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수급 중단 결정…전학도 못 가는 처지 ‘팀 사라지면 꿈 접어야’
아산의 홈구장인 이순신종합운동장에는 현 사태에 반발하는 갖가지 현수막이 걸려 있다. 박정훈 기자
[일요신문] 리그에서 우승을 했지만 웃지 못하는 팀이 있다. 지난 9월 경찰청으로부터 ‘선수수급 불가’ 통보를 받은 아산 무궁화 프로축구단의 이야기다. 이들은 지난 10월 27일 서울 이랜드에 승리하며 K리그2 우승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감독과 선수들은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K리그2 우승컵을 차지하면 K리그1로 승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이들은 다음 시즌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찰팀인 이들은 경찰청 측으로부터 더 이상 선수를 충원하지 않는다는 통보를 받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구단과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경찰청 측을 설득하려 나섰다. 지난 A매치 기간에는 김병지, 최진철, 염기훈 등 전현직 선수들이 성명을 발표하며 재고를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청의 입장은 변함없다.
경찰청의 선수수급 중단 방침은 정부가 2023년까지 계획하고 있는 ‘의무경찰 제도 폐지’와 맞닿아 있다. 구단 측에서도 경찰청 축구단이 사라질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시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경찰청과 구단은 ‘지난해부터 미리 통보해 왔다’는 주장을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더 이상 경찰 신병이 입단하지 않는 상황이 확정된다면 구단은 다음 시즌 리그에 참가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현재 26명의 선수단 중 선임병인 12명은 내년 초 복무기간을 마무리한다. 14명의 선수로 팀운영이 불가능하다.
이에 현재 아산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선수들, 앞으로 아산에 합류해 군 복무를 계획했던 선수들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이대로라면 지난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손흥민의 골을 도왔던 미드필더 주세종은 일반 의경으로 복무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산 무궁화 U-18팀의 미드필더 최수혁 군. 박정훈 기자
#유소년 선수의 소망 “‘우상’ 김선민 선수가 계속 축구를 할 수 있었으면”
최수혁 군은 충남 아산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졸업하고 지난해 새롭게 문을 연 아산 U-18팀에 입단했다. 아산 지역에는 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가 없어 다른 지역 진학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아산 U-18팀이 생겼다. 최 군에게는 좋은 기회가 됐다.
최 군은 아산 U-18팀을 선택한 이유로 “내가 자라온 곳에서 축구를 지속할 수 있어서 좋았다. 프로 산하 팀이기 때문에 축구를 잘하는 친구들이 몰린다. 내 실력을 쌓기에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입단 이후에는 미래의 꿈도 더 구체화됐다. 이전까지는 막연히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아산에 입단하며 이곳에서 뛰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
“입단하고 프로 형들의 첫 홈경기에 볼보이로 참여하게 됐다. 프로 경기를 그렇게 가까운데서 볼 기회가 없었다. 직접 경기를 보니 배울 점이 많았다. 그러면서 나도 이 운동장에서 뛰고 벤치에도 앉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고지 제도가 정착된 프로 스포츠에서 그 고장에서 나고 자란 선수가 입단을 하면 ‘로컬 보이’, 또는 ‘프랜차이즈 스타’라 불리며 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다. 최 군도 자신이 로컬 보이가 되는 꿈을 꿨다.
하지만 지난 9월 경찰청의 선수수급 중단 소식을 들었다. 최 군은 “너무 놀랐다. 함께 운동을 하는 친구들과 ‘우리는 어떻게 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처음엔 운동에 집중하기도 힘들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최 군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축구선수로 아산 소속 미드필더 김선민을 꼽았다. 박정훈 기자
동시에 최 군은 프로팀 형들에 대한 걱정을 털어놨다. 특히, 그가 가장 좋아하는 형인 미드필더 김선민 선수 얘기를 먼저 꺼냈다. 아산 축구단은 프로 선수들이 유소년 훈련장을 찾아 함께 훈련을 진행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 군은 김선민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됐다.
“멘토링 할 때 김선민 형이 좋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줬다. 같은 미드필더라 움직임이나 경기 운영 등에 대해 가르쳐 줬다. 프로그램이 끝나면서는 형이 훈련복을 그대로 벗어서 줬다. 나는 이제 형이 전역 이후에 어느 팀을 가더라도 계속 응원할 것이다. 그런 형이 내년에 축구를 못하게 될까봐 너무 걱정이 됐다.”
최 군은 경찰청이 결정을 바꿔 신입 선수들이 충원되기를 바랐다. 그는 “새롭게 선수들을 뽑아서 지금 상태가 조금만 더 유지가 되고 이후에 시민구단이 창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대로 경찰청이 선수를 충원하지 않고 아산시에서도 시민구단을 만들지 않는다면 유소년팀도 자연스레 없어질 수밖에 없다. 팀에 미래를 맡긴 선수들에겐 절망적인 상황이다. 특히나 아산 U-18팀은 고교 축구부를 유스팀으로 지정한 다른 팀들과 달리 유소년 선수들이 방송통신고등학교를 다니며 팀에서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 U-18팀의 운영 방식을 참고했다. 방통고 재학중이기에 전학이 더욱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일반고교에 다니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전학 이후 같은 광역지자체 내에서는 3개월, 다른 지역에선 6개월의 경기 출전 정지 페널티를 받게 된다.
아산 U-18에 자녀가 소속된 국승호 씨. 박정훈 기자
자녀를 아산에 맡긴 학부모들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 아들(국민석 군)이 현재 아산 U-18팀에서 뛰고 있는 국승호 씨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총무를 맡고 있다. 지난 9월 소식을 듣고 다른 학부모들의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 그는 “안정을 시켜드리긴 했지만 나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고 털어놨다.
국민석 군은 아산 인근의 천안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실력을 인정받아 초등학교 졸업 이후에는 울산의 ‘축구명문’ 현대중학교로 진학했다. 하지만 먼곳에서 지내는 아들을 뒷바라지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학교 인근에 원룸을 잡아놓고 주말마다 아들을 보살폈다. 새로 장만한 차 주행거리가 3년 만에 18만km가 되더라(웃음). 그러다 아산 측이 창단을 하면서 제의가 왔다. 아들을 아산으로 데려오며 가족들도 아산시로 이사했다. 지금 상황이 너무 만족스럽다.”
국 씨는 아산 U-18팀의 자랑을 늘어 놓기도 했다. 그는 “이재현 감독님도 유능한 지도자로 유명하신 분이시고 구단에서도 유스팀 선수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준다”면서 “학부모들은 축구뿐만아니라 교육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구단에서 주 2회 따로 영어 강사를 초청해 수업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첫발을 내딛은 아산 U-18 팀은 현재 1학년으로만 구성돼 있다. 고학년이 주축으로 참가하는 K리그 주니어, U-18 챔피언십 등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국 씨는 “2, 3학년 형들을 상대하다보니 아이들이 전패를 기록했다(웃음)”며 “올해 경험을 하며 많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으리라 본다. 그래도 프로 산하 팀이 창단하며 기량이 좋은 선수를 모았기에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해체설까지 나오며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현재 국 씨는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는 “경찰청에서 결정을 번복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시간이 촉박한 상황인 것은 맞지만 시민구단으로 전환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얼굴에선 기대감을 넘어 자신감까지 보였다. 아산 U-18팀에는 기존 계획대로 신입생도 받는다. 오는 3일 신입생들이 팀에 합류할 예정이다. 아산 축구단의 운명이 유소년 축구꿈나무의 희망과 함께 아직 그라운드에 놓여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