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따라 협곡 따라 그리고 ‘마음속의 철길’ 따라…
국경으로 가는 곡테익 역에서.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곡테익 협곡의 철교를 지난다.
우리 일행들은 하루 전 예매한 일등석을 탑니다. 그래도 천장에 선풍기가 돌아갑니다. 우리가 탄 차량은 오래전 한국에서 온 것입니다. 좌석 옆에 ‘재떨이’라고 쓰인 한국어를 보게 됩니다. 제가 어릴 적 타던 차량이어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기차역을 떠나자마자 우리는 느닷없이 물폭탄을 맞아 흠뻑 젖습니다. 여기 기차는 보통 차창을 열어놓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철로변 나뭇가지들이 들이치기도 해 조심해야 합니다. 기차 안에는 상인들도 오갑니다. 철로가 좋지 않아 몹시 덜컹거리고, 좌우로 흔들립니다. 시간이 좀 지나면 익숙해집니다. 기차는 느릿느릿 기적을 울리며 수박이 지천으로 깔린 농업지대를 지나 곡테익 역에 다다릅니다. 여기서는 기차도 좀 쉽니다. 이제 협곡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플랫폼에서 삶은 계란이나 국수를 점심으로 먹습니다.
102미터의 곡테익 철교.
우리는 기차에 다시 올라 시퍼로 향합니다. 현지에서는 띠보라고 부르는 제법 큰 마을입니다. 작고 아담한 호텔들이 있고 시가지엔 중국음식을 파는 식당도 여럿 있습니다. 이곳이 유명해진 것은 샨 팰리스, 즉 샨 부족 중 가장 부유하고 힘 있는 왕국의 왕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보기엔 그리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당시엔 대리석과 티크목으로 지은 최고의 집이었습니다. 이 팰리스의 안주인이었던 오스트리아인 프린세스는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 왕국을 통치하던 남편은 당시 군부쿠데타 시절에 잡혀가 행방불명 되었습니다. 이 왕궁을 50여 년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띠보 마지막 왕의 조카인 사오오차 부부입니다. 이들도 이젠 노인이 되었지만 방문객들을 맞아 안내하고 설명해주는 일을 아직 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몇 년 후 맞는 팰리스 100주년 기념행사를 샨 부족들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모아둔 한국의 신문과 방송에 난 기사들을 보여줍니다.
샨 팰리스. 오스트리아인 프린세스가 살았다.
띠보 마을을 ‘리틀 바간’으로 부릅니다. 그 까닭은 모여 있는 아주 오래된 사원들이 황폐한 채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폐허에서 일행들이 사진을 찍습니다. 검고 바랜 돌들과 젊은이들의 밝은 스카프 색감들. 아시아 여행에서 낯익은 풍경입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가로 나갑니다. 강 이름이 ‘물 위의 섬’이라는 뜻입니다. 트레킹 코스입니다. 저녁노을이 강물을 적시는 시간입니다. 마을 아이들은 집으로 가는 걸 잊은 채 여행객들과 깔깔거리며 헤엄을 칩니다. 강가에 앉아 우리는 커피와 수박을 먹습니다. 이제 이 나라는 새해를 맞으니, 하고 싶은 얘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의 기차여행에 대해서도.
띠보의 황폐한 유적지에서.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