 한 경기의 3분의 2는 책임져야 ‘좋은 등판’의 요건을 충족시킨다는 의미가 된다. ‘이닝 소화 능력’을 선발 투수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는 메이저리그의 가치관이 이 기록에 담겨 있다.
# 퀄리티 스타트의 유래
‘퀄리티 스타트’라는 단어가 야구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5년이다. 당시 미국의 저명한 야구기자 존 로가 이 단어의 개념을 정리했고, 이듬해인 1986년 ‘워싱턴포스트’에서 야구를 담당하던 리처드 저스티스 기자가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부터 메이저리그에 투수 분업화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선발 투수들의 투구 이닝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승수와 탈삼진 수 외에도 선발 투수들의 성과를 분별할 기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저스티스 기자는 고심 끝에 ‘퀄리티 스타트’라는 생소한 단어를 기사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1987년엔 ‘세이버 매트리션의 대부’로 알려진 빌 제임스가 자신의 저서에 이 단어를 언급했고, 2000년대부터 야구 전문지 ‘베이스볼위클리’가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대중적인 기록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퀄리티 스타트의 조건이 ‘6이닝 이상’과 ‘3자책점 이하’로 결정된 이유도 있다. 처음 ‘퀄리티 스타트’ 개념을 만들던 당시 메이저리그 경기 평균 득점이 4.63점으로 집계됐기 때문이다. 6이닝 3자책점을 평균자책점으로 환산하면 4.50이다. 따라서 선발 투수가 6이닝을 3자책점으로 막아주면, 팀 타선이 한 경기에서 평균적으로 내는 점수보다 실점을 적게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 후 추가 실점을 막아 승리를 지키는 것은 불펜 투수의 몫이다. 오로지 ‘선발 투수’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에 초점을 맞춘 기록인 셈이다.
‘실점’이 아닌 ‘자책점’으로 기준을 정한 것도 같은 이유다. ‘실점’은 투수가 마운드에 있을 때 팀이 내준 모든 점수를 합산하지만, ‘자책점’은 투수의 피칭 탓에 잃어버린 점수만 포함한다. 야수의 실책으로 인한 실점은 투수만의 잘못이 아니다. 따라서 선발 투수를 평가하는 퀄리트 스타트 기준에선 제외한다. 6이닝 6실점을 했더라도 그 안에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점 3점이 포함됐다면 퀄리티 스타트에 성공한 것으로 인정한다는 얘기다. 선발 투수들의 연봉 협상에서도 승수보다 퀄리티 스타트 횟수가 더 중요한 기준으로 여겨지는 이유다.
또 6회까지 3자책점 이하로 막은 선발 투수가 7회 다시 마운드에 올라 추가 점수를 내준다면 퀄리티 스타트는 ‘실패’다. 더 나아가 9회까지 완투를 했다 해도 자책점을 4점 이상 줬다면 역시 퀄리티 스타트에 포함되지 않는다. 반드시 ‘6이닝 이상’과 ‘3자책점 이하’라는 조건을 동시에 다 충족해야 이 기록이 성립된다.
사 진제공 = 한화 이글스
퀄리티 스타트는 선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지표로 쓰이지만, OPS(출루율+장타율)나 WAR(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과 마찬가지로 리그 사무국이 공식적으로 집계해 시상하는 기록은 아니다. 하지만 비공인 최다 연속 퀄리티 스타트 세계 기록은 KBO 리그 선수가 갖고 있다. 한화 시절의 류현진(LA 다저스)이다.
류현진은 2009년 8월 19일 삼성전부터 2010년 8월 17일 잠실 LG전까지 무려 29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에 성공했다. 메이저리거 밥 깁슨이 1967년과 1968년에 걸쳐 기록한 비공인 종전 기록(26경기)을 3경기 더 늘렸다. 단일 시즌 기준으로도 2010년 23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해내 크리스 카펜터(2005년)와 밥 깁슨(1968년)이 보유하고 있던 22경기 연속 기록까지 넘어섰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퀄리티 스타트 관련 기록 집계를 아예 하지 않기 때문에 류현진의 성적이 세계 기록으로 인정되는 셈이다.
경이적인 퀄리티 스타트 행진은 2010년 8월 26일 목동 넥센전에서 아쉽게 끊겼다. 이날 1회부터 동료 야수가 평범한 외야 플라이성 타구를 놓치는 실책성 플레이가 나오면서 류현진은 순식간에 3점을 내줬다. 이후 6회까지 추가 실점 없이 잘 막아 30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대기록을 눈앞에 둔 듯했다. 하지만 7회 선두 타자 강귀태에게 초구 직구를 던지다 불의의 솔로 홈런을 맞았다. 자책점이 하나 더 늘었고, 결국 7이닝 4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한 시즌 전 경기 퀄리티 스타트 도전도 동시에 막을 내렸다. 류현진은 그 후 “사실 기록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그동안 힘들었다. 오히려 마음이 후련하다”는 소감을 내놓기도 했다.
# 퀄리티 스타트의 맹점은?
물론 퀄리티 스타트라는 기록에는 맹점이 있다. 애초에 이 용어는 완봉승을 올린 선발 투수의 1승과 5이닝 5실점을 하고도 팀 타선의 지원을 받은 선발 투수의 1승이 같은 가치로 평가받는 모순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안된 기록이다. 하지만 9이닝 무실점과 6이닝 3실점이 똑같이 ‘퀄리티 스타트 1회’로 계산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실제로 팀 내에서 1~2선발을 맡고 있는 투수들은 기준에 턱걸이하는 ‘6이닝 3자책점’ 퀄리티 스타트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 6이닝 동안 1~2점 정도만 내주거나 7~8이닝까지 던지는 경기가 다른 투수들보다 많아서다. 일례로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거인 박찬호는 LA 다저스에서 뛰던 2001년 퀄리티 스타트 26회를 기록했는데, 6이닝 3자책점 경기는 그 가운데 단 한 번에 불과했다.
에이스급 투수들은 오히려 ‘퀄리티 스타트’를 마지노선으로 놓고 그보다 더 많이 던지거나 더 적게 실점하는 데 목표를 둔다. 앞서 언급한 2005년의 카펜터가 좋은 예다. 그해 카펜터와 앤디 페티트는 33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 27회(성공률 82%)를 기록해 공동 1위에 올랐다. 하지만 둘의 이닝 수는 같지 않았다. 카펜터는 퀄리티 스타트를 해낸 경기에서 209⅔이닝(평균 7.8이닝)을 던졌고, 페티트는 188⅓이닝(평균 7이닝)을 소화했다. 페티트의 기록 역시 대단하지만, 같은 퀄리티 스타트를 해낸 카펜터가 도합 20이닝 넘게 더 던졌다는 의미다. 그해 나란히 24차례 성공했던 요한 산타나(180⅓이닝 평균자책점 1.60)와 에스테반 로아이사(163⅓이닝 평균자책점 2.48)도 퀄리티 스타트 수는 같지만 합산 기록에선 차이를 보였다.
# 퀄리티 스타트는 좋은 기록이 아니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있다. 한국 프로야구 역대 최고 투수였던 선동열 국가대표 감독은 KIA 감독 시절 “퀄리티 스타트는 결코 좋은 기록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6이닝을 던져 3자책점을 기록하면 평균자책점이 4.50이나 되는데, 어떻게 좋은 선발 투수라고 말할 수 있느냐”는 얘기였다. “좋은 투수의 기준은 승수가 아니라 평균자책점이다. 적어도 6이닝 2실점(평균자책점 3.00) 정도는 해야 ‘호투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 시절 이닝 이터로 유명했던 한 투수코치도 최근 “퀄리티 스타트는 선발 투수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기준’ 정도로만 여겨야 한다”며 “이 기록은 자칫 선발 투수들에게 ‘6이닝 정도 던지고 3점 정도만 주면 난 충분히 잘한 것’이라는 안도감을 심어줄 수 있다. 사실은 그보다 더 잘해야 진짜 좋은 선발 투수”라고 역설했다. 또 “요즘은 타고투저가 심해 우리 선수들에게 ‘퀄리티 스타트만 하고 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성적에 만족하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며 “4선발이나 5선발이 아닌 에이스급 투수가 되려면 그 기록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의견 때문에 새로 등장한 파생 용어들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단어가 ‘7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뜻하는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다. 평균자책점으로 환산하면 3.86이 되는 기록이다. 단지 이닝 수를 하나 늘린 것뿐인데도 리그 전체 퀄리티 스타트 수의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정도로 ‘7이닝 투구’가 요즘 선발 투수들에게는 어려운 기준이라는 의미가 된다. 타고투저가 만연하고 홈런이 연일 쏟아지는 KBO 리그에선 더 그렇다.
이뿐 아니다. ‘3자책점’이라는 기준 자체가 너무 관대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7이닝 이상 2자책점 이하’를 일컫는 ‘하이 퀄리티 스타트’라는 단어도 생겼다. 처음에는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와 혼용돼 쓰였지만, 점차 두 개의 용어로 분리돼 정착했다.
8이닝 이상을 던지면서 1자책점 이하를 기록한 선발 투수에게는 ‘도미넌트 스타트(Dominent Start)’라는 훈장이 따라 붙는다. LA 다저스의 슈퍼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가 도미넌트 스타트를 밥 먹듯이 했던 대표적 투수로 꼽힌다.
한 야구 관계자는 “일본 프로야구가 2000년대 이후에도 굳이 퀄리티 스타트 기록을 집계하지 않았던 이유는 리그 자체가 투고타저라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 선발 투수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라며 “특히 퍼시픽리그는 정도가 더 심해 1점대 평균자책점 투수들도 종종 탄생하곤 했다. 일본 특급 투수들이 대거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면서 상황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퀄리티 스타트’가 아닌 ‘도미넌트 스타트’ 정도는 돼야 일본에선 의미가 있었을 것”이라고 귀띔하기도 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퀄리티 스타트’의 대체어가 ‘선발쾌투’였다고? 한국에 ‘퀄리티 스타트’라는 단어를 널리 알린 인물은 바로 ‘코리안 특급’ 박찬호다. 1994년 한국인 선수로는 최초로 메이저리그 마운드를 밟은 박찬호는 한국 야구팬들에게 ‘빅리그’라는 신세계를 열어줬다. 일부 마니아층만이 즐겨 보던 메이저리그 경기를 온 나라가 지켜보기 시작한 시점이다. “박찬호의 성적이 좋을수록 한국 프로야구 인기가 떨어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후 많은 선수들이 고교나 대학 졸업 후 한국 프로야구가 아닌 메이저리그 도전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박찬호가 출전하는 메이저리그 경기가 TV로 중계되면서 일본식으로 번역된 야구 용어를 주로 사용하던 한국 프로야구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퀄리티 스타트’도 그렇게 영향을 받아 쓰이게 된 용어 가운데 하나다. LA다저스 시절의 박찬호 그해 올스타전까지 출장한 박찬호는 올스타 브레이크 때 휴식을 취하지 못한 채 후반기를 맞이했고, 첫 등판에서 오클랜드 에이스였던 팀 허드슨과 맞대결해 3⅓이닝 7실점으로 부진했다. 연속 경기 퀄리티 스타트 기록은 끝내 ‘15’에서 멈췄다. 하지만 그 경기 후 다시 4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이어가면서 변함없는 실력을 뽐냈다. 동시에 그 시즌을 기점으로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국내 리그 선수들의 활약상을 조명할 때 퀄리티 스타트라는 기준을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시작했다. 다만 국립국어원만은 낯선 외래어의 등장을 불편해했다. 급기야 2005년 중반에는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퀄리티 스타트’를 대체할 만한 우리말을 공모하기도 했다. 선발표준, 일품선발, 선발쾌투, 짠물투, 육삼투 등 다섯 단어가 최종 후보로 추려졌다. 재투표 끝에 ‘선발쾌투’가 대체 단어로 최종 선정됐다. 이후 국립국어원에서 “앞으로는 ‘퀄리티 스타트’ 대신 ‘선발쾌투’라는 표현을 사용해 달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발쾌투’라는 단어에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라는 수치의 의미를 담기가 모호한 데다, 이미 ‘쾌투’라는 단어가 특정 기준이 없는 일반적인 의미로 야구 기사에 종종 사용돼온 게 문제였다. 자칫 한국어를 쓰려다 야구팬들에게 더 혼돈을 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퀄리티 스타트’는 대신 사용할 만한 한국어를 찾지 못한 채 지금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