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ness of Being-소외된 인간성: 130x130cm 한지에 먹 2017
세상에는 양지가 있는 반면 음지도 있다. 양지가 빛나는 것은 음지의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양지만 보려고 하고 거기에 살기를 원한다. 욕심 탓이다. 그러나 음지의 삶이 더 흔하다. 많은 이들은 음지에서 양지를 꿈꾸며 산다.
음지는 드러나지 않지만 늘 우리 곁에 있다. 이를 토닥이고 삶의 일상이라고 위로해준다면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워질 수 있으리라. 순수 예술은 이런 곳에서 더욱 힘을 보여준다.
남빛이 관심을 보이는 세상은 이런 곳이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음지를 비춘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어둡게 보이지만 따뜻하다.
그가 소재로 삼는 것은 버려진 인형이다. 누군가에 의해 소중하게 다루어지다 효용 가치를 잃어 분리 수거된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다.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인 셈이다. 거기에서 남빛은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본다. 그러나 그가 그림에 품어내는 버려진 인형들은 따스하다.
object-a No.17w-01: 23x30cm 한지에 먹, 백토 2017
주변에 하찮게 보이는 것. 버려진 일상 용품에서 모티브를 찾아 삶의 진짜 모습을 찾으려고 한다. 이런 작가적 태도는 진솔한 고백처럼 보인다. 주변에 하찮게 보이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이것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다. 자신이 경험했고, 그 결과로 의식 속에 문신처럼 남게 됐으며, 그래서 확실한 관심의 대상이 된 것. 이걸 찾는 일이 자신의 그림을 만들어나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 회화를 전공한 작가다. 작금의 전통 회화는 우리 것이지만 음지와 가깝다. 우리 것에 대한 무관심과 서구화를 향한 시대 흐름 탓이리라. 그의 회화 언어는 음지로 취급당하고 있는 전통 기법이다. 그러나 현대 감각을 담고 있어 흥미롭다.
그의 기법은 전통 초상화에서 쓰던 배채다. 배채는 화면 뒤에 색을 칠해 앞으로 스며 나오게 하는 기법으로 인물의 부드러운 표현과 깊이 있는 화면을 보여준다. 남빛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만들어냈다.
object-a No.17w-002: 40x40cm 한지에 먹 2017
작가는 화면 뒤에서 사물을 세밀하게 스케치하고 먹으로 밑그림을 완성하는 것으로 작품 제작을 시작한다. 그리고 붓에 물을 이용해 스케치한 사물에 칠한다. 물이 사물에 스며든 다음 먹을 칠한다. 물을 머금은 스케치한 사물은 먹을 빨아들여 화면 앞쪽으로 뱉어낸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화면 뒤에 그려진 인형은 화면 앞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물을 머금은 먹이종이를 투과해 스스로 화면 앞쪽에 형태를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윤곽선을 송곳으로 긁어서 나타나는 선으로 인형의 형태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전통 기법에서 새로움을 찾아 자신만의 언어를 개척한 남빛의 회화가 기대되는 또 다른 이유다.
전준엽 화가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