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켓 벤치마킹 ‘골목시장’ 접수
▲ 동네 슈퍼마켓에서 화사하게 탈바꿈한 ‘햇빛촌’ 내부. 대형 할인점 못잖게 진열이 잘 돼있다. | ||
정석윤 씨는 서울 중랑구 묵1동에서 13년 동안 슈퍼마켓을 운영해 온 도깨비시장의 ‘터줏대감’이다. 개업 이후 문을 닫은 날은 손에 꼽을 정도인 이 점포는 지난 2006년 5월, 돌연 문을 닫아버렸다. 열흘 뒤 평범한 동네 슈퍼 중의 하나였던 ‘묵일 슈퍼마켓’은 사라졌다. 대신 ‘햇빛촌’이라는 새로운 브랜드의 슈퍼마켓이 들어섰다.
바뀐 주인이 누굴까 궁금하며 들어선 동네 주민을 반기는 사람은 친근한 얼굴의 정 씨. 손님들은 이전과 180도 달라진 점포의 모습에 깜짝 놀라는 모습이다. 깔끔해진 인테리어와바뀐 상품 진열은 편의점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 있으나마나 했던 금전등록기도 사라졌다. 물건을 카운터에 내려놓으면 센서가 바코드를 인식, 순식간에 영수증이 발급된다. 고객 카드를 내밀면 포스에는 고객 정보가 뜨고 마일리지가 자동으로 적립된다. 크기만 작을 뿐 할인점과 다를 바 없는 운영방식이다.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젊은 층이 대형 할인점으로 몰리더군요.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13년이라는 세월에 시설 개보수가 요구되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오래된 임대 점포에 내 돈 들여 공사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운영해 온 점포와 손님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대형 점포의 공세에 가만히 앉아있다가는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의 선택은 한국체인사업협동조합에서 지원하는 프랜차이즈 브랜드 ‘햇빛촌’. 조합의 컨설팅을 통해 점포는 새롭게 태어났다. 천장과 벽, 바닥, 진열대 등 전체를 뜯어고쳤다. 인테리어에 들인 비용만 5000만 원.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밝고 깔끔해진 분위기지만 바뀐 매장 곳곳에는 매출을 높이는 전략이 숨어있다. 우선 150cm로 대폭 낮아진 진열장의 높이는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것. 진열장 높이가 낮아지면서 가게가 한눈에 들어와 고객 컨트롤 역시 쉬워졌다.
이전보다 세분화해 늘어난 선반에는 많은 양보다는 다양한 종류의 상품을 비치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다양해진 상품으로 진열 시간이 늘었지만 이는 재고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매장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카운터 위치 변경이다. 동네 슈퍼마켓의 대부분은 금고의 안전성 이유로 카운터를 출입구와 가까운 곳에 두는 것을 꺼려한다. 때문에 카운터는 매장 안쪽에 있기 마련. 하지만 손님이 들어와도 즉시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아 고객과의 친밀도가 떨어졌다.
고민 끝에 그는 손님이 들어서면 바로 알아볼 수 있도록 카운터를 출입구 가까이로 옮겼다. 이제는 손님이 들어서면 친근하게 인사를 나눈다. 고객의 동선이 한눈에 들어와 물건을 찾아주기도 쉬워졌다.
그는 외형적인 변화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할인점의 전략처럼 마진율을 낮추는 대신 판매량을 늘려 매출 향상을 꾀하는 것이 동네 슈퍼마켓에서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아이스크림을 예로 들어볼까요? 할인 없이 판매해 월 350만 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죠. 마진율을 낮춰 50% 깎아 팔았더니 매출이 1000만 원을 넘어섰어요. 수익이 늘었죠. 회전율을 높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욕심을 버리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죠.”
그는 이제 주변에 또 다른 경쟁자가 생겨도 두렵지 않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경쟁자의 등장은 긴장을 늦출 수 없고 나태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계기가 됩니다.”
24평 슈퍼마켓 창업에는 1억 5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여기에 리뉴얼을 위한 인테리어 비용으로 5000만 원을 썼다. 현재 월 평균 매출은 6000만 원. 마진율은 17~18% 정도다.
김미영 프리랜서 may4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