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주인공은 홍자였다. 최고의 감성이었고, 최고의 노래였다. 음 이탈이 문제가 아니었다. 심수봉의 노래를 그렇게 소화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심수봉의 노래를 곧잘 부르는 후배가 있었다. 사는 것을 보면 모차르트 감성인데 심수봉을 부르는 순간 후배는 세상사 다 포기하고 사랑밖에 남은 것 없는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면 우리의 마음은 희망도 없는 사랑에 집착하면서 그 사랑도 잡지 못할 것 같은 위태로운 삶의 감성을 저절로 이해했다.
몇 년인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설악산의 한 콘도에서 콜로키움을 한 적이 있었다. 소크라테스도, 칸트도, 헤겔도 잡아먹던, 범 무서운 줄 몰랐던 시절 우리의 철학 토론은 치열했다. 토론이 끝나고 자리가 풀어지자 우리는 그 후배에게 한 곡을 청했다.
그녀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불렀다. 숨죽여 듣던 우리는 노래가 끝나자마자 박수를 치며 “앵콜”을 외쳤다. 그때 평소 모든 학우들에게 존경을 받던 인격자 교수님께서 그 분위기를 깼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라구요? 여러분들이 어떻게 그렇게 반여성적인 노래를 부르며 좋아할 수 있지요?”
모두들 숨죽여 있는데 한 친구가 토론 분위기를 만들었다. “선생님, 그 노래야말로 페미니즘 노래 아닐까요? 여성이 어떤 감성으로 길들여지는지 알아야 길들여진 그곳에서 나올 수 있지 요!”
그 친구의 용기에 힘을 얻은 또 한 친구가 토론을 이어갔다. “선생님, 정서는 옳고 그름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반여성적인 정서가 있다면 그것을 감춘다고 사라질까요? 그것은 해방되어야지 억압되어서는 안되는 거, 아닌가요?”
홍자의 “비나리”는 그때 그 시절, 무서운 것이 뭔지 몰랐던 내 젊은 날의 친구들을 떠올렸다. 그 ‘홍자’가 실시간 검색어에 떴다. 이게 뭐지? 했더니 음악이 아닌 것으로 뉴스가 된 것이다. 그녀가 영광 법성포 단오제에 가서 무대에 선 모양이다. 거기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단다. “무대 올라오기 전에 전라도 사람들은 실제로 보면 뿔도 나 있고, 이빨도 있고, 손톱 대신 발톱이 있고 그런 줄 알았는데 여러분들이 열화와 같은 성원을 보내주셔서 너무 힘나고 감사하다.”
열화와 같은 성원을 받은 홍자는 자기의 편견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보여주고자 한 말일 터였다. 그러나 그 화법엔 7, 80년대에 북한 사람들에 대해 우리가 생각 없이 던졌던 편견이 고스란히 들어있었다.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내가 홍자의 말이 무서웠던 것은 누가 봐도 미성숙한 그 말 때문이 아니었다. 거기 왜곡된 편견의 말에서 우리 삶의 울타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우리 삶의 신념체계를 울타리 삼아 판단하고 지적질한다. 그런데 우리를 판단하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 그 신념체계가 바로 “뿔도 나 있고”와 같은 편견과 왜곡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닐까. 내가 믿고 있는 신념체계가 편견인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인가. 방법이 없다. 스스로 세상과 부딪쳐보는 수밖에.
이주향 수원대 교수
※본 칼럼은 일요신문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