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은 대기업 및 중소기업 대표 128명을 청와대로 불러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경내를 산책했다. 모두가 문 대통령과 같은 검정색 계통의 외투와 정장차림에 하얀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다. 노타이 차림은 여성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재희 이화다이아몬드 사장뿐이었다. 넥타이 색깔만 검정색이었다면 문상객 패션이라 할 만 했다.
경제살리기를 올해의 최대 국정운용과제로 삼은 문 대통령이 기업인들과 흉금(胸襟)을 터놓고 대화를 갖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자리의 배치부터 대통령 좌우에 기업인들이 둘러앉는 타운홀 미팅 방식이었다. 대통령 좌우 옆자리엔 대기업 총수가 아닌 중견업체 기업인이 앉았고 그 중의 한 사람은 여성기업인이었다.
대화 도중 모든 참석자들이 웃옷을 벗어 와이셔츠 차림으로 자연스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회자인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상의를 탈의하면 어떨까 건의 드린다. 괜찮으시겠습니까?”라는 제의에 문 대통령이 “좋습니다”라고 해서 연출된 장면이다. 이것도 각자 알아서 벗을 수는 없었던 걸까?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서 정장차림은 예의에 속한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패션을 따라하는 관행에는 획일주의 문화의 잔재를 보는 듯한 어색함이 있다. 개성을 살리면서 예의를 갖추는 차림도 얼마든지 가능해진 시대이고, 창의력으로 경쟁해야 할 기업인들의 패션이기에 더욱 그렇다.
문재인 정부 들어 다소 덜한 듯하지만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이 일제히 수첩을 펴놓고 대통령의 말씀을 받아 적는 ‘적자 패션’이 있었다. 따라 적지 않으면 대통령에 불경하다고 찍힐 것을 염려해 받아 적는 시늉을 했다는 장관도 있었다.
문 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에서 “경제정책의 기조를 바꾸지 않는 자신감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어쩌면 당연한 질문을 한 기자를 향해 “교육이 안 됐다” “예의가 없다”고 비난하는 청와대를 보며 그런 ‘왜곡된 충성’ 기조에 변화가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자가 편한 차림으로 대통령을 만날 수는 없는 걸까? 대통령과 패션이 다른 것은 불경이 아니라 다양성으로 여겨져야 하지 않을까? 흉금을 푼다는 것은 ‘가슴의 옷깃’을 푼다는 것인데 넥타이도 허락을 받아 푸는 분위기에서 그런 대화가 가능할까?
미국의 대통령이 기업인을 만날 때 기업인들의 차림새는 그야말로 자유분방이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회장이 오바마 전 대통령을 만날 때는 종종 티셔츠 차림새였다. 창의력은 생각이 자유로운 곳에 깃들고, 패션은 그런 자유로움의 대표적인 표현이다.
대통령이 국민들과 흉금을 트고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