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서적은 지난 6월3일 외환은행 종로지점에 돌아온 2천만원의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를 낸데 이어 지난 4일 2천8백만원의 어음을 갚지 못해 최종 부도처리됐다. 출판업계 관계자는 “대형 서점의 도서지급 결제일이 매달 10일이며, 종로서적에 돌아온 어음은 지난 6월4월과 5월10일 발행한 어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대형 서점의 효시이며 연간 2백여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종로서적이 1억원도 안되는 어음을 결제하지 못했다는 것. 이 때문에 종로서적 단골 이용객들은 고의부도를 낸 것 아니냐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지만, 종로서적 내부를 들여다보면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다.
종로서적은 지난 2000년 2백34억원의 매출에 2억2천만원의 적자를 냈고, 지난해 2백25억원의 매출에 적자 규모는 전년도에 비해 무려 50배인 1백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극심한 경영위기에 시달려왔다. 종로서적이 이처럼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게 된 배경은 대형 서점으로서의 경쟁력을 상실했기 때문.
▲ 문 닫은 ‘종가’ 지난 6월27일 찾아간 종로서적의 왼쪽 현관엔 셔터가 굳게 내려져 있었다. 작은 사진은 ‘공사중’ 안내문.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교보문고 매장은 교보빌딩 지하1층에 2천7백 평 규모이며 영풍문고도 영풍빌딩 지하1∼2층, 3천 평 규모인데, 종로서적은 복층에 1천 평도 채 못된다.
이 관계자는 “종로서적은 바로 앞에 종각역이 있고 뒤편에는 종로2가 먹자골목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아 입지여건은 최상이지만, 엘리베이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주차공간도 없어 고객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인터넷 서점의 발달도 종로서적의 경영악화를 불러온 요인으로 보고 있다.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등 대형서점들은 인터넷 서점이 등장한 99년과 2000년 매출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형 서점으로서의 여러 가지 장점을 상실한 종로서적의 경우 인터넷 서점의 영업 확대에 많은 타격을 입었다는 것.
그러나 종로서적 퇴직 직원들은 오너 일가와 직원들간 심각한 불화가 경영위기를 불러온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지난 1907년 기독교단체에 의해 설립된 종로서적은 63년 장하구 고문과 장하린 회장 형제가 인수, 민간기업이 되었다.
장덕연 사장(장하린 회장의 장남)외 5명이 44%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고 민병인 전 사장이 20%, 장덕원씨(장하구 고문의 장남)가 19%, 장덕주씨가 16%를 보유하고 있다. 창업주 장하구 고문과 장하린 회장 일가가 종로서적 지분 80%를 보유하고 있는 것. 종로서적에 오너 일가와 직원들간의 갈등이 벌어진 것은 지난해 11월 민병인 사장이 물러나고 장덕연 사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부터.
퇴직 직원들은 민 사장 재임시에는 직원들이 받지 못한 임금을 우리사주 형태로 전환하기로 회사와 합의하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장 사장이 취임 후 이를 무산시켰다는 것. 또한 장 사장은 직원들과 근무시간과 급여지급 여부 등을 놓고 여러 차례 갈등을 빚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장 사장은 지난 4월 초 종로서적 퇴직 직원들과 노동단체로부터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위반혐의로 서울지방노동청에 피소되기도 했다.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장 사장이 퇴직 직원들과의 갈등에 대해 너무 안이한 태도를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종로서적의 노사분규는 은행은 물론 사채시장에서도 종로서적에 자금 지원을 기피하는 요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5월 말부터 종로서적 법인계좌는 퇴직 직원들로부터 가압류를 당했고 이 때문에 어음 결제에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장 사장이 지난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이며 을지서적의 오너 전재국 사장에게 회사를 매각하려 했으나, 전 사장도 노사분규를 이유로 인수를 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종로서적 채권단은 장 사장과 연락이 닿지 않아 채권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