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언론 못 믿어” 피해자·제보자들 대신한 ‘폭로 계정’에 눈길 쏠리는 이유
필로폰 상습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 씨(31).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12월 한 폭행사건으로부터 촉발됐던 ‘버닝썬 게이트’의 시작은 폭행 피해자 김상교 씨였지만, 그의 폭로에 날개를 붙인 것은 이 같은 인스타그램 폭로 계정이었다. 이들은 클럽 버닝썬과 빅뱅의 전 멤버 승리(본명 이승현‧29), 그리고 그 주변 인물로 이어지는 각종 사건사고의 뒷이야기를 인스타그램을 통해 폭로했다.
앞선 ‘강남패치’에서 콘셉트를 따 ‘~패치’로 이름 붙여진 이 계정들은 지인들끼리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운영자는 대부분 필리핀 등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해외 SNS도 국내 수사에 정보를 제공하고 있긴 하지만, 실제 해외에 거주 중인 계정 주인을 소환하기엔 어려움이 따른다. 앞선 강남패치의 경우는 운영자가 국내에 거주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원 파악이 쉬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거주 사실을 밝히는 ‘패치’ 계정이 사건 관계자들의 명예훼손 소송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소송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현재까지 폭로한 내용이 일반적인 지라시 수준을 넘어서 ‘공익’과 연계가 돼 있다는 점도 위법성을 면피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황하나 씨 인스타그램 캡처
실제로 경찰은 이들을 통해서 사건의 피해자나 제보자들과의 연결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현재 필로폰 상습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남양유업 창업주의 외손녀 황하나(31) 씨 사건의 재수사에는 이들의 폭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황하나 씨의 사건은 버닝썬 게이트와도 이어진다. 황 씨는 클럽 버닝썬의 대표 이문호 씨와 돈독한 친분을 과시해 온 바 있다. 이 씨의 전 여자친구로 알려진 조 아무개 씨 역시 황 씨와 절친한 사이였다.
황하나 씨의 필로폰 상습 투약 사건이 알려지게 된 계기도 조 씨로부터 시작됐다. 지난 2015년~2016년 조 씨가 필로폰 투약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직접 “황하나와 함께 필로폰을 투약했으며 황하나가 마약을 먼저 제안했다”고 밝혔다. 또 황하나 씨가 또 다른 사건 관계자로부터 마약을 상습 구매해 왔다고도 폭로했다.
버닝썬 대표 이문호 씨 역시 마약 투약 및 매매 등 혐의를 받고 있으며, 버닝썬은 소속 MD 직원들이 직접 마약을 매매하고 공급해 왔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버닝썬의 오픈 초기부터 그곳을 자주 찾았던 황하나 씨 역시 필로폰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만큼 버닝썬 게이트 속 마약 사건과 황하나 씨 간의 연관성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더해 황하나 씨가 과시해 온 ‘연예인 친구들’은 모두 ‘승리 게이트’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로 확인됐다. 전 FT아일랜드 멤버 최종훈(29), 씨엔블루 이종현, 빅뱅의 승리 등이다. 이들은 또 불법 촬영물 유포 및 공유 혐의를 함께 받고 있는 인물들이기도 한데, 황하나 씨 역시 지인들의 성관계 영상을 불법 촬영해 유포한 의혹을 받고 있다.
황하나 씨가 ‘마약 공범’으로 지목한 박유천도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이 같은 사건의 세세한 부분은 언론이 아닌 인스타그램 폭로 계정인 ‘패치 계정’을 통해 먼저 공개됐다. 한 계정 운영자는 “게이트가 터지기 전에 제보자들이 언론에 먼저 제보를 했다. 그런데 ‘내용이 좀 약하다’ ‘차라리 다른 사건 피해자를 연결해 달라’면서 차일피일 미뤄놓고 나중에 다른 언론사에서 터뜨리니까 제보자 번호를 마음대로 공유하고, 방송에 쓰지 말아 달라는 증거 자료를 공개해 제보자 신원을 노출시켰다”라며 언론을 불신하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제보자들은 경찰 역시 불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제보자는 “경찰은 2015년 필로폰 사건 수사 당시에도 황하나가 남양유업 외손녀인 것도 알고 있었고, 사건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던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4년 간 묵히고 있다가 이제 와서 논란이 되니까 ‘패치 계정’한테까지 가서 자료 달라, 제보자와 연결시켜 달라 요구하고 있다”며 “(우리가) 원하는 결과까진 아니어도 좋으니까 수사라도 명쾌하게 해달라는 게 바람인데 태도가 글러먹었다. 오죽하면 언론 보도를 보고 제보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도 경찰이 아니라 저 계정들을 찾아가겠나”라며 분을 숨기지 못했다.
다만 이 같은 계정들이 공익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해도 아직 혐의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일반인의 실명이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지적도 따른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일요신문’에 “이른바 ‘게이트’ 사건을 놓고 대중들이 언론과 수사기관 모두에게 불신을 가지고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인정되긴 했지만 공익성이 인정되기 어려울 정도로 진실이 아니거나 개인정보에 대한 침해가 심각할 경우에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다만, 앞서 강남패치의 경우 사실 확인 없이 무분별하게 제보 받은 내용을 전부 공개하는 식으로 운영됐다면 ‘게이트 사건’의 패치 계정들은 제보자의 신원을 확인해 증거가 갖춰진 경우에만 공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부분이 참작된다면 공익성과 상당성 부분은 어느 정도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