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켜야 할 우리 유산 [30] 오백년 세월 내려앉은 전통과 정취의 고향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휘돌아 흐르는 하회마을의 아름다운 풍광. 연합뉴스
하회마을과 양동마을은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적인 씨족 마을이다. 두 마을은 조선시대를 이끌었던 양반 문화가 꽃핀 영남 지역에 서로 90km 정도 떨어져 위치해 있다. 두 마을은 조선시대의 대표적 마을 입지인 ‘배산임수’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유교 예법에 맞는 가옥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두 마을은 예부터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 안동 내압마을과 함께 영남의 4대 길지 중 하나로 손꼽히던 곳이기도 하다.
하회마을은 고려시대 말에 허씨와 안씨, 그리고 류씨 성의 세 씨족이 새로운 정주지를 찾아 형성한 마을이다. 특히 16세기 말에 류씨 가문은 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 등 걸출한 정치가와 학자를 배출하였으며, 마을에는 그 영향이 그대로 남아 있다. 하회마을은 그 이후 17세기 말에 허씨와 안씨 일가가 마을을 떠나면서 류씨 단독의 씨족 마을이 됐다.
양동마을의 경우는 여강 이씨와 경주 손씨 씨족의 혼인으로 양가가 함께 자리를 잡으면서 마을로 성장한 사례다. 조선 초기만 해도 남자가 처가를 따라가서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연유로 양동마을은 ‘외손마을’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두 씨족 역시 우재 손중돈, 회재 이언적 등 명공과 석학을 많이 배출하였으며, 마을도 두 씨족의 일가들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이 두 마을에는 씨족 마을의 대표적 요소인 종가와 양반들이 살았던 크고 튼튼한 목조 가옥, 정자와 정사, 유교 서원과 서당 등이 남아 있다. 하회마을에는 동쪽 4km 지점에 병산서원이, 양동마을에는 옥산서원과 동강서원이 마을에서 각각 8km, 4k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또한 양반 가옥들 아래로 평민들이 살았던 단층의 작은 흙집과 초가지붕을 얹은 초가집들이 차례로 자리해 옛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풍광이 뛰어난 것도 두 마을의 특징이다. 정자와 휴식처에서 보이는 마을 주변의 산과 나무, 강의 경치는 17세기~18세기 시인들이 시로 자주 읊었을 만큼 아름답다. 두 마을의 전통 가옥들과 마을의 입지와 배치가 이루는 탁월한 조화는 조선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잘 보여 주는 사례로 꼽힌다.
하회마을의 이름 ‘하회’(河回)는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휘돌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됐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화산이 있고, 마을의 가장 높은 중심부에는 수령이 6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자리해 있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이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어 한국의 다른 마을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을 하고 있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또한 큰 기와집을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하회마을에는 서민들이 놀았던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도 전승되는 등 우리나라의 전통 생활문화와 고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돼 있다.
하회마을은 하회탈로도 유명한데, 이 탈의 제작자가 앞서 마을에 살았던 허씨 집안의 ‘허 도령’이었다는 구전이 내려온다. 풍산 류씨는 본래 경북 풍산이 본향이지만, 제7세 류종혜 공 시절에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류씨 일가가 마을에 집을 짓는 과정에서 ‘나눔’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당시 집을 지으려 하였으나 기둥이 세 번이나 넘어져 낭패를 당하던 중에 꿈에서 신령으로부터 먼저 3년 동안 활만인(活萬人), 즉 만 명의 사람을 도우라는 계시를 받았다는 것. 그 후 고개 밖에 초막을 짓고 지나는 행인에게 음식과 노자, 짚신을 나누어주는 등 수많은 활인을 하고서야 하회마을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양동마을의 고색창연한 기와집. 연합뉴스
경주시 북쪽 설창산에 둘러싸여 있는 양동마을은 500여 년의 세월을 짊어진 고색창연한 54호의 기와집과 이를 에워싸고 있는 고즈넉한 110여 호의 초가로 이루어져 있다. 경주 손씨 종택인 서백당과 여강 이씨 종택인 무첨당 등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낮은 토담길 사이를 걸으며 역사의 향기를 넉넉히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예스러운 멋 때문에 영화 ‘취화선’, ‘내 마음의 풍금’ 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의 정보화 시범마을로 선정돼 주민들이 컴퓨터를 활용해 역사관광 콘텐츠를 전파하는 것도 인상적이다.
양동마을은 1992년에 영국의 찰스 황태자가, 하회마을의 경우엔 1999년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각각 방문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두 마을은 한국의 역사마을로서 외국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국민이 한번쯤 찾아가봐야 하는 한국인의 고향 같은 마을이기도 하다. 점점 잊혀져가는 전통문화와 한국적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두 마을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자료협조=유네스코한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