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택은 줄이고 대출은 늘리고…‘소비자만 손해’ 지적에 카드사 “어쩔 수 없다”
정부는 지난 22일 국무회의에서 신용카드 우대수수료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번 개정안은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카드수수료 종합개편방안’에서 발표했던 카드수수료 체계 개편안의 후속 조치다. 오는 1월 31일부터 시행된다.
이번 카드 수수료 개편은 ‘파격적’이라는 게 업계 평가다. 연매출 5억에서 500억 원 이하 가맹점의 신용카드 수수료 부담이 줄어든다. 우리나라 카드 가맹점의 99%가 연 매출 500억 원 이하다. 500억 원을 넘는 곳은 일부 대형마트와 백화점 정도다. 국내 상공인 대부분이 인하 혜택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카드사들은 수수료가 주 수입원인 만큼 상공인들의 혜택이 늘어날수록 수익 감소폭이 커진다. 예상 수익 감소 규모는 금융당국 계산으로는 약 7000억 원, 카드사 계산으로는 1조 5000억 원이다. 그동안 카드업계는 “카드사가 공기업이냐”는 등의 강도 높은 불만의 목소리를 내왔다. 금융당국 결정에 업계 전체가 이 정도로 반발하고 불만을 숨기지 않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카드수수료 인하 적용을 앞두고 수익 감소를 예상한 카드사들이 각종 혜택을 줄이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 혜택 축소에 단종까지
카드사들은 이번 카드 수수료 개정안 통과를 전후로 무이자할부나 포인트 적립 등 부가서비스 축소에 나서고 있다. 무이자할부와 포인트 적립 서비스는 카드사들이 비용 부담을 가지면서도 꾸준히 유지해 온 대표서비스다. 수수료 수익이 쪼그라드는 만큼 기존 카드결제 사업만으로는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게 카드사들의 입장이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건 롯데카드다. 지난 1월 1일부터 늘 제공해오던 업종별 무이자할부 혜택을 특정 기간으로만 축소하기로 했다. 이사철에 가구나 가전제품에 대해 무이자할부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업계 1위 신한카드도 올해부터 모두투어·하나투어만 남기고 다른 여행사는 무이자할부 행사에서 제외할 방침이다. 사실상 무이자할부 축소라는 게 업계 분석이다.
현대카드와 KB국민카드는 각각 포인트와 캐시백 혜택을 줄였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롯데카드는 매각을 앞두고 있어 수익성 개선을 위해 무이자할부 서비스를 줄인 측면이 있다”면서도 “고객 이탈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선제적으로 축소에 나선 건 그만큼 수익성 관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업계에선 앞으로 롯데카드의 방식이 대부분의 카드사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드를 아예 단종 시키는 경우도 있다. 삼성카드는 항공 마일리지 적립 등의 혜택이 있는 ‘더오 카드’의 신규 발급을 중단했다. 지난해 말에는 삼성카드 포인트로 비즈니스 항공권을 일반석 티켓 가격으로 살 수 있는 ‘모두투어 투어마일리지 카드’를 단종했다. KB국민카드는 오는 31일부터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통신비 할인카드 11종을 포함한 총 20개 제휴카드의 신규·추가 발급을 중단한다.
항공 마일리지와 통신비 할인은 그동안 카드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오던 서비스다.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혜택인 만큼 카드사들이 항공사와 통신사에 마케팅 비용을 경쟁적으로 늘렸다. 이 때문에 항공사와 통신사는 카드업계의 ‘슈퍼갑’으로 통해왔지만, 최근엔 가장 활발하게 서비스를 축소하는 업종이 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렇다고 카드사들의 혜택이나 행사를 모두 없애진 않았다. 새해 전후로 여행‧레저‧할인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대신 홍보 없이 ‘조용히’ 진행 중이다. 과거엔 카드사들의 이벤트, 할인 행사 홍보를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엔 구체적인 내용들은 홈페이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홍보를 자제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짧게 답했다.
# ‘이자장사’ 나서는 카드사
카드사들이 ‘허리띠’를 졸라 메기만 하는 건 아니다.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 수수료 수익을 메운다. 대출 사업이다. 사실상 ‘이자장사’에 돌입한 셈이다.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을 보면, BC카드를 제외한 7개 전업카드사의 지난해 3분기 누적 개인 카드대출(현금서비스·카드론) 이용액은 69조 9363억 1100만 원으로 2017년 3분기와 비교해 6.0% 증가했다.
현대카드의 증가폭이 9.4%로 가장 컸다. 이어 삼성카드(8.7%), 롯데카드(7.6%), 우리카드(6.2%) 순이었다. 업계 평균은 6%다. 정부는 카드대출 증가율을 연 7%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는 만큼 카드사들이 최대한 수치를 맞춰왔지만 최근 이례적으로 증가세가 가파르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현금서비스나 리볼빙 등 카드 대출 서비스는 고금리(연5~24%)가 적용된다. 카드사들은 수수료율이 5~6%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이 금리로 돈을 빌리려면 최고 신용등급을 갖춰야 한다. 카드사들이 각종 혜택 축소와 함께 ‘고금리 장사’에 돌입하면서 결국 피해는 소비자에게만 돌아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카드사들도 할 말이 많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이 카드 수수료 인하를 추진하면서 ‘핵심 동력’을 카드사의 마케팅 비용으로 꼽았다는 주장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카드사 마케팅 비용은 2014년 4조 1000억 원, 2015년 4조 8000억 원, 2016년 5조 3000억 원, 2017년 6조 1000억 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총수익에서 마케팅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4년 20.0%, 2015년 22.3%, 2016년 24.2%, 2017년 25.8%로 크게 늘었다. 카드사들이 과도하게, 경쟁적으로 마케팅에 돈을 쏟아 부어온 만큼 이 비용을 일부 줄여도 카드 수수료 인하 분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금융당국은 카드수수료 개편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구체적인 카드사 마케팅 관행 개선 기준을 1월 말까지 마련하기로 했지만 지연될 전망이다. 마케팅 비용 관행 개선안은 카드 상품 설계비 중에서 마케팅 비용을 얼마나 덜어낼 수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카드사들의 신용카드 상품이 2만여 개에 달해 분석이 늦어졌다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또 다른 카드사 관계자는 “서비스 축소에 따른 지적과 고객 이탈도 예상하고 있다. 결국 정부 방침대로 마케팅 비용을 줄이게 될 것”이라며 “올해 3월부터 부가서비스가 대폭 변경되고 앞으로는 부가서비스는 줄고 연회비는 올라간 카드가 카드사들에겐 ‘현실적인 선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