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폭 삭감 이유는 단연 ‘성적 부진’... 이종범·정민태 등 레전드들도 못피한 냉혹한 프로세계
KIA 타이거즈 투수 윤석민. 일요신문DB
그런 윤석민이 최근 불명예스러운 기록 하나를 세웠다. 지난해 연봉 12억5000만 원에서 무려 10억5000만 원이 깎인 2억 원에 올 시즌 재계약을 했다. 역대 KBO 리그 연봉 최다 삭감액. 삭감률이 무려 84%에 달한다. 구단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고, 윤석민으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지난 세 시즌의 부진이 남긴 안타까운 결과다.
#윤석민은 왜 역대 최다 삭감액을 기록했나
윤석민은 2013시즌이 끝나고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자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볼티모어와 3년 총액 575만 달러에 사인했다. 하지만 빅리그 마운드를 밟지 못한 채 트리플A에 머무르다 1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친정팀 KIA는 당시 투수 FA 최고액이던 4년 90억 원을 안기면서 윤석민을 맞이했다. 계약금이 40억원이고, 연봉이 매년 12억 5000만 원씩 지급되는 조건이었다.
윤석민은 복귀 첫 시즌인 2015년 팀 사정상 마무리 투수를 맡았다. 데뷔 후 처음이자 KIA(전신 해태 포함) 선수로는 역대 네 번째로 30세이브 고지를 밟았다. 하지만 2016년부터는 팔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그해 1년간 31이닝을 던지는 데 그쳤고, 시즌이 끝난 뒤에는 오른쪽 어깨 위에 웃자란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에도 KIA 마운드에 공백이 생길 때면 꾸준히 윤석민의 복귀 여부와 시점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윤석민은 크고 작은 부상에 발목을 잡혀 좀처럼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4년 계약 마지막 시즌이던 지난해에도 승리 없이 8패 11세이브, 평균자책점 6.75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이름 석 자만으로도 상대 타자들에게 위압감을 주던 에이스의 위엄은 되살아나지 못했다.
프로야구 선수에게 ‘돈’은 곧 자존심이다. 현재 위상과 미래 기대치를 알려주는 숫자이기 때문이다. 4년 전 ‘윤석민’이라는 선수의 가치를 90억 원으로 평가했던 KIA는 결국 올해 연봉을 현실에 맞게 조정했다. 윤석민도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했다. 앞으로 이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윤석민 스스로 마운드에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 뿐이다. 다만 아직은 전망이 썩 밝지 않다. 윤석민은 2월 1일 시작된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 참가했지만, 캠프 시작 열흘 만에 중도 귀국했다. 고질적인 오른 어깨 통증과 허벅지 내전근 통증이 재발해서다. 사실상 올해 스프링캠프는 정상적으로 소화할 수 없게 됐다. 캠프 기간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고, KIA는 벌써 평가전을 중심으로 한 실전 훈련을 시작했다. 윤석민은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국가대표 리드오프 이용규도 연봉삭감을 피하지 못했다. 사진=한화 이글스
윤석민 이전에 연봉이 가장 많이 삭감된 선수는 LG 장원삼이다. 삼성에서 뛰던 지난해 1월 7억 5000만 원에서 5억5000만 원 깎인 2억 원에 사인했다. 삭감률 역시 73.3%에 달한다. 윤석민처럼 4년 FA 계약이 끝난 뒤 구단과 단년 계약을 하면서 몸값이 많이 떨어진 사례다.
장원삼은 2014시즌을 앞두고 4년 총액 60억 원에 삼성과 FA 계약을 했다. 첫 2년간 좌완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팀 우승에 큰 힘을 보탰다. 하지만 이후 2년간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게 문제였다. 특히 계약 마지막 해인 2017년 4승 5패, 평균자책점 5.61로 부진했다. 결국 대폭 삭감안을 받아들여야 했고, 지난 시즌이 끝난 뒤 구단에 방출을 요청해 LG로 팀을 옮겼다.
한화 이용규도 장원삼보다 조금 먼저 연봉 5억 원이 깎이는 아쉬움을 맛봤다. 2014년 한화와 4년 FA 계약을 맺은 그는 계약 마지막해인 2017년 연봉 9억 원을 받았지만, 지난해에는 4억 원만 받고 뛰었다. 장원삼 이전까지 최다 삭감액 기록이었다.
이용규는 2017년 팔꿈치 통증 탓에 개막 엔트리에서 빠졌고, 복귀 후에도 다시 오른 손목 골절로 재활하느라 57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결국 기존 연봉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에 사인하면서 팀에 남고, FA 재자격 권리 행사까지 1년을 미뤘다. 하지만 지난 시즌이 끝난 뒤에도 또 한 번의 FA 대박은 터트리지 못했다. 원 소속구단 한화와 긴 줄다리기 끝에 스프링캠프 출발을 하루 앞두고 부랴부랴 사인했다. 2+1년간 최대 26억 원을 받는 조건. 계약금 2억 원, 보장 연봉 4억 원에 매년 옵션 4억 원이 포함돼 있다.
#깨지지 않는 삭감률 90%의 벽
윤석민, 장원삼, 이용규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연봉이 수억 원씩 깎여 나가는 선수들은 대부분 내로라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연봉이 수억 원 삭감됐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이상의 돈을 받았다는 전제 아래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NC에서 은퇴한 박명환이 그랬다. 그는 2011시즌을 앞두고 당시 소속팀이던 LG와 종전 5억 원에서 4억 5000만 원 삭감된 5000만원에 사인했다. 이용규가 벽을 넘을 때까지 8년간 역대 최고 삭감액으로 남아 있던 금액이다. ‘억대 연봉’이라는 마지노선조차 지키지 못했다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그가 기록한 삭감률 90%는 삭감 금액과 별개로 여전히 가장 큰 폭의 추락으로 남아 있다. 삭감액은 이용규와 5000만 원 차이지만, 삭감률은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이유가 있다. 박명환은 2007시즌을 앞두고 LG와 4년 FA 계약을 했다. 몸값 총액은 40억 원. 당시로서는 역대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거액의 몸값이었다. 이적 첫 해인 2007년에는 10승 고지를 밟으면서 활약했지만, 나머지 3년은 부상 탓에 24경기에서 단 4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박명환 역시 윤석민, 장원삼처럼 FA 재자격 취득 조건을 채우지 못해 LG와 추가 계약을 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결국 LG는 3년간 부진했던 박명환의 연봉을 5000만 원으로 낮췄다. 박명환은 2년 뒤 LG를 떠나 NC에서 2년 더 뛰고 은퇴했다.
사실 장외에서 박명환보다 더 높은 삭감률을 기록한 선수는 역시 NC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한 손민한이다. 1년 동안 선수로 뛰지 못한 뒤 돌아온 상황이라 예외 사례에 속할 뿐이다. 롯데 에이스였던 그는 2011년 당시 투수 최고액인 연봉 6억 원을 받고 뛰었다. 그러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재임 시절 여러 문제에 얽혀 방출됐고, 1년간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그런 손민한에게 김경문 당시 NC 감독이 다시 기회를 줬다. 손민한은 2013년 4월 NC와 육성선수로 계약하면서 연봉 5000만 원을 받기로 했다. 2년 전 받았던 연봉 6억 원에서 91.7%에 해당하는 5억 5000만 원이 깎여 나갔다. 야구를 계속 하고 싶던 손민한은 이 연봉을 감수했고, NC에서 3년을 더 뛰면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은퇴했다. 은퇴 직전까지 포스트시즌에 등판했을 정도로 저력을 과시했으니, 자존심을 버리고 실리를 택한 최상의 판단이었다.
#메이저리거 김병현도 연봉 4억 원 삭감
메이저리거 출신 김병현도 한꺼번에 4억 원을 잃었던 아픈 기억이 있다. 2013년 당시 소속팀이던 넥센(현 키움)에서 6억 원을 받았지만, 이듬해 재계약하면서 연봉 2억 원 삭감안을 받아들여야 했다. 삭감률은 66.7%. 당시만 해도 역대 2위 삭감 액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2013년 한 시즌 동안 15경기에서 75⅓이닝을 던지면서 5승4패 평균자책점 5.26에 그친 데 따른 결과다.
이전까지 넥센은 메이저리그에서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이름을 날렸던 김병현의 자존심과 가치를 최대한 인정했다. 김병현은 2012년 국내로 복귀하면서 연봉 5억 원에 사인했고, 첫 해 3승 8패에 평균자책점 5.66을 기록하고도 연봉이 6억 원으로 더 올랐다. 투수 보직 결정 과정에서도 “선발투수로 뛰고 싶다”는 의사를 우선적으로 존중받았다.
하지만 김병현이 부진했던 2013년 한 해 동안 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박병호를 비롯한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했고, 젊은 투수들이 꾸준히 성장해 팀의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을 뒷받침했다. 반면 김병현은 2년째 팀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2년간 34경기에서 8승 12패 3홀드, 평균자책점 5.44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넥센은 “뚜렷한 삭감 요인이 많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고, 김병현 대신 한현희 같은 젊은 주축 투수들의 연봉을 대폭 인상했다. 김병현도 구단의 뜻에 동의하고 별다른 잡음 없이 계약을 마쳤다. 하지만 결국 넥센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바로 그해 4월 고향팀 KIA로 트레이드됐다. 김병현은 2017시즌이 끝난 뒤 KIA와도 작별했다.
#이종범과 정민태도 피하지 못한 칼바람
이종범과 정민태 같은 당대의 최고 스타들도 기량이 하향 곡선을 그리던 선수 말년에는 연봉 대폭 삭감의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이종범은 2007년 5억 원에서 2008년 2억 원으로 연봉이 내려앉는 아쉬움을 맛봐야 했다. 38세에 접어든 이종범이 2007년 84경기에서 타율 0.174, 1홈런, 18타점으로 최악의 시즌을 보낸 뒤였다.
서서히 은퇴 얘기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종범은 구단과 선수 생활 연장에 합의한 뒤 “대신 연봉은 구단에 백지 위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는 당시로서는 역대 최고인 3억 원 삭감. 이종범은 독기를 품었다. 이듬해 110경기에서 타율 0.284, 1홈런, 38타점으로 반등에 성공했다. “3할 타율에 복귀하겠다”는 다짐은 지키지 못했지만 KIA도 이종범의 선수 생활 연장을 납득했다.
정민태는 2007년 현대에서 3억 1080만 원을 받고 뛰었다. 하지만 2008년 팀이 해체되면서 38세에 새 팀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 1999년 20승을 올린 투수지만, 2005년 어깨 수술을 받은 뒤 하락세가 완연해 3시즌 동안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뒤였다.
이미 2005시즌을 앞두고 한 차례 연봉 대폭 삭감을 당하기도 했다. 2004년 연봉이 7억 4000만 원이었지만 그해 7승 14패에 그친 뒤 이듬해 5억 5500만 원으로 1억 8500만 원이나 깎였다. 당시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삭감 규모. 정민태는 10% 삭감안을 주장하며 구단과 줄다리기를 했지만, 현대는 25% 삭감안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스프링캠프 출국 직전에야 계약서에 사인한 뒤 담배까지 끊고 재기를 다짐했다.
그러나 그 후 2년간 연봉은 계속 줄어들기만 했다. 2억 4420만 원이 더 사라져 3억 원대까지 내려갔다. 정민태는 2007년에도 7경기에서 승리 없이 6패 평균자책점 12.81을 기록한 뒤 간판을 바꿔 단 히어로즈에 스스로 방출을 요청했다. 이때 정민태에게 손을 내민 팀이 KIA다. 정민태는 결국 전년 대비 77.5% 낮아진 연봉 7000만 원에 KIA 유니폼을 입게 됐다. 하지만 KIA에서도 단 한 경기에만 마운드에 오른 뒤 시즌 도중 은퇴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일본야구의 연봉 감액 제한 정책 일본 프로야구 협약에는 한국에 없는 제도가 하나 포함돼 있다. ‘참가보수 감액 제한’ 조항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렇다. 계약을 완료한 선수의 참가보수 총액이 1억 엔을 넘을 경우엔 삭감률을 40%까지로 제한하고, 1억 엔을 넘지 않을 경우엔 25%까지만 연봉을 깎을 수 있다는 조항이다. 참가보수는 통일계약서에 명시된 금액 기준이고, 경기 분배금을 비롯한 추가 소득은 포함되지 않는다. 구단이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일방적으로 깎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1953년 이 같은 조항이 추가됐다. 하지만 여기에 붙어 있는 예외 사항 한 줄이 늘 논란거리가 되곤 했다. 바로 ‘선수의 동의가 있으면 이 한계는 사라진다’는 내용이다. 선수에게 거부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다른 팀으로 이적하고 싶지 않거나 옮기기 어려운 선수들에게 대폭 삭감안이 제시되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악용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메이저리그를 경험하고 돌아온 레전드 스타 마쓰이 가즈오가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그는 2016시즌을 마친 뒤 당시 소속팀이던 라쿠텐과 연봉 1억 6000만 엔에서 9000만 엔이 삭감된 7000만 엔에 다음 시즌 재계약을 했다. 감액 제한 상한선 40%를 훌쩍 넘은 것은 물론, 무려 56%가 깎여 나간 금액이다. 라쿠텐 구단은 “선수가 동의해 이 금액에 사인했다”고 했다. 2017년은 1975년생인 마쓰이가 42세를 맞는 시즌이었다. 마쓰이는 1994년 세이부에 입단한 뒤 팀의 주전 내야수로 활약하다가 2004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레전드다. 뉴욕 메츠, 콜로라도, 휴스턴을 차례로 거친 뒤 2011년 라쿠텐 유니폼을 입고 일본 프로야구에 복귀했다. 자신의 바람인 선수 생활 연장을 위해 예외 조항에 동의하고 현실을 받아 들였다. 이뿐 아니다. 최고 명문구단인 요미우리의 에이스 우쓰미 데쓰야도 구단의 압박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마쓰이와 비슷한 시기에 연봉이 50% 삭감됐다. 2016년 4억 엔에서 정확히 반토막 난 2억 엔에 2017년 연봉 계약을 했다. 1년간 18경기에 출전해 9승 6패, 평균자책점 3.94로 부진한 탓이다. 감액 제한 조항이 있는 일본에도 칼바람은 분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