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 자료 보여준 뒤 금품 요구…사면 놓고 가격 흥정 사례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사정 드라이브를 걸었다. 전 정권을 겨냥한 것이었는데, 그 불똥은 재계로 튀었다. 친이계와 각별한 관계에 있던 몇몇 대기업들이 수사선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면은 여러 번 반복됐다. 청와대가 앞장서 ‘부패와의 척결’을 명분으로 사정 정국을 조성하면 그 타깃은 어김없이 기업으로 향했다.
특히 ‘박근혜 청와대’는 사정 드라이브 선봉에 설 검찰 장악에 공을 들였다. 친 정권 성향 검사들을 요직에 포진시켰고, 검찰 출신 김기춘 우병우 등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들은 검찰 인사를 좌지우지하며 사실상 ‘제2의 검찰총장’ 역할을 했다. 박근혜 정권 시절 검찰은 기업 수사의 첨병 역할을 맡았다. 이를 두고 ‘공포 정치’라는 비판도 끊이질 않았지만 박근혜 정권은 이를 통해 재계를 효과적으로 통제하려 했다.
검찰 출신의 한 의원은 “정권이 재계를 컨트롤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검찰이나 국세청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박근혜 정권은 재계 입장에서 암흑기나 다름없다”고 했다. ‘최순실 게이트’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미르·케이스포츠 재단에 기업들이 후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이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기업으로선 정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를 악용한 일들이 발생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 정권 사정당국이 수집한 사례들을 입수해 확인해본 결과 몇몇 친박 실세들이 검찰 등 공권력 이름을 팔아 기업들로부터 돈을 받아낸 건도 그 중 하나였다. 한 친박 정치인의 경우 박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이던 2013년 5월경 한 대기업 임원으로부터 수천만 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사정당국 인사의 말이다.
“친박 정치인이 평소 친분이 있는 대기업 임원에게 검찰 내사 자료를 보여주면서 ‘수사를 막아주겠다’는 취지로 말을 했다고 한다. 그 임원은 감사의 뜻으로 돈을 수차례 건넨 것으로 파악됐다. 유흥 접대는 말할 것도 없다. 임원이 혼자 결정하진 않았을 것으로 본다. 회사 차원의 결정이었을 테고, 그 돈 출처도 의문이다. 설마 개인 돈을 줬겠느냐. 친박 정치인이 내사 자료를 어떻게 구했는지, 또 실제 검찰 수사에 압력을 행사했는지도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이 대기업은 수사를 받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한 ‘로비’였던 셈이다. 이 대기업의 또 다른 임원은 “박근혜 정권에 줄을 대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때였다.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아마 그런 차원에서 벌어졌던 일로 추정된다. 요즘 세상에 우리가 먼저 돈을 주고 그러진 않는데, 아마도 저쪽에서 요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어 그는 “솔직히 수사를 막지 못했다고 해서 줬던 돈을 다시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또 다른 친박 인사는 한 중견기업 대표에게 수시로 ‘용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구체적인 돈의 액수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기업 대표와 친박 인사는 고급 음식점과 유흥주점에서 자주 어울렸다. 이 친박 인사는 조만간 기업들이 무더기로 수사를 받을 수 있는데 미리 그 대상에서 빼주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이 회사는 검찰 수사선상에 올랐다가 막판에 제외돼 정치권 비호설과 같은 뒷말이 나온 바 있다. 다음은 이 기업 측 관계자가 사정기관 인사에게 진술한 내용을 압축한 것이다.
“둘이 처음 알게 된 게 이완구 전 총리가 부패와의 척결을 선포할 무렵인 2015년 3월이다. 우리 회사도 수사를 받을 것이란 소문이 돌아 알아보던 차에 대표가 그 친박 인사를 소개 받았다고 한다. 박근혜 대선 캠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서 실세들과 관계가 두텁다고 했다. 대표가 회사 돈으로 접대를 많이 했다. 우리는 수사를 받지 않았는데, 그 사람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우리로선 ‘보험’이 필요했기 때문에 꾸준히 관리를 했다. 최순실 터지기 전까진 계속 그랬던 것으로 안다.”
한 친박 전직 의원의 경우 특정 기업과 은행의 국정감사 민원을 들어주고 여러 편의를 제공받았을 뿐 아니라 금품까지 수수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국감 자료를 미리 입수해 기업 등에 건네주거나 증인 신청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빼주는 식이다. 그 전직 의원은 자신과 각별한 관계에 있던 은행에 대해 부정적인 정책을 추진 중인 금융기관을 상대로는 국감에서 집요하게 공격한 적도 있었다.
친박 실세 인사가 사면을 놓고서 흥정을 시도했다는 의혹까지 대두돼 충격을 준다. 그 실세 인사는 총수 사면에 사활을 걸고 있던 대기업 측에 먼저 힘을 써주겠다고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실세 인사와 이 대기업 최고위급 임원은 사면 성사를 위한 가격을 놓고 여러 번 머리를 맞댔다고 한다. 결국 이 총수는 사면을 받았다.
현 정권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그 실세 인사가 사면에 관여했는지, 또 대가를 받았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대통령 고유 권한인 사면을 마치 장사하는 것처럼 거래하려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박근혜 정권에서 단행된 사면에 대해 여러 말들이 무성했는데, 이번 기회에 사면 전반에 대해 들여다볼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