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직조차 자리가 없다...하청업체들 도산 시작...리먼 때보다 더 심각”
일선 파견업체에서 느끼는 고용한파는 수치로 나타나는 것보다 더욱 매서웠다. 그래픽=백소연 디자이너
한국은행이 지난 5일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9.5%로 나타났다. 이는 OECD의 7.6%보다 높은 수치이다. 다른 OECD 국가들이 하락세를 보였던 것과 달리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오히려 상승 곡선을 그렸다. 경제 회복세에 접어든 이웃나라 일본의 청년실업률은 4.1%로 나타났다. 2010년 전까지 일본보다 낮은 청년실업률을 기록했던 한국은 지금 일본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청년실업률을 나타내고 있다.
이 뿐 만이 아니다. 이제 그 여파가 고용시장의 또 다른 약자 층인 중장년층까지 확대되고 있는 양상이다. 통계청과 OECD의 자료에 따르면, 올 2분기 한국의 중장년층 실업률은 2.9%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분기와 비교해 0.2%p 높은 수치다. 더 심각한 건 지난 IMF 외환위기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역전된 바 없는 미국의 중장년층 실업률이 지난 2분기 기준 2.7%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역전된 셈이다.
기자가 인력파견 업체 대표 및 관계자들에게 이러한 최근 고용한파 수치를 거론하니, 업체 대표들은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라며 “지금 제조업 고용시장 현장에서 느끼는 우리들의 체감은 더욱 심각하다”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주로 경기도 수원, 화성, 오산, 평택, 안성 등 수도권 대규모 공단 곳곳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전자와 기계, 반도체 등 제조업이 주 분야이며 인근 항만의 유통과 건설현장 인력도 부수적으로 다룬다.
이들이 다루는 일자리는 고용시장에서도 가장 유동적인 파견직이기 때문에 고용시장의 흐름과 상황이 바로바로 직결된다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고용시장이 좋으면 기업은 이들에게 많은 인력 공급을 요구하고, 그렇지 못하면 기존 파견인력의 계약 종료 후 다음 공급 인력을 축소한다.
기자와 만난 한 업체 대표는 “전자와 반도체 분야를 불문하고 제조업만 따지면 지난해 비해 기업들의 인력 파견 니즈가 거의 30% 이상 줄었다고 보면 된다”라며 “솔직히 우리가 다루는 일자리가 힘들면서도 파견직이고,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라고도 볼 수 없지만 이마저도 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장 우리 파견업체들 중에서도 올 하반기 들어 버티지 못하고 문 닫은 곳이 수두룩하다”라며 “버티고 버티는 업체들은 지금 사무실과 영업망을 서로 공유하거나 파견감독 및 사무인력을 대폭 줄이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고용시장 한파가 매섭다. 한 취업준비생이 눈물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본청 기업보다 더 심각한 건 지금 하청 업체들”이라며 “특히 최저시급 상승으로 공정 과정 중 해외로 넘어간 게 올해 유독 많아졌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이 나오기 까지 지난해 10개 공정 중 그래도 3개 공정은 국내 하청이 담당했다면, 올해는 공정 10개 중 1개, 그것도 거의 라벨갈이 수준만 국내에서 하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결국 하청들의 인력 공급 니즈가 줄고, 버티지 못한 업체 중에선 문 닫은 곳도 제법 있다”라며 “우리도 올해 거래하던 업체 두 곳이 망해서, 받아야 할 인건비를 제때 못 받고 파견업체인 우리가 대신 물고 있는 형편”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가 거론한 ‘최저시급’ 상승의 여파는 고용시장에서 또 다른 현상도 야기하고 있단다. 앞서의 업체 대표는 “올 하반기부터 주 52시간을 적용받는 사업장이 많아졌다. 그런데 정말 웃긴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라며 “우리 파견 직원들 중에서 잔업 수당이 월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당장 수입이 주는 바람에 일이 끝나면 대리운전이나 야간 알바를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졌다. 이들 중에선 우리에게 추가 파견을 요구하는 경우까지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특히 시공기간을 제때 맞춰야 하는 건설 현장이나 납품 기한에 민감한 일부 제조업 분야의 경우 잔업이 너무나 당연하고, 인력들도 그 잔업 수당을 바라보고 취업한다”라며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일괄적으로 주 52시간을 적용하는 당국의 탁상행정 때문에 오히려 일선 근로자들이 피해를 본다. 당국은 머릿속에서 저녁이 있는 삶을 그렸겠지만, 현실은 저녁에 추가적인 알바를 해야 하는 삶”이라고 덧붙였다.
10년 넘게 수도권 공단 사업장에 인력을 공급하고 있다는 한 업체 대표는 “리먼 사태 때도 정말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다”라며 “더 심각한 것은 내년이다. 큰 사업장의 경우, 연말이면 내년 상반기 파견인력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우리 쪽에 미리미리 전달하지만 지금 계획조차 안 나오고 있다.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혀를 찼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